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참되게 따르는 두 사람만 있어도 교회는 성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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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와 꼴찌 발언은 보낼 왕과 노예, 지배자와 피지배자에 관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자신을 포기하고 예수를 따름은 교회를 세우는 데 보탬이 되는 희생이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아래로 낮추어 보거나 나중 사람으로 따돌리면서 그들을 지배하려는 욕심은 공동체에 커다란 장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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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층 신자와 지도받는 신자로 나뉘는 차별, 일부 신자들의 성직자화, 신자에 대한 성직자의 지배 등 예수가 이해하지 못할 현상들이 그리스도교에 출현했고 지속되고 있다. 가톨릭은 성직자 독재로, 개신교는 일부 신도(장로)들의 횡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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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그리스도교에서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은 성서에 손을 얹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가장 성서를 읽기 두려워할 것이다. 그들이 예수를 가장 두려워할 것이다. 첫째가 꼴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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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인도 어느 곳에서는 성당 앞줄 좌석에는 어떤 신분의 신자들이 앉아계시고 뒤쪽에는 다른 신분의 신자들이 땅바닥에 앉아 미사에 참여한다고 한다. 그런 어이없는 현장을 그대로 바라보고 허용하는 성직자들은 대체 무엇하는 사람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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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가르치시며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시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기다란 예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 장터에서 인사받는 것, 회당에서도 높은 좌석, 잔치에서도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과부들의 집을 삼키며,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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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학자는 우리 시대로 보면 신학자와 법조인을 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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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비판은 대중의 인정을 받으려 애쓰는 명예욕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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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에서 신자들은 성서보관함이 있는 앞쪽을 향해 앉았지만 율법학자들은 특별히 따로 마련된 자리에서 신도를 향해 앉았으며 절대로 군중 곁에 앉지 않았다. 잔칫집에 율법학자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감격했다. 잔치에서 명예로운 자리인 주인 옆자리는 율법학자들 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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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비판은 율법학자들의 소유욕에 대한 것이다...‘집을 삼킨’은 재산의 불법 약탈을 뜻한다. 악덕 법조인이었던 일부 율법학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원망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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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에서 교황이나 주교가 손에 쥐는 지팡이는 권력의 상징이다. 머리에 쓰는 관도 권력의 상징이다. 왜 종교인들이 권력의 상징을 사용할까. 권력과 가장 거리가 멀어야 할 종교인들이 말이다.
- 김근수, <슬픈 예수> 가운데
어디 교회만 그럴까요
나 또한 반성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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