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에 조카 현석이를 만났습니다. 현석이는 지금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 가족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현석이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미니 : 현석아 학교 가기 싫제?
현석 : 네
미니 : 왜?
현석 : 공부하는 게 싫어요. 선생님이 싫구요. 친구들은 좋아요.
미니 : 선생님이 왜 싫어?
현석 : 우리한테 막 소리 지르고 그래요
미니 : 어떻게 소리 질러?
현석 : 욕하고 그래요
미니 : 뭐라고 욕하는데?
현석 : ‘이 새끼들아 자리에 앉아’ 그렇게요.
미니 : 그럼 쉬는 시간에는 떠들어도 괜찮아?
현석 : 아니요 쉬는 시간에도 살금살금 다녀야 돼요
순간 당황스러웠습니다. 현석이에게 학교 가기 싫냐고 물어본 것은 학생인 현석이가 학교와 성적에 대한 부담이 클 것 같아 그냥 말을 건네 본 건데 이런 대답이 나올 줄 몰랐습니다.
미니 : 그래서 현석이는 어떻게 했어?
현석 : 자리를 바꿀 때 맨 뒤에 가서 앉아요
미니 : 왜?
현석 : 선생님 앞에 앉기 싫어서요
미니 : 맨 뒤에 앉으면 잘 안 보이잖아요.
현석 : (몸을 옆으로 살짝 누이며) 그래서 이렇게 봐요
현석이는 반에서 키가 작기로 선두권입니다. 안경도 끼고 있고 키도 작은 현석이가 선생님이 싫어서 맨 뒤에 앉는다는 거지요. 나름의 생존 방법(?)을 찾은 겁니다.
미니 : 저런... 어쩌지... 현석아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현석 : 삼촌이 학교 가요
미니 : 삼촌이 학교 가서 어떻게 할까?
현석 : 선생님 때려 줘요
미니 : (주먹을 쥐고 휘두르는 시늉을 하며) 이렇게 선생님 막 때려 줄까?
현석 : 네 히히히
선생님 때리는 시늉에 현석이는 좋아라 히히 댑니다. 교사에게 억압당한 현석이는 교사에게 맞서고 싶어도 힘이 없겠지요. 그래서 자기 대신 저보고 싸워달라는 말 아닐까요?
미니 : 현석아 걱정 마. 내가 가서 선생님 막 때려 줄게.
현석 : 좋아요 히히
미니 : 근데 현석아... 진짜로 선생님 때리는 건 좀 곤란하지 않을까?
현석 : 알아요
미니 :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현석 : 괜찮아요. 몇 달만 참으면 돼요
미니 : 몇 달만 참으면 선생님 바뀌니까 괜찮다는 거야?
현석 : 네 히히
놀라웠습니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억압적인 교사 앞에서 초등학교 4학년인 현석이는 교사가 바뀌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누구는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지, 뭐 크게 대단한 일이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어린 시절의 경험이 평생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현석이는 교사의 힘 때문에 억눌려 있고 좌절하고 있습니다. 현석이에게 학교는 억압과 힘이 지배하는 공간이 되어버린 겁니다. 거기에 적당히 적응하며 순종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고 있는 거구요.
가슴엔 분노를 쌓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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