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지식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있다. 문맹률이 높은 남미에서 신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글을 이해하기 쉽게 쓸지 고심한다. 내 스승 소브리노는 이렇게 묻지 않았다.
“여러분은 제 말을 제대로 이해했습니까?”
그 대신 그는 이렇게 물었다.
“여러분께 제가 설명을 제대로 한 것입니까?”
...
글의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도, 수사법에도 가난한 사람을 배려하는 겸손이 필요하다. 낮은 자세로 글 쓰는 마음이 중요하다.
- 김근수, <슬픈 예수>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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