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해자는 망각을 조장한다. 가해자는 할 수 있는 것이란 다 한다. 은폐와 침묵이야말로 가해자의 첫 번째 방어책이다. 은폐에 성공하지 못하면 가해자는 피해자의 신뢰성을 공격한다. 그녀를 완전히 침묵시킬 수 없다면 그는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없도록 만든다. 이 목적을 위하여, 그는 가장 뻔한 부정에서부터 가장 정교하고 고상한 종류의 합리화까지 일련의 인상적인 논쟁을 늘어놓는다. 잔학 행위 이후 우리는 비슷하고 뻔한 사과를 들을 수 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피해자가 거짓말을 한다, 피해자가 과정을 한다, 피해자가 초래한 일이다. 그리고 어떤 사건이든 이제 과거는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가해자의 권력이 크면 클수록, 현실을 명명하고 정의하는 그의 특권은 더욱 커지고, 그의 논쟁은 더 완전해지고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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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애초에 존중받지 못하는 이들(여성, 어린아이)인 경우, 그들은 생의 가장 치명적인 사건이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현실의 영역 바깥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들의 경험은 말하기가 금지된 무엇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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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외상에 대한 연구는 피해자를 믿지 못하거나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버리려는 이러한 경향과 지속적으로 싸워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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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의 실재를 의식에 붙들어 놓기 위해서는 피해자를 인정하고 보호하며, 피해자와 목격자가 동맹을 맺을 수 있는 사회적 바탕이 필요하다. 피해자 개인을 위한 사회적 바탕은 친구, 사랑하는 이,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를 통하여 다져진다. 보다 큰 사회를 위한 사회적 바탕은 힘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는 정치적 운동을 통하여 다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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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운동은 연구자와 환자의 동맹을 정당화하고, 침묵을 강요하고 그러한 현상 자체를 부정하기 일쑤인 사회적 흐름에 반대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있다. 인권 운동이 강력하게 뒷받침해 주지 못할 경우, 적극적인 증언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또다시 망각의 역사가 되풀이될 것이다. 억압과 해리, 부정은 한 사람의 의식 안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
- 주디스 허먼, <트라우마-가정 폭력에서 정치적 테러까지>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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