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4년의 대만 원정, 이듬해 조선의 문호개방을 위해 의도적으로 일으킨 운양호 사건, 1894년의 청일전쟁, 1904년의 러일전쟁, 1905년의 을사늑약 강요, 1910년 한국병탄 등의 실제적인 식민지 경영을 위한 해외 침략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침략전쟁과 식민지 경영은 일본의 자본가들에게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었다...독점자본의 해외 진출과 이권을 보호해주는 것이 바로 해외에 파병된 일본군 무력이었으며, 일본군의 해외 침략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해준 것이 바로 일본 독점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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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발달도 인한 주기적인 경제불황과 1920년대 말경에 찾아온 세계 경제공황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의 독점자본과 군부세력은 서로 유착하여 각종 침략전쟁을 일으킴으로써 전쟁특수를 만들어냈다. 1930년대의 대륙침략은 이러한 경제적 배경 위에서 감행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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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7월7일 중일전쟁을 일으켜 본격적인 전시 통제경제를 실시했던 것이다. 이듬해 4월에는 제73회 의회에서 국가총동원법을 제정, 공포하여 노동통제․물자통제․무역통제․금융통제․기업통제 등 경제활동 전반을 통제하고, 인적․물적 모든 자원을 군사목적에 총동원하는 막강한 권한을 정부가 갖게 되었다.
- 김승태, '일본군 ‘위안부’ 정책 형성의 일본측 역사적 배경',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일본군 ‘위반부’ 문제의 진상> 가운데
일본의 군대와 자본이 조선과 중국으로 진출하듯,
미국의 군대와 자본이 이라크로 진출하듯,
이스라엘의 군대와 자본이 팔레스타인으로 진출하듯
이윤을 생산하기 위한 국가와 군대의 활동 그리고 전쟁
카르타고는 지중해 서부 무역의 독점권을 보호하고, 선박들의 입출항을 규제하고, 식민시들을 보호하고, 해적을 퇴치하기 위해서 해군이 필요했다.
- 세드릭 A.요/프리츠 하이켈하임, <로마사>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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