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본가
자본가가 원하는 것은 자신이 가진 화폐를 불리는 것입니다. 돈 놓고 돈 먹기 해서 더 많은 돈을 벌겠다는 거지요.
이들이 상품을 만들어 파는 것은 국가를 위한 일도, 기업을 위한 일도,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일도 아닌 자신들이 소유할 수 있는 화폐량을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품을 생산하려면 노동력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기계가 있고, 아무리 좋은 사무실을 가지고 있어도 일을 할 사람이 있어야겠지요.
2. 재생산
자본가 계급이 많은 일을 하고,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일은 하지 않기도 하고 할 수 없기도 합니다.
노동력 재생산은 크게 두 가지 방식입니다.
첫째는 하루 가운데 자신의 노동시간을 채운 노동자가 공장(기업)을 떠나 휴식을 하고 밥을 먹고 다시 기운을 차려 공장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공장(기업)에서 주어진 일을 하기 위한 힘(체력)을 노동자 스스로 만들어 돌아오는 거지요.
노동자가 영원히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수명이란 게 있고, 노화라는 게 있습니다. 충전용 건전지를 일정 횟수 이상 사용하고 나면 충전이 잘 안 되는 것과 같지요.
노동자가 노동력 재생에 한계가 이르렀다 싶으면 자본가는 아예 노동자를 바꿉니다. 충전해서 쓰던 건전지를 버리고 새로운 충전용 건전지를 사는 것과 같습니다.
오랫동안 일을 했기 때문에 노동 과정에 익숙한 장점도 있지만, 노동력 재생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헌 노동자를 내보내고 새로운 노동자를 불러들이는 거지요.
새로운 노동자를 불러들이려면 새로운 인간이 태어나야 합니다. 자본가계급이 새로운 인간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3. 가족
노동력 재생산의 두 번째 방법은 노동자가 생식 과정을 거쳐 새로운 인간, 미래의 노동자를 생산하는 겁니다.
각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부모-자식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고, 신비로운 생명의 탄생이지만 자본주의 체제로 봐서는 그저 과거와 다름없는, 노동력이 재생이 좀 더 잘 되는 인간일 뿐입니다.
공장에서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듯이, 가족은 미래의 노동자를 만들어 냅니다.
미래의 노동자가 몇 가지 갖춰야 할 기능이 있습니다.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이를 갖춰야 직장을 구할 수 있는 거고, 자본가 계급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기능을 노동자들이 알아서 준비하도록 만드는 거지요.
첫 번째는 노동 과정에 들어가 일할 수 있는 육체적 능력을 갖는 것입니다. 성장 과정에서 기본적인 육체적 능력 또는 체력을 갖게 되면 나중에는 하루에 몇 시간은 노동을 체력을 소모하고, 다른 몇 시간은 휴식과 영양 섭취로 체력을 재생하는데 쓰겠지요.
두 번째는 노동 과정에 들어가 일할 수 있는 정신적 기능을 갖는 것입니다. 말을 알아듣고, 글을 쓸 줄 알고, 기계를 켜고 끄고,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등의 기능입니다.
세 번째는 노동 과정에 들어가 일할 수 있는 정서적 기능을 갖는 것입니다. 명령에 복종하고, 일하다 힘들어도 참고, 부당하다 싶어도 저항하지 않는 등 자본가계급이 쓰기에 편한 정서 상태를 갖는 것입니다.
이런 기능들을 갖도록 새로 태어난 인간을 키우는 것이 가족과 교육․학교입니다. 물론 교육․학교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을 재생산하지는 않습니다.
개별 자본가가 아닌 집합적 자본가 또는 자본가 계급이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생산하고 훈련시키는 곳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가족입니다.
4. 화폐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가족을 유지하려면 화폐를 공급해야 합니다. 노동자가 가족에게 화폐를 공급하지 못하면 가족을 그날로 끝입니다. 노동자가 공급한 화폐를 가지고 가족 구성원들은 먹을 것, 입을 것 등을 사고 학교도 가고 학원도 가고 그러지요.
화폐의 이동)
자본가->노동자->가족->자본가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임금으로 내어줬던 화폐는 노동자가 가족 구성원들과 함께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다시 자본가에게로 돌아갑니다. 남는 것은 새로운 노동력, 곧 현재 노동자가 다시 일할 수 있는 체력과 새로 태어난 미래의 노동자.
노동자가 가족 내에서 특정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도 자신이 속한 가족에게 화폐를 공급해야 합니다. 공급하는 화폐량에 따라 가족들의 인정이나 가족 내 위치도 달라지겠지요.
“아무리 남자가 돈을 벌어오지 못한다고 해도 남자는 남자지. 남자가 집안을 이끌어야 해!”
남자가 남자라는 이유로, 양반이 양반이라는 이유로 인정을 받고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사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그럴까요?
맞벌이 부부가 돈을 번다고 하지요. 여성이 더 많은 돈을 벌면 여성의 위치가 올라가지 않을까요? 남성이 자신보다 돈을 적게 버는(화폐 획득 능력이 낮은) 여성과 결혼을 하려는 이유는 돈 버는 능력(화폐 획득 능력)에 따라 가족 내 위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남성이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여성은 집안일과 아이 키우기를 책임지는 가족이 있다고 해 보지요.
여기서 남성은 사랑하는 남편이자 사랑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단순한 화폐 공급자의 역할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가족 내 위치도 화폐를 공급할 수 있는 그날까지입니다. 정서적으로 친밀한 아내와 자식 사이의 관계를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는 거지요.
‘나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말입니다.
반대로 화폐를 공급했으니 이제 집에서는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합니다. 모든 집안일과 아이 양육은 알아서 하라는 거지요. 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것, 즉 돈을 벌어 왔으니 나머지는 나 모르겠다는 겁니다.
5. 돈과 관심의 거래
노인 가운데 이런 식의 말씀을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집이고 돈이고 절대 죽기 전에 자식들한테 다 주면 안 돼. 내가 뭐라도 쥐고 있어야 자식들이 내 얼굴 보러 오지. 내가 가진 게 없어 봐, 뭐가 좋다고 늙어 빠진 나를 쳐다보겠어.”
슬픈 이야기입니다.
자식에게 그나마 관심을 받으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내가 돈을 쥐고 있으면 그 돈 때문에라도 자식이 나를 쳐다볼 것이고, 비록 돈 때문이지만 그렇게라도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관심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겠지요.
얼마 전에 전철을 탔는데 최불암이 나오는 광고가 붙어 있더라구요.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만든 주택연금 광고였습니다.
주택연금이란 게 ‘가지고 있는 집을 우리한테 맡기면 죽을 때까지 돈을 줄게. 그 대신 죽고 나면 그 집은 우리 꺼!’라는 거지요.
자녀들에게 생활비를 받으시겠습니까? 며느리에게 용돈 주시겠습니까?
만약 며느리에게 돈을 준다면 그 돈은 왜 주는 걸까요? 며느리가 당장에 생활비가 없어서 일까요? 아니면 며느리가 예쁜 옷을 사고 싶다고 해서?
돈과 인정 또는 관심을 맞바꾸는 거겠지요. 물질적인 돈과 심리적인 관심과 인정 사이에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돈을 주고받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하고, 서로를 존중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자본주의 사회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보네요.
돈을 내는 자 관심을 받을 것이요, 돈을 내지 못하는 자 버림받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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