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착취.폭력/지배.착취.폭력-여러가지

은행이란

순돌이 아빠^.^ 2013. 8. 28. 22:35

자본의 운동과 이윤 생산을 위해

군대가 폭력의 측면에서 활동한다면

화폐, 재정의 측면에서 활동하는 은행





조선에 처음 은행이 출연한 것은 일본의 국립제일은행이 부산에 지점을 설치한 1878년 6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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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은행의 지점은 조선에 대한 일본의 경제적 침략의 가장 중요한 지점으로 일본 상인에 대한 대부와 한업무 이와의 다음과 같은 특수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1. 지금(地金), 은(銀)의 매입
2. 조선정부에 대한 차관
3. 조선 각 개항장의 해관세 관리
4. 은행권의 발행
5. 조선국고의 관리
6. 조선화폐의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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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에 제일은행 인천 지점은 조선정부에 은화 3만량을 대부해주고 그 담보로 인천, 부산, 원산 3항의 해관세를 관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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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각종 화폐가 통용되고 있었는데 1899년에는 일본 정부의 강요로 그것을 전 조선에 통용시킨다는 것을 공인시키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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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의 시작과 함께 조선을 점령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제일은행 서울 지점을 한국 총지점으로 개칭하고 조선 국고의 관리와 화폐정리사업을 담당하게 하였다. 이때부터 조선의 금융․화폐는 완전히 침략자들의 수중에 장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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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일본 세력에 대항하여 조선에서 적극적 태도를 취했던 나라는 제정 러시아였다. 제정 러시아 정부는 1897년 11월 조선 정부로 하여금 러시아인 알렉세예프를 재정고문 겸 해관 총세무사로 초빙하고 (이 때 해관 총 세무사는 영국인 브라운이었다), 다음 1898년 2월에는 서울의 한․러 은행을 설립하여 조선에서의 일본 제일은행의 재정 경제상의 세력을 뒤엎고자 하였다. 그러나 일본인은 영국인과 협력하여 제정 러시아 정부의 기도에 대항했다. 그들은 먼저 조선 정부 내의 친일 분자를 사주하여 브라운을 총세무사에 복직시키고 다음에는 알렉세예프를 재정고문의 지위에서 해임시키고 같은 해 4월에는 한․러 은행을 폐쇄시켰다. 이렇게 하여, 한․러 은행은 창립 후 사업에 착수하기 전에 문을 닫아 버렸다.

- 전석담, 최윤규, 이기수, 김한주, <조선근대 사회 경제사> 가운데



제일은행권 발행의 의의도 자본축적이 약체이었던 일본자본주의가 신용창조에 의해 자금창출을 꾀한 것이라는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당시 조선 정부의 모대신이 ‘일본은 가난한 나라이고, 그 때문에 “종이”로써 한국의 물산을 탈거奪去하려 한다’라고 한 말은 본질을 꿰뚫고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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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은행 조선지점의)대출용도별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1909년 단계에서 상업이 압도적이고(89%), 농업은 0, 공업도 겨우 3%에 불과...이것은 일본자본주의에 의한 조선경제 장악의 순서가 우선 상업을 기반으로 하고 다음에 토지소유(나아가서 이것에 의해 임노동창출과 ‘공업화’의 기반확보로‘로 발전하는 그 단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


- 村上勝彦, <식민지-일본의 산업혁명과 식민지 조선>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