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하게 읽었던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
임꺽정은 경기도 양주 출신의 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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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살던 황해도 지역은 일찍부터 해택지를 비롯한 많은 땅이 개간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땅들은 모두 왕실과 지배층이 차지하고 농민들은 그 땅의 소작인으로 전락해 있었다. 특히 황주, 안악, 봉산, 재령 등은 일찍부터 바다에 가까운 하천에 인접한 지역으로 염분이 많고 저습한 지대였기 때문에 농경에 적합하지 않았다. 단지 갈대만이 무성한 곳이라 하여 이곳의 토지는 노전이라 불렀다. 부근의 백성은 갈대를 채취해 삿갓과 밥그릇을 만들어서 생계를 꾸려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노전은 결국 황무지라는 구실 하에 권세가의 토지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되자 그곳 주민은 갈대를 도리어 권세가에게서 구입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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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는 그 일당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임꺽정의 난이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모여서는 도적이 되고 흩어져서는 평범한 백성이 되며 출몰이 무상해 잡을 수가 없다.”라고 한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게릴라전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관의 공격이 있으면 민중 사이로 흩어져 일반 민중과 도무지 구별할 수 없었다. 이것은 민중의 지지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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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뒷날의 실록 기사이기는 하지만 한 사신(史臣)의 견해를 보자
근자에 외관이 부임하겠다는 인사를 드릴 때 왕이 내리는 지시는 으레 도적 잡는 것을 위주로 하니 이는 아픈 것만을 알고 병이 생기는 근본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저들 도적이 생겨나는 것은 도적질하기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굶주림과 추위에 몹시 시달리다가 부득이 하루라도 연명하려고 도적이 되는 자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백성을 도적으로 만든 자가 과연 누구인가? 권세가의 집은 공공연히 벼슬을 사려는 자들로 시장을 이루고 무뢰한 자제들은 백성을 약탈하니 백성이 어찌 도적이 되지 않겠는가? 왕은 이런 것을 알지 못하고 도적 잡는 일만 매번 간곡히 부탁하니 탄식을 금할 수 없다. - <<명종실록>> 권27, 명종16년10월 계유
임꺽정의 반란은 그저 단순한 강도 행위가 아니었다. 이는 16세기 중엽에 들어오면서 격화된 사회경제적 모순, 직접적으로는 권문세족이나 내수사에 의한 농장 확대나 토지 수탈, 그리고 여기에서 생기는 모순을 농민에게 전가시킨 왕조 지배 체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이성무, <조선왕조사>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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