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것들/스치는생각

기독교와 사회개혁

순돌이 아빠^.^ 2014. 5. 12. 17:20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분은 성전으로 들어가셔서 성전에서 사고파는 사람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시며 환전상들의 책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엎으셨다...마침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듣고서 어떻게든 그분을 없애버릴까 하고 궁리했다. 사실 그들은 그분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군중이 모두 그분의 가르침을 매우 놀라워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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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단순히 상인들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 그들 뒤에서 버티고 서서 돈을 버는 큰손들을 향한 공개 시위다. 유대교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을 향한 비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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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보수공사 등 일자리 제공, 제사 용품 판매와 환전을 위한 임대 계약,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용 등으로 예루살렘 성전은 큰 고용주였다. 그런 이권개입에서 생기는 이득을 상상해보라. 축제 때마다 예루살렘 성전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엄청났을 것이다. 더구나 예루살렘 성전은 최고법원(산헤드린)이 있는 곳이다.
정원이 71명인 최고법원의 의장, 즉 대법원장은 곧 대사제였다. 성전은 종교, 정치, 경제, 사법부를 합친 복합체로서 이스라엘의 가장 큰 권력 집단이다. 이스라엘 권력 한복판에서, 그것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축제 현장에서 예수는 공개 시위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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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항쟁 사건이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성서연구 역사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유럽 역사에서 그리스도교는 왕족, 귀족, 고위 성직자로 이루어진 왕조체제의 커다란 버팀목이었다. 그리스도교는 사회개혁 세력이 아니라 체제유지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성전 항쟁 이야기가 그리스도교 설교에서 왜 거의 언급되지 않을까. 예수는 정치행위를 한 적이 없다는 설교를 우리는 지겹게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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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항쟁 이야기가 신도들의 비판의식과 개혁 정신을 자극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신도들이 종교 내부의 개혁을 촉구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성직자 대부분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성서를 잘 아는 신자들이다. 그들은 말 잘 듣고, 돈 잘 내고, 질문하지 않는 신도를 제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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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최고회의 의장을 겸하는 대제관은 식민지 로마 치하에서 유대 최고 권력자다. 청치와 종교의 최고 지위를 종교인이 장악한 것이다. 물론 로마 군대의 허락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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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하늘을 이야기하며 현실에서 도망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그리스도교는 현실 도피와 아무 관계 없는 종교다. 교회는 세상 안에서 세상 밖을 지향하는 게 아니라 세상 안에서 세상에 맞서는 현실 저항의 상징이다. 하늘을 가리키며 땅을 잊는게 아니라 하늘에 의지하여 땅을 꿰뚫는 종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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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신학이 똑같이 대우할 수는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사랑하는 방식은 같지 않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같은 시각으로 볼 수는 없다. 누구 편을 들 것인지 신학자는 진지하게 고뇌해야 한다...가해자를 혼내고 피해자를 위로하는 신학이 예수 정신에 걸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난한 사람을, 역사의 희생자를 편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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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해방은 고난과 함께 시작된다. 불의에 대한 저항에서 해방은 시작된다. 해방이라는 기쁨을 맞이하려면 불의에 저항해야 하고 그 저항에서 겪을 고난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십자가는 남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내가 고통을 자원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불의에 저항한다는 듯이다. 불의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예수는 몸소 행동을 운명으로 보여주었다.
예수의 가르침과 행동은 일치하였다. 가르치는 사람이 먼저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는 사람이 먼저 행동해야 한다.


- 김근수, <슬픈 예수>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