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 애니카 다이렉트의 광고입니다. 야구 중계를 보는데 중간 중간에 나와서 보게 되었습니다.
이 광고를 볼 때마다 깜짝 깜짝 놀랍니다. 부장이라는 이유로 저렇게 소리를 질러도 되나 싶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어이없게 느껴지거나 근거 없다 싶으면 왜 어이가 없는지, 근거가 없는지 이야기를 하고 대화를 나누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 광고에서 강소라가 만약 그냥 직원이나 대리가 아니라 사장이나 상무쯤 됐으면 어땠을까요? 그래도 부장이 강소라에게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을까요? 아마 사장이나 상무가 그랬으면 ‘하하하...정말 좋은 말씀이십니다. 그런 걸 어떻게 아셨어요?’하지 않았을까요?
마음속에 있는 분노와 공격성이 부장이라는 지위와 결합해서 밖으로 터져 나올 수 있었겠지요. 분노와 공격성이 없다면 부장이라는 지위가 있다고 해도 그렇게 소리를 지르지 않았을 테고, 분노와 공격성이 있다고 해도 부장이라는 지위가 없다면 그렇게 소리를 지르지 못했겠지요.
그냥 우연히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저렇게 소리를 질렀다가는 큰 난리가 날겁니다.. 지위에 따라 힘의 차이가 생기는 기업이라는 조직 안에 있기 때문에 저런 일이 벌어지는 걸 거구요.
우리 사는 세상에는 이와 비슷한 일이 참 많습니다. 만약 A라는 여성이 시어머니가 아니라면 B라는 여성에게 ‘남편한테 잘 해라’ ‘반찬이 이게 뭐냐’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냐’ 등등의 잔소리를 할 수 있을까요? 지위에 따라 힘의 차이가 생기는 가족 안에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가능한 거겠지요.
다른 학생에게 ‘엎드려뻗쳐’를 시킬 수 있는 것도 선배라는 지위 때문이죠. 이 자식 저 자식하며 학생들에게 욕을 할 수 있는 것도 교사라는 지위 때문이구요.
그러고 보면 이 지위라는 것은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합니다. 지위만 아니라면 생기지 않았을 괴롭힘들.
지위 때문에 괴롭힘을 당한 사람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1. 그래 맞아. 지위를 이용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좋지 않아. 나는 비록 어쩔 수 없이 이런 일을 겪지만, 내가 저 자리에 가면 절대 안 그래야지.
2. 그래 지금은 내가 힘이 없어서 참는다. 하지만 두고 봐라. 내가 저 자리에 오르면 나도 똑같이 해 줘야지.
1번의 경우가 많을까요, 2번의 경우가 많을까요?
만약 누군가의 마음에 2번의 경우가 벌어진다면, 그 사람은 그 지위를 얻기 위해 노력하겠지요. 복수를 꿈꾸며.
세월이 흘러 그 사람이 부장이 됐다고 하지요. 옛날 부장은 이미 퇴직을 했구요. 그러면 복수 아닌 복수를 누구한테 하겠습니까? 자신을 한 번도 괴롭힌 적이 없는 그냥 직원이나 대리한테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겠지요.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과거의 부장도 그렇고 지금의 부장도 그렇고, 누가 부장이 되건 다른 사람과 차근히 대화하기 보다는 소리 지르고 화를 내는 일이 계속되는 겁니다.
저는 야구 중계 보는 걸 좋아합니다.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지요. 제가 팀의 속사정을 잘 모르지만, 중계 도중 진행자나 해설자가 롯데의 이종운 감독과 코치들이 선수들을 편하게 해 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얼마 전에 롯데의 한 선수가 홈런을 치자 대기실에 있던 선수 강민호가 감독한테 달려가서 웃으며 두 손으로 크게 하이파이브를 하는 장면이 화면에 잡혔습니다.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평소에 감독이 앞 광고의 부장처럼 시시때때로 소리를 지르고 이래라 저래라 지시·명령을 일삼았다면 과연 저런 일이 벌어질까 싶었습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고 그냥 화면만 보면서 느낀 겁니다.
야구단의 감독이 선수 위에 올라선 지배자일수도 있겠지만, 선수들이 운동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일수도 있겠지요. 차이라면 선수들은 직접 경기에 나서는 사람이고 감독은 선수와 경기 상황을 보면서 전체가 잘 움직일 수 있도록 조율하는 사람인 거겠지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다른 연주자들 위에 올라선 지배자일수도 있겠지만, 연주자들이 연주를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일수도 있겠지요. 지휘자가 없으면 바이올린과 첼로의 박자가 잘 안 맞을 수도 있고, 트럼펫과 오보에의 소리 크기가 약간 엇나갈 수도 있으니 전체를 조율하는 거지요.
만약 감독이나 지휘자가 지배자가 아니라 도움주고 조율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도 전체 야구단과 오케스트라의 일부인 거겠지요.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를 게 없는 한 구성원으로써의 역할을 하는 겁니다. 이종운이 감독의 역할을 하고 강민호가 포수의 역할을 하고 아두치가 중견수의 역할을 하는 겁니다. 지휘자가 지휘를 하고 바이올린이 애절한 고음을 내는 동안 더블베이스가 무거운 소리로 뒷받침을 하는 거지요.
저는 감독이 아무리 훌륭하고 팀이 1등을 해도 선수들을 제 마음대로 부려먹는다면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차라리 꼴찌를 해도 감독과 코치와 선수들이 서로 협력하고 도와주면서 함께 경기를 풀어가는 게 좋습니다. 실력이 모자라서 꼴찌를 하는 거야 더 노력해서 다음에 더 잘하면 되겠지요. 왜냐하면 제게 야구는 어느 팀이 이기느냐 보다, 선수와 관중 모두 야구를 통해 즐거움을 얻는 게 더 중요하게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야구가 필요한 이유는 함께 몸과 마음을 움직이고 응원하고 웃고 즐기자는 거잖아요.
저는 지휘자가 아무리 훌륭하고 오케스트라가 세계 제일의 소리를 낸다고 해도 지휘자가 단원을 함부로 대한다면 달갑지 않습니다. 그 지휘자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수 십 개의 악기 하나하나가 내는 소리를 다 구별하고 틀린 곳을 골라내는 능력을 가졌건, 아니면 남들이 하지 못하는 곡의 해석을 통해 청중들에게 새로운 음악 세계를 들려줬다고 했건 아무튼 마찬가지입니다. 연주자가 그저 지휘자가 이끄는 기계의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 연주는 음악을 하기는 하는데 감정이 죽어버린 연주가 될 테니까요. 감정을 살아 있게 하고 닫힌 마음을 열어보자고 음악이 우리에게 필요한 거니까요.
물건을 만드는 곳이든 공부를 하는 곳이든 야구를 하는 곳이든 음악을
하는 곳이든 지위는 사라지고 역할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느린 것 같고 당장에 큰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 같아도,
길게 보면 사람의 자발성을 키우고 활력을 만들고 창조력을 높일 수 있는 길이 될 것 같습니다.
한 그루만 유독 높이 자라 넓게 가지를 펼치면 그 주변에 있는 나무들은 빛을 받지 못해 움츠러들 겁니다. 그 한 나무는 높게 자릴지 모르지만 함께 숲을 이루기는 어려울 겁니다.
한 그루 한 그루가 충분히 햇빛을 받고 물을 마시면 모든 나무가 살아 숨 쉬고 무럭무럭 자라겠지요. 그러면 그 숲은 여름 태양 아래 환하게 빛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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