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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 - [오이디푸스 왕]을 읽고

순돌이 아빠^.^ 2012. 4. 20. 17:23

(천병희 번역. 문예출판사. 1988년)

오이디푸스라고 하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또는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과 관련해 얘기를 많이 합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보다는 권력과 인간, 종교와 지성의 관계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게 합니다.

무지와 맹목으로 이끄는 종교

‘아침에는 네 발로, 낮에는 두 발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게 무엇이냐’라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오이디푸스는 테바이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도시에 역병이 돌고, 오이디푸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푸는 오이디푸스


오이디푸스 : 모두 모인 앞에서 말하라. 나는 자신의 생명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이들을 위해 슬픔을 참고 있는 것이니까.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민중들을 아주 아끼는 것처럼 말합니다. 모든 권력자들이 그렇듯이 말입니다.

크레온 : 그분은 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신께서 우리들에게 그 자들이 누구이건 그 살인자들을 손으로 벌주라고 분명하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오이디푸스 왕(王)의 아내인 이오카스테의 오빠인 크레온이 신의 말씀(신탁)을 가져 옵니다. 내용은 오이디푸스의 왕이 되기 이전의 왕이었던 라이오스의 살해범을 찾아 벌주라는 것입니다. 오이디푸스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라이오스를 살해한 자를 찾는 것입니다.

오이디푸스 앞에 테이레시아스가 등장합니다. 코로스장은 그에 대해 ‘사람들 가운데 오직 그분 속에서만 진리가 살아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오이디푸스 : 우리가 라이오스의 살해자들을 올바로 알아내어 그들을 죽이거나 나라 밖으로 추방할 때에만 이러한 역병(疫病)을 면할 길이 생길 것이라고 말이오...우리들의 운명은 그대의 손에 달렸소. 그리고 수단과 힘을 다해 남을 돕는 것이 사람으로서 가장 고상한 일이오.

테이레시아스 : 아아, 지혜가 지혜로운 자에게 아무런 쓸모도 없는 곳에서 지혜를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오이디푸스는 역병을 해결하기 위해 테이레시아스에게 해결책을 구합니다. 그런데 테이레시아스는 지혜가 쓸모없는 곳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질병도 운명도 신의 말씀에 따라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인간이 가진 지식이나 지성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맹목적인 이들을 논리로써 이해시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권력자는 종교를 이용하여 민중을 지배하고, 종교인들은 민중을 무지와 맹목으로 이끈 대가로 권력자에게서 상을 받고.

무지 속에서

테이레시아스 : 그대는 그분의 살해자를 찾고 있으나 그대가 바로 그분의 살해자란 말입니다.
...
오이디푸스 : 그대 영원한 어둠 속에 사는 자여, 그대는 나든 다른 사람이든 햇빛을 보는 자를 결코 해치지는 못하리라.

테이레시아스는 테바이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필요한 답을 제대로 알려 줍니다. 하지만 답을 구한다던 오이디푸스는 그 답을 강하게 부정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무지가 깨어지고, 자신과 사회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할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든 부정하고 왜곡하려 들지요. 특히 권력자는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을 제시한 사람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오이디푸스는 테이레시아스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점을 비꼬며 그를 모욕합니다. 사실을 알고 싶다고 했던 자 앞에 사실이 나타나자, 사실을 제시한 자의 입을 닫게 만들려고 하는 거지요. 테이레시아스가 말하지 않겠다는 것을 오이디푸스가 억지로 입을 열게 해 놓고서는 저 난리입니다.

게다가 오이디푸스는 테이레시아스와 크레온이 자신을 권좌에서 쫓아내고 권력을 차지하려 한다는 과대망상에 빠집니다.

자아와 권력에 손상을 입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자신에게 해를 입힐지도 모른다고 상상한 이들에 대한 강한 적대감.

코로스장 : 우리들이 생각하기에, 저분의 말씀이나 그대의 말씀이나 오이디푸스여, 모두 노여움에서 나온 말씀 같습니다.

옆에서 오이디푸스를 말려 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이미 분노와 적개심의 늪으로 빠져든 권력자.

테이레시아스 : 그대가 나의 눈먼 것까지 조롱하시니 말씀드립니다만 그대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
오이디푸스 : 저 자에게서 이런 말을 듣고도 참아야만 한단 말인가? 파멸 속으로 꺼져 버려라! 어서 빨리!

오이디푸스가 성격이 좀 더 나빴다면 ‘당장에 저 놈의 목을 베라’라고 했겠지요.

테이레시아스는 오이디푸스가 화를 내고 협박을 해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아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말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공부를 많이 한 학자가 사회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굽힘없이 말하는 거지요. 에둘러 말하지 않고 권력자에게 똑바로 ‘니가 문제야!’라고 하는 겁니다.

크레온 : 하나 만일 그대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계시다면?
오이디푸스 : 그래도 나는 통치해야만 한다.
크레온 : 잘못 통치할 바엔 통치하지 말아야지요.
오이디푸스 : 오 도시여 도시여, 그의 말 좀 들어 보라!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귀를 닫은 채 권력에 집착하는 오이디푸스.

영아살해와 근친상간

이오카스테 : ...일찌기 라이오스에게 어떤 신탁이 내린 적이 있었지요. 아폴론 자신이 아니라 그분의 사제들로부터 말여요. 그 신탁이란, 운명이 그를 따라잡아 그와 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의 손에 그가 죽게 되리라는 것이었어요...그리고 아들은 태어난 지 사흘도 안 되어서 라이오스가 두 발목을 같이 묶은 뒤 다른 사람들의 손을 빌어 인적 없는 산에 갖다 버렸어요.

예전에는 라이오스의 아내였고, 지금은 오이디푸스의 아내인 이오카스테가 라이오스와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신탁과 사제-지금으로 치면 종교와 종교인-가 왕에게 ‘너의 아들이 너를 죽일 것이다’라고 했다는 겁니다.

신의 말씀, 하느님의 말씀,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사실은 인간 자신의 말이지요. 사제가 신의 말씀을 내세우며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했던 겁니다.

이 글에서 사제들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왕의 권력을 흔들려는 음모가 있었거나 이오카스테를 차지하고 있는 라이오스에 대한 질투심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추측해 볼 수밖에.


전 미국 대통령 부시와 교황 베네딕토 16세


기도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아내. 왼쪽은 길자연 목사. 국가와 종교, 권력자와 종교인의 결합


더 큰 문제는 신의 말씀이라는 이유로 부모가 갓 태어난 아기를 산에다 버렸다는 겁니다. 신의 말씀을 따라 어린 아기를 죽일 생각을 하다니.


인간 동물이 자신의 생명을 지키려고 온갖 애를 쓴다고 하지만, 그 아기가 어떻게 자라서 어떤 모습으로 살지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종교에 대한 맹목 때문이었을까요, 죽음에 대한 과대망상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무지 때문이었을까요.

권력이 종교와 결합해 만든 비참한 사건입니다. 라이오스는 왕으로서 국가권력을 쥐고 있어 민중들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할 수 있겠지요. 또 아버지로써 자식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할 권력까지 쥐고 있었던 거구요.


왕과 왕비, 사제가 함께 영아살해를 저지른 겁니다.

이오카스테 : ...이미 많은 사람들이 꿈속에서 어머니와 동침했으니까요.

[오이디푸스 왕]에는 영아살해와 함께 근친상간에 관한 얘기가 나옵니다. 인간 사회가 금기시하는 것들이지요. 영아살해와 근친상간을 강하게 금기시 하는 것은 그만큼 인간들이 영아살해와 근친상간을 많이 하거나 꿈꾸고 있다는 말일 거구요.

오이디푸스 : 그렇다면 어째서 그대는 그 애를 이 노인에게 주었는가?
목자 : 나리, 그 애가 가엾어서 그랬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라이오스는 아기를 죽이려고 목자에게 아기를 산에다 버리라고 했고, 목자는 아기가 가엾어서 아기를 다른 사람에게 줬던 겁니다. 목자가 살려 준 아기가 바로 오이디푸스였구요.

권력과 종교가 결합해 영아를 살해하려 했지만 목자는 가엾은 마음으로 아기를 살렸던 거니다. 권력자와 종교인들은 앞에서는 온갖 좋은 말을 하면서 뒤에서는 살인을 서슴지 않습니다. 반대로 별 이름도 없고 학벌도 없는 보통 사람들이 인간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미안함 때문에 죽음을 앞둔 사람까지 살립니다.

오이디푸스 : ...내가 길을 가다가 그 삼거리 가까이 이르렀을 때 그곳에서 한 사람의 전령과 그대가 말한 대로 망아지가 끄는 마차 위에 탄 한 사내가 나에게 다가왔소. 그리고 그 길잡이와 노인 자신이 나를 억지로 길에서 몰아 내려고 했소. 그래서 나는 나를 옆으로 밀어낸 마부를 화가 나서 때렸소. 그러자 노인이 이것을 보고 내가 지나가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마차에서 침(針)이 둘 달린 막대기로 내 머리를 정통으로 내리쳤소. 그러나 그는 똑같은 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이 손 안에 들린 지팡이에 잽싸게 얻어맞고는 즉시 마차 한가운데로부터 벌렁 나동그라졌소. 그리고 나서 나는 그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소.

간단히 말하면 왕과 일행이 길을 가는데 앞에서 걸리적거리는 오이디푸스를 밀쳤고, 이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져 오이디푸스가 왕인 라이오스와 일행을 죽인 겁니다. 왕과 일행이 오이디푸스를 밀치려고 했던 것은 그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오이디푸스가 권력을 가진 자에게 대항하자 폭력을 사용했던 겁니다. 그런데 오이디푸스가 더 큰 폭력으로 이들을 죽였구요. 라이오스와 오이디푸스는 서로가 아버지와 아들인 줄 모르고 때리고 죽인 겁니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오이디푸스가 순간적인 분노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겁니다. 오이디푸스가 당한 일이 억울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여럿을 죽일 만큼의 일이었을까요? 오이디푸스는 이 살인에 대해 별다른 죄책감 같은 것은 갖지 않습니다. 아버지 라이오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때리고, 아들인 오이디푸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고.

라이오스를 죽인 뒤 오이디푸스는 테바이의 왕이 되어 자신의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해서 아이도 낳았구요. 친족살해와 근친상간이 함께 벌어진 겁니다.

고통

사자 :...부인께서는 이렇듯 남편에게서 남편을, 자식에게서 자식을 낳게 한 이중의 결혼을 슬퍼하셨습니다...그곳에서 우리들은 흔들리는 밧줄의 꼬인 고리에 부인께서 목을 매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그분께서 부인의 옷에 꽂혀 있던 황금 브로치를 빼 들고는...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씩이나 자신의 눈을 찌르셨습니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이오카스테는 목을 매 자살을 하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찔러 실명합니다.

눈은 감각 기관의 일부러 모양이나 색, 움직임 등을 인지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인간은 눈을 통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지요.

눈은 한 편으로 지적 능력을 상징하는 말로도 쓰입니다. ‘아직 세상에 눈 뜨지 못한 나’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오이디푸스가 눈을 찌른 건 감각 기관인 눈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 자신이 문제의 원인인지도 몰랐던 자신을 한탄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시각 기능을 상실한 테이레시아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시각 기능을 가지고 있던 오이디푸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거지요.

친족살해와 근친상간을 저지른 자신에게 자살이 아닌 실명을 부여한 것은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에 대한 처벌은 아닐까요?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는 인간 사회가 금기하는 영아․친족 살해를 저질렀고, 이는 오이디푸스의 친족살해․근친상간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오카스테와 오이디푸스의 자기 살해․상해로 결말을 맺습니다.

인간으로써 하지 말아야 될 살인의 결과가 자신에게 죽음과 고통으로 돌아왔다고 해도 될까요.

오이디푸스 : 지체없이 나를 이 나라에서 쫓아내어 아무도 내게 인사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다 주구료.
크레온 : 알아 두십시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으나 그러기 전에 먼저 어떻게 해야 할지 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권력과 종교 때문에 시작된 영아살해와 인간의 고통. 그런데 인간들은 또다시 종교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문제의 시작이 인간 자신에게 있음으로, 인간 자신에게서 문제를 풀어야 할 건데도 이를 거부합니다. 문제를 풀지 않고 지속시키려는 거지요.

소포클레스가 살았던 2천5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모든 문제 풀기의 시작은 진리와 사실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겠지요. 테이레시아스가 보여주었듯이 말입니다.

진리와 사실을 찾는 주체는 신이 아니라 인간일 거구요. 스핑크스 수수께끼의 답이 인간이었듯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