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것들/스치는생각

건축학개론. 화폐. 주택

순돌이 아빠^.^ 2012. 5. 1. 15:36

예전에 제가 지하방에서 살 때였습니다. 벨기에에 온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지하방에서 산다고 하니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사람이 왜 땅 속에서 살아요?

 

그러게요. 우리가 두더지도 아니고...


 



1. 주택 형태들

 

영화 <건축학개론>에 나오는 세 인물, 서연(한가인), 승민(엄태웅), 재욱은 세 가지 형태의 주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모두 한 학교에 다니는 대학생들입니다. 
 

 

주택1. 서연의 주택
반지하방입니다. 서울에 특히 많은 주택 형태입니다. 반지하방이란 말 그대로 방의 반은 지표 위에, 반은 지표 아래에 있다는 겁니다. 창문을 열면 사람의 머리가 보이는 게 아니라 사람의 발이 보입니다.

이런 주택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창문을 열어 놓기가 힘듭니다. 걸어 다니는 사람이 보면 창문 안쪽 방 안의 모습이 훤히 다 들여다보이기 때문입니다.

 

 

도로에서 위쪽으로 가 아니라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반지하방

 

특히 서연처럼 여성 혼자 반지하방에 사는 경우 방을 구할 때 제일 먼저 확인해야 할 일이 방범창은 튼튼한 지의 여부입니다. 이사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 창을 가리는 거구요.

한 여름이든 한 겨울이든, 아침이든 밤이든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의 두 주인공도 아침에 밖으로 나가기 위해 계단에서 내려 오는 것이 아니라 지하에 있는 방에서 위쪽으로 올라 옵니다.

 <내 깡패 같은 애인>의 한 장면.

인간이 후져서 지하에 사는 것이 아니라 돈이 없으니까 지하에서 사는 거지요.

 

 

주택2. 승민의 주택
승민은 엄마와 둘이 살고 있습니다. 승민의 엄마는 시장에서 순대국을 팔아 가계를 운영하고 승민을 학교에 보내고 있습니다. 서울의 정릉 쪽에 있는 오래된 단독 주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주택3. 재욱의 주택
재욱의 가족은 부자입니다. 최신 컴퓨터도 가지고 있고 자동차도 가지고 있습니다. 강남에 있는 널찍한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고 있구요.



2. 화폐 보유량과 주택의 질

한 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인 서연, 승민, 재욱이 크게 다른 주택에 살고 있는 이유는 이들 가족이 가지고 있는 돈, 곧 화폐 보유량 때문입니다. 서연의 가족이 재욱의 가족만큼 화폐를 보유하고 있다면 굳이 여성 혼자 반지하방에서 살 이유가 없겠지요.

 

화폐 보유량과 주택의 질
개인 서연 승민 재욱
화폐 보유량 3등급 2등급 1등급
주택의 질 3등급 2등급 1등급



3명의 화폐 보유량과 주택의 질의 관계를 단순한 표로 만들어 볼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화폐 보유량과 주택의 질은 연관성을 가지며, 화폐 보유량이 주택의 질을 결정하는 요인이 됩니다.

당연한 거 아니냐구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합니다. 그러나 인간 사회 전체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인간 사회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할 이유도 없구요.



3. 다른 가능성

옆집에 불이 나서 얼른 119에 신고를 했다고 하지요.

그러면 119는 ‘네~ 고객님. 현재 보유하고 계시는 동산 및 부동산의 가치는 어느 정도 되나요?’라고 물을까요?

네~ 고객님이 가지고 계신 재산의 양이 미약하여 소방관을 출동 시킬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에 돈 많이 버신 다음에 119를 이용해 주세요~’라고 하나요?

그렇지 않지요. 내가 얼마를 가지고 있든 소방관은 출동을 해서 불을 끌 겁니다. 화폐 보유량과 소방관 행동 사이에 연관성이 없는 겁니다. 화폐 보유량은 화폐 보유량이고 소방관은 소방관이기 때문입니다.
 
무상 급식도 그렇습니다. 가족이 보유한 화폐량이 얼마만큼이냐와 관계없이 무상 급식을 받는 학생들은 모두 밥을 먹습니다. 화폐 보유량과 밥 사이에 연관성이 없는 겁니다. 화폐는 화폐고 밥은 밥인 거지요.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지만 화폐 보유량에 따라 주택을 달리하는 서연(왼쪽)과 재욱

 

주택도 마찬가지입니다. 화폐 보유량은 화폐 보유량이고 주택은 주택입니다. 다만, 자본주의 사회가 이를 연관 짓고 화폐 보유량을 주택의 질을 결정짓는 요인으로 만든 거지요. 화폐를 많이 가진 사람들이 주택을 화폐 증식 수단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집 장사해서 돈 지랄한다는 거지요.

화폐 보유량과 관계없이 누구나 필요하면 소방관을 부를 수 있듯이 주택을 필요에 따라 나눠 쓰는 사회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주택을 화폐와 연관 짓는 것이 아니라 필요와 연관 짓는 겁니다.


 

화폐 보유량과 주택의 질. 다른 가능성
개인 서연 승민 재욱
화폐 보유량 3등급 2등급 1등급
주택의 질 1등급 2등급 3등급


주택을 필요에 따라 나눠 쓰는 사회에서 <건축학 개론>을 만들면 여성인 서연이 재욱의 오피스텔을 쓰고,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남성인 재욱이 서연의 반지하방을 쓸 수도 있겠지요.

물론 제일 나은 방식은 어두컴컴한 반지하방도, 화려한 오피스텔도 아닌 승민의 집 같은 곳에서 모두 살 수 있도록 사회가 가진 자원을 쓰는 겁니다. 화폐나 주택에서 인간이 차이 나는 것이 아니라 개성이나 취미 같은 것에서 차이 나는 것은 어떨까요?

자본주의 사회는 전체 사회가 많은 양의 자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수가 이를 독점함으로써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일으킵니다. 서연 같은 사람이 곰팡이 피고 어두운 방에서 불안하게 지내야 하는 것도 자본주의 사회가 일으킨 문제 가운데 하나이구요.

재욱과 그의 가족이 가진 재산을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한 사회가 있고, 서연과 같은 사람이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사회가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