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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공격성

순돌이 아빠^.^ 2015. 2. 21. 20:07

홍당무는 길에서 굴뚝 청소부처럼 새까만 두더지를 보았다. 두더지를 가지고 놀다가 싫증이 나자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돌 위에 떨어지도록 두더지를 공중으로 높이 던졌다.
...
“제기랄, 정말 끈질기네”
...
눈물을 글썽이며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두더지를 쏘아보더니 침을 뱉고 욕을 했다. 그러고는 가까이에 있는 돌 위에 찍어 내리듯 던져 버렸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졌는데도 두더지의 배는 여전히 꿈틀대며 움직였다.
홍당무가 열을 내면서 내동댕이칠수록 두더지는 죽지 않으려고 버티며 다시 살아나는 듯이 보였다. 


- 질 르나르, <홍당무> 가운데








인간 세상에는 갑자기 화를 크게 낸다거나 물건을 때려 부순다거나 심지어는 사람을 죽인다는 거나 하는 행동이 나타납니다. 그런 행동을 해 놓고 나서 본인도 놀랄 때가 있지요.

내가 왜 그랬을까, 그럴만한 일도 아니었는데...

주변 사람들도 놀랍니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요? 엄마 말에 고분고분 따르려고 하고 아빠와 산책하기를 좋아하는 홍당무는 왜 두더지를 그렇게도 잔혹하게 죽였을까요? 두더지가 홍당무를 괴롭혔을까요?



유아 연구 분야에서는 초기에 나타나는 격노를 정동으로 보고 있으며, 격노의 기본적인 기능은 고통이나 짜증의 원천을 없애는 것이라고 본다. 후기 발달단계에서의 격노는 만족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즉, 격노의 본래적인 생물학적 기능-짜증의 원천을 없애 버리라고 돌보는 사람에게 촉구하는-이 이제는 양육자에게 자신이 바라는 만족스러운 상태를 회복해 달라는 더욱 구체적인 호소로 발달하는 것이다.


격노 반응의 주변에는 무의식적 환상들이 발달한다. 이 환상들 속에서 격노는 전적으로 나쁜 대상관계를 활성화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 나쁜 대상관계를 없애버리고 보다 전적으로 좋은 대상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소망을 나타낸다.


보다 후기 발달단계가 되면, 격노 반응은 극도로 좌절스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자율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최후의 노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격렬하게 자기 의지를 주장하는 것은 자기애적 평형 상태를 회복하기 위함이다.


- 오토 컨버그, <인격장애와 성도착에서의 공격성> 가운데



홍당무는 평소에 가족들로부터 괴롭힘을 많이 받습니다. 사랑을 받는 횟수보다는 두들겨 맞는 횟수가 더 많지요. 관심보다는 외면이 일상생활이구요. 이런 홍당무의 마음은 어떤 상태일까요?

자신을 화나게 하고 짜증나게 하는 것들을 없애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자신을 직접적으로 괴롭힌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이유에서 대상에게 나를 괴롭힌다는 이유를 가져다 붙이고는 그 대상을 괴롭히거나 제거하려 드는 건 아닐까요?

홍당무가 정말 원했던 것은 화내고 때리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랑 받고 관심 받고 행복을 느끼는 수 있는 인간 관계는 아니었을까요? 무기력하게 당하며 분노만 쌓았던 삶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여기는' 것을 제거하려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좀 더 편안해지려는 것은 아닐까요.






강한 공격성으로 타인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외부의 힘으로라도 일단 그 행동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그러고 나서는 왜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치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