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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여성의 노예화

순돌이 아빠^.^ 2013. 7. 10. 18:36

해외에 파병된 일본군이 현지인에게 저지르는 성적 만행은 일본군의 위신을 실추시키고 현지인들의 항일의식을 더욱 강화시켰다. 그리고 무분별한 성적 접촉은 일본군 내에 성병의 만연을 가져와 전투력 유지에도 많은 지장을 주었다...군부 수뇌들은 이에 대한 대책으로 ‘군위안소’를 설치하여 군에서 직접 통제, 관리하면서 사병들이 정기적으로 위안소를 찾게 함으로써 군의 정서를 순화하고 불만을 유화시키는 정책을 구상했다. 초기에는 이러한 위안소 시설을 군이 직접 하지 않고 민간업자들을 통해 했지만, 전선의 확대와 수요의 증대, 통제의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점차 군이 직접 경영하거나 행정 당국의 협조를 얻어 운영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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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산포병 제3연대 응산 연대 본부에서 각 대대장에게 내린 1937년...6월10일자 지시의 ‘정신적 위안에 관한 건이라는 항목...

(3) 특수위안소 이외에 다시 사단에서 판매인을 지정하여 기분 좋은 음식점 또는 카페식의 것을 설치(예컨대 군인 홈)하여 한층 병사의 위안에 힘쓸 것
(4) 현재 특수위안소는 위안부의 수가 적어 단지 정욕을 채우는 데 불과하다. 좀더 위안부를 눌려서 정신적 위안도 줄 수 있도록 지도하기 바람

- 김승태, '일본군 ‘위안부’ 정책 형성의 일본측 역사적 배경',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일본군 ‘위반부’ 문제의 진상> 가운데




1. 일본군에 의한 강간이 계속 벌어지자 항일 의식과 투쟁이 커짐. 일본에게 문제는 '강간'이 아니라 항일 투쟁이 커진다는 것


2. 성병은 전투력 약화 시킴. 전투력 강화를 위해 성병 발생을 통제할 필요


3. 성욕 때문에 생기는 불만. 성욕을 실현함으로써 정서 변화


4. 전쟁 도구로써의 일본 군인. 도구가 잘 작동하도록 신체와 정서 상태 만들기. 전쟁 도구가 잘 작동하도록 신체와 정서 상태 만드는 데 필요한 도구로써의 위안소와 성노예




위안소의 설치 장소나 건물 등에 대해서는 물론, 종업원과 ‘위안부’의 인적 변동상황에 대해서도 일일이 그 지역 병참 담당장교의 허가를 받게 되어 있었고
- 강만길, '일본군 ‘위안부’의 개념과 호칭 문제',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일본군 ‘위반부’ 문제의 진상> 가운데



일본 제국주의는 끌어간 여성을 물건으로 보았다. 중일전쟁이 일어난 후에는 일본 ‘천황’이 그의 적자赤子에게 내리는 하사품으로 보았다. 태평양의 섬으로 가는 배 안에서 “배 안에서 사용금지”라는 경고문이 붙은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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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옥, ‘조선 식민정책’의 일환으로서 일본군 ‘위안부’,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일본군 ‘위반부’ 문제의 진상> 가운데






안부는 전투력 유지에 필요한 급품의 하나였던 것. 여성은 인간이 아니라 사물이 되고 노예화.


'노예'화 했다는 것은 인신을 지배하고 생사여탈권까지 쥐었다는 것. 부르주아 사회에서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지배하지만 노동자를 마음대로 죽일 수는 것과 비교.


노예'화' 했다는 것은 미국 흑인 노예의 경우와 같이 생산 과정에 투입하여 생산물을 만드는 도구로써의 노예는 아니라는 것. 생산 관계 속의 노예라기 보다는 지배-예속 관계 속에서 노예적的이라는 것.


백인 자본가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흑인 노예이거나 일본군인의 성욕 실현을 위한 도구로써의 여성 노예이거나 다른 인간의 도구로써 사물화 되기는 마찬가지.



군인들은 위안소를 주로 ‘삐야(삐屋)’로 불렀고 ‘위안소’, ‘빵빵야(빵빵屋)’라고 부르기도 했다. 위안부는 ‘삐’ 혹은 민족에 따라 ‘일본삐’ ‘조선삐’ ‘지나삐’ ‘대만쿠냥(처녀)’ 등으로 불리었다. 여기서 삐는 중국어로 여성의 성기를 의미하는 말이다...수마트라에서는 위안부를 ‘쟈랑삐’라고 불렀는데, ‘쟈랑’이란 걸어간다는 뜻으로 부대가 이동할 때마다 따라다니는 여자를 가리켰다.

증언자들은 위안소 생활을 할 때 군인을 너무 많이 받아서 생긴 병(성병, 결핵 등), 아편중독, 출산 등의 이유로 많은 여자들이 죽었다고도 했다. 사례 중의 한 명도 두 번까지 병에 걸리면 치료하다가 세 번째 재발하면 군인이 와서 데리고 나가는데, 이 여자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였다. 중국 석가장에 있었던 한 군인도 d라고 지내던 위생병에게서 “병으로 몇 번 온 여자는 치료할 방법이 없어서 처분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여기서 처분한다는 것은 죽이는 것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 여순주, '일본군 ‘위안부’ 생활에 관한 연구',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일본군 ‘위반부’ 문제의 진상>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