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착취.폭력/지배.착취.폭력-여러가지

국가의 활동. 자본의 운동

순돌이 아빠^.^ 2013. 8. 26. 22:01

1938년...(일본의)국가총동원법이란 자본, 물자, 노동력, 금융, 생산 물가 등을 비롯한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전쟁수행을 위하여 국가통제 아래 둔다는 것이었다. 즉, 신문, 잡지, 기타 출판물의 언론 통제, 노동쟁의 금지, 교육․학문의 통제 등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정부가 가진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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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총동원법이 성립하자, 이 최대한의 이윤을 노리고 재벌은 앞을 다투어 군수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시작하였다. 미쓰이 재벌은 시바우라 전기, 대일본 셀룰로이드, 동양고압, 도요다 자동차, 일만 알미늄, 일본제강, 미쓰이 광산 등 모든 방면에 진출하여 많은 공장을 신설 확장하였다. 미쓰비시 재벌도 기존의 군수공장인 미쓰비시 중공업, 미쓰비시 전기, 미쓰비시 광업을 확장하고, 스미또모 재벌도 스미또모 금속, 스미또모 화학, 스미또모 알미늄, 스미또모 광업 등을 확장하여 거대한 이윤을 얻었다. 또한 대재벌은 거대한 자금을 가지고 신흥재벌의 군수부분도 지배하였다. 미쓰이는 나까지마 항공기를, 미쓰비시는 일본질소를, 야스다는 아사노 시멘트 등을 지배하였다. 이리하여 자본의 집적과 집중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국가총동원법에 의한 통제는 이들 재벌 독점자본의 최대한의 이윤을 위해 기여하였으며, 그 결과 일본의 국가자본주의는 더욱더 발전하게 되었다.


- 강동진, <일본근대사> 가운데



1840년대 미국은 일본에 본격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미국의 공업과 농업생산에 경제혁명이 진행되면서 새로운 시장이 절실해지고 있었다. [헌츠 머천트 매거진]은 1851년에 이미 “새로운 출구를 찾아야만 하는 자본이 계속 증가하여 미국에 잠재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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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1월 2차 일본원정에 나선 페리 함대는 두 척의 증기 순양함, 네 척의 전함, 세 척의 보급선으로 구성되었다. 미국 해군력의 4분의 1을 점하는 것이었다...1854년 3월 요코하마에서 페리는 에도 막부를 상대로 협상을 시작하면서 위협적인 포함외교를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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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3월31일 가나가와 조약이 체결된다. 그것은 다른 열강에 대해서도 일본의 개방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854년 10월 영국이, 그리고 그 다음해 2월 러시아가 일본과 유사한 통상조약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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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반에서 서양 열강들이 “조약항체제”라는 느슨한 ‘영향권’ 개념을 바탕으로 중국에 대한 공동 경영을 생각하고 있는 것과 일본의 대륙구상은 달랐다. 그 이유를 W.G.비즐리는 크게 두 가지로 파악했다.
첫째, 일본의 산업 경쟁력은 서양 열강에 비해 아직 미성숙한 단계였다. 따라서 미국이 주장하는 수준의 문호개방체제에서는 일본이 확보한 영향권에서도 일본 산업은 경쟁력이 떨어졌다. 따라서 일본이 만주를 자신의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조양항체제와는 다른 배타적인 정치적 통제를 동반하는 영향권 확립이 필요했다.

- 이삼성,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2> 가운데





국가는 자본이 자유롭게 활동하며 이윤을 생산할 수 있는 제반 조건을 만들고

자본가는 자본을 투하하여 이윤을 얻고.


자본의 운동과 이윤 생산을 위한 국가의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