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1], 민음사, 1998. 이윤기 옮김
나르키소스(나르시스는 프랑스어 표기라네요)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나오는 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나르시스로부터 나르시시즘이란 말이 생겼다고 하지요. 나 아닌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데, 그 어떤 사람이 나 자신이 되어버린 상태. 내가 나를 사랑하기.
리리오페는, 케피소스 강이 그 굽이치는 흐름으로 감아안는 사람에 처녀를 잃었는데, 그로부터 달이차자 사내아이를 낳은 것이다. 리리오페는, 강보에 싸여 있는데도 보는 사람의 얼을 빼놓을 만큼 잘생긴 이 아기, 그래서 망연자실, 그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바라보게 하는 이 아기를 <나르키소스>라고 이름했다. - 129쪽
나르키소스는 <망연자실>이라는 뜻이랍니다.
에코는, 동무들과 헤어져 인적 없는 숲속으로 혼자 들어온 이 나르키소스를 보고는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에코는 가만히 이 나르키소스의 뒤를 밟았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에코의 가슴은 그만큼 더 뜨거워졌다. 에코의 가슴은 이 사랑의 열기에 금방이라도 타버릴 것 같았다. 불길에 갖다 대기만 하면, 횃대 끝에다 재어놓은 유황이 타듯이... - 131
사랑, 마음을 빼앗고 뒤를 밟게 하고 가슴은 뜨겁게 하고 가슴을 태워버릴 것 같은 격렬한 감정. 사랑에 빠져본 사람은 공감할 수 있는. 이도령-성춘향, 로미오-줄리엣 등이 잘 보여준 감정의 상태
에코의 가슴에 내린, 나르키소스에 대한 사랑의 뿌리는 깊었다. 실연의 고통으로 몸부림칠 때마다 이 사랑의 뿌리는 나날이 깊어갔다. 격정이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에코는 하루가 다르게 여위어갔다. 나날이 수척해지면서 온몸에 주름살이 생겨나기까지 했다. 이렇게 여위어가다가 여위어가다가 에코의 아름답던 몸은 그만 한줌의 재로 변하여 바람에 날려가고 말았다. 남은 것은 뼈뿐이었으나 곧 이 뼈도 가루가 되어 날아가 버리자 마지막으로는 소리만 남았다. - 132
사랑을 이루지 못한 에코(메아리). 강한 사랑과 욕망, 강한 좌절과 고통
마른 목을 축이려고 샘물을 마시던 나르키소스는 또 하나의 참으로 이상한 갈증을 느꼈다. 물에 비친 아름다운 영상이 기이한 그리움을 지어낸 것이었다. 그는 물에 비친 그림자를 실체로 그릇 알고 그 그림자에 반해버린 것이었다. - 133, 134
물에 비친 모습을 실재로 알고 반해버린 나르키소스.
샘가에서 허리를 구부린 채 그는 두 개의 쌍둥이 별 같은 제 눈, 박쿠스나 아폴로의 머리채에 비길만한 제 머리채, 보드라운 뺨, 상아같이 흰 목, 백설 같은 피부에 장밋빛 홍조가 어린 아름다운 얼굴을 정신없이 바라보았다...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사랑하는 대상은 물론 자기 자신이었다. - 134
마치 다른 사람을 사랑하듯 자신을 사랑하게 됨. 예쁜 옷을 차려 입고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며 ‘아이 예뻐’하듯, 자신이 가진 돈과 권력을 떠올리며 흐뭇해하듯.
에코와 나르키소스
이 무정한 샘물에 입술을 대었으나 하릴없었다. 영상의 목을 감촉하려고 물에다 손을 넣었으나 이 역시 부질없는 짓이었다. 자기 자신의 목에다 손을 대면 될 일이나 그는 이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영상이 지펴낸 불꽃, 그의 눈을 속이는 환상, 그 환상이 지어낸 기이한 흥분에 쫓겼다. - 134
환상에 빠지고, 환상에 흥분하며, 환상에 만족감을 얻고, 환상에 좌절하는 동안 정작 실재의 자신은 잊어버린.
아득하게 긴 세월을 산 숲이여, 그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나만큼 괴로워하는 자를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자는 여기에 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고 내가 보는 내 사랑에, 나는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마침내 닿지 못하는구나...많지도 않은 물이 우리를 갈라놓고 있으니, 참으로 견딜 수가 없구나. - 135
사랑하는 그를 만지려고 해도, 그와 입을 맞추려고 해도 이룰 수 없는 갈망뿐. 에코가 그랬듯이 사랑의 고통에 빠진 나르키소스.
이렇게 한탄하면서 그는 샘물에 비치는 그 얼굴을 다시 한 번 눈여겨 바라보았다. 눈물이 샘물에 떨어지자 물 위에 파문이 일면서 그 영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라져가는 영상을 바라보며 그가 외쳤다.
“어디로 도망쳐, 이 무정한 것아! 너를 사랑하는 나를 버리지마! 네 몸에 손을 대는 게 싫다면 손대지 않으마. 그러니 이렇게 바라볼 수 있게만 해주어. 바라보면서 내 슬픈 사랑을 이별하게 해주어” - 136, 137
환상이 환상임을 깨닫고서도, 환상에서 벗어나기 보다는 환상 속에 머물고 싶어 하는 인간들. 환상이 주는 강렬한 감정.
따뜻한 햇살에 녹는 금빛 밀랍처럼, 아침 햇살에 풀잎을 떠나는 서리처럼, 그의 육신도 사랑의 고통 속에서 사위어가다 가슴 속의 불길에 천천히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붉은 반점이 내비치던 그 희디흰 살갗도 그 빛을 잃어갔고, 젊음의 혈기도 그에게서 빠져나갔다. 제 눈으로 그렇게 정신없이 바라보던 저 자신의 아름다움도 그의 몸을 떠났다. - 137
이룰 수 없는 사랑, 고통만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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