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착취.폭력/지배.착취.폭력-여러가지

국가. 고문. 폭력

순돌이 아빠^.^ 2014. 1. 22. 18:06

 

‘유교적 합리주의’가 꼭 신화만은 아니었음에도, ‘국가 보위’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는 불에 달군 대꼬치가 ‘모반자’로 의심받은 이의 신체를 가차 없이 지져야 했다. 이근수처럼 강직해 집권자들이 위험시하는 인물이 고문실에서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 속에 죽어야만 그와 같은 처지의 영남 남인들이 불에 달군 대꼬치가 무서워서라도 국정을 마음대로 논하지 않는다는 게 조병로와 같은 노론계 지배자들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몸을 찢어버리는 대꼬치에 대한 생물적 공포심, 이것이야말로 궁극에 가서 조선왕조의 안전을 담보하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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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열이란, 수형자의 팔다리를 네 개의 차에 묶어 그 차를 각각 다른 방향으로 몰아 수형자의 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을 말한다. 특히 정치범은 참수당한 머리를 ‘효수’, 즉 말뚝에 꽂아 만백성에게 전시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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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성(인간으로서 참기 어려운 신체적 통증을 가하려는 경향), 그리고 가시성, 즉 대중적 공포 효과를 겸비했다고 볼 수 있다. 툭하면 ‘인의예지’를 들먹이는 성리학적 지배자들에게 국경을 넘으려는 궁핍한 백성까지 잡아 죽이는 포괄적 사형제와 차열 등과 같은 잔혹한 혹형, 그리고 수형자의 머리를 말뚝에 박아 저잣거리에서 보여주는 선혈이 낭자한 쇼가 왜 그토록 필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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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는 자와 빼앗기는 자의 구분이 명확하고 피착취자가 주린 배조차 채우지 못하는 전근대 사회에서 피착취자의 저항은 당연히 예상되는 일이고, 그 저항을 미리부터 방지하는 것이야말로 착취자들의 급선무였다. 저항에 대한 최적의 ‘예방주사’란 바로 고문과 참혹한 처형을 최대한 가시화함으로써 잠재적 반란자들에게 극심한 신체적 ‘아픔’에 대한 생물적 공포를 자극해 그들의 저항 의지를 미리부터 꺾는 것이었다. 생물체라면 불에 달군 대꼬치에 대해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동물적 겁’이야말로 ‘동방예의지국’이 유지될 수 있는 하나의 비결이었다.

- 박노자,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