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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연,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순돌이 아빠^.^ 2015. 9. 8. 15:38



은수연,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이매진, 2015




우리는 피해자들을 생존자survivor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나약하고 수동적인 피해자가 아니라, 치유를 향한 용기와 지혜, 그리고 좌절과 희망을 반복하면서 누구보다 질긴 생명력과 인간의 존엄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 8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죽여버릴 거야’라던 그 사람의 말은 거짓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 사실을 말하면 죽게 될지도 모르는 건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 순간은, 내가 집에서 아빠에게 겪은 일을 한 사람 두 사람 외부인에게 말하게 된 때였다. 그 과정에서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고, 아빠가 하는 짓이 무엇인지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짓은 벌을 받고 감옥에 갇히고, 사회적으로 ‘아빠가 죽일 놈’이 될 짓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 11

얼마 전 영화 <도가니>를 봤다.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죽여버릴 거야’
‘우리 가서 씻자’

내 기억에 또렷하게 박힌 말들이 영화에서 흘러나왔다. 성폭력 가해자들을 위한 매뉴얼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닮아 있는 가해자들의 표정과 대사들 . 아빠 같은 사람이 세상에 또 있구나 하는 생각에 살짝 겁이 났다.
...
<도가니> 이야기 속에서 가해자들에 맞서 피해자들을 지켜주고 도와주는 사람들, 그리고 이유 없이 당한 상처를 딛고 성장해가는 아이들을 보며 결국 답은 ‘사람’이라구나 했다. 그런 희망이 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또 그런 희망이 돼보려고 손 내밀고 싶어 이 책을 세상에 내놓기로 했다.
...
응어리진 가슴이 조금씩 풀려가면서 <도가니> 속 아이들이 가졌던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소중한 사람이구나, 나도 다른 사람들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던 그 마음을 나도 조심스레 품어본다. 상처가 깊은 사람들에게 조금 힘이 날 수 있는 글이었으면 하고, 그 사람들을 돕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글이기를 바란다. - 12

심각한 사회 문제인 성폭력의 깊은 상처를 공유하고 싶었다. 그리고 성폭력을 대하는 사회적 편견이 조금 바뀌기를 바랐으며,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온 내 이야기를 통해 성폭력을 당해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 동네, 내가 일하는 곳에서 내 상처 때문에 이해나 배려, 수군거림의 대상이 되고 싶지는 않다...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나로서는 필명이 조금 더 편할 것 같았다. - 13

지난번 가출 이후 그 사람은 나를 집에 두고 외출할 때는 밖에서 문을 잠갔다. 모든 창문에는 감옥 쇠창살 같은 방범창을 쳤다.
...
말이 가출이지, 이곳 이제 나에게 집이 아니기에 탈출이 맞겠다. 그 사람의 침대는 성폭력 형틀 같다. 징그럽고, 더럽다. 걸핏하면 주먹질과 발길질이 난무하는 집구석은 끔찍하다.
...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는 기도원에 숨어 지내다 겁도 나고 도움이 필요해서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빠에게 절대 말하지 않겠다던 엄마는 버젓이 그 사람과 함께 나타나 다시 이 집구석으로 나를 데리고 왔다. 잡혀와 기절할 때까지 맞고, 또 맞았다. - 15~17

나는 지금,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이번에는 성공할 것이다. 서울 가는 지하철을 타러 역까지 가야 하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택시 안에서 9년 동안의 성폭력을 확실히 끊어내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가족들도 도와 주지 않는 이 감옥에서 나 스스로 탈출할 것이다...원망하며, 애원하던 삶도 그만둘 것이다.

‘아빠, 제발 이제는 하지 말아줘!’라고 부탁하던 것도 끝이다. 아빠의 그 짓은 부탁해서 멈추게 할 일이 아니라 원래 하면 안 되는 짓이었고, 감옥에 갇혀야 할 정도의 큰 죄였다. - 37

드디어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종착역이자 기점이라 지하철이 문을 열어두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이 잡으러 올까봐 겁이 나 계단에서 먼 곳으로 지하철 깊숙이 파고들었다. 왜 이리도 오랜 시간 문을 열어두고 있는지, 이제 탈 사람도 없구먼, 얼른 좀 닫아라. 좀 닫으란 말이다. 빨리 출발 좀 하자. 옆 칸과 연결된 가운데 문일 열리면 혹시라도 그 사람이 타서 나를 찾아다닐 것 같아 섬뜩하기까지 했다.

“문이 닫힙니다”

분명하게 들린다. 드디어 문이 닫혔다.

모든 칸의 문이 모두 닫혔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싶을 정도다. 문이 닫힌다. 천천히 지하철이 움직인다. 눈물이 흐른다.

“자유다!” - 18

성폭력은 분명 한 사람이 겪어내기에 무척 힘들 일이다. 정말 당시에는 그 고통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만 들 정도로 힘들었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원치 않고, 예상치 못했지만 갑자기 날아든 칼에 베인 깊은 상처와 같다. 그냥 치료가 필요한 상처로만 봐주면 좋겠다.
...
상처가 아물려면 몸이 세균과 싸워내고, 새살이 돋아야 한다. 결국에는 그 칼자국은 몸의 일부로 남게 될 것이다. 흉터가 남지만 그것이 다시 피가 흐르는 상처로 벌어지지 않고 새살이 차오른다. 새살이 자리를 잡은 상처가 더는 아프지 않은 것처럼, 성폭력이라는 상처도 그렇게 내 삶에 받아들이려 한다. - 20

성의 문제가 아닌, 폭력의 문제로 성폭력을 바라보는 사회 인식이 자리 잡는다면 성폭력 피해자들이 좀더 마음 편하게 신고를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치유의 과정을 걸어가는 길도 한결 편안해질 것이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끔찍한 성폭력피해 관련 뉴스를 보고 ‘나도, 우리 아이도 저런 일 당하면 어쩌지?’ 미리 겁을 집어먹게 되는 사람들도 편해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쉬쉬하며 소문날까 두려워하고, 피해 생존자가 수치심을 느끼는 분위기를 바꿔나간다면 성폭력에서 오는 상처의 무게감을 조금은 덜 수 있지 않을까?

피해자들이 느낄 가해자를 향한 분노와 피해 상황의 힘든 기억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러나 사회 속에서 느끼는 수치심은 사회의 시선이 바뀐다면 좀더 가벼워질 수 있다. 피해자들이 모자이크와 우스꽝스러운 음성 변조를 벗고, 아픈 상처를 토로하고, 극복한 무용담을 나누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게 되는 날을 꿈꿔본다. 나도 못 해본 그 일을. - 20


나는 그 사람을 피해 동생과 엄마 있는 쪽으로 갔다.

“제발 비켜줘”

떨리는 목소리로 부탁했다. 엄마와 동생은 이미 그 사람과 팀을 지어 나를 잡아가려고 준비한 듯 나를 막아섰다.
...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어떻게 그곳까지 갔는지 기억이 없지만 어느 음식점 작은 방으로 끌려와 있었다. 나를 가장 구석진 곳에 놓고, 세 사람은 내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고 빙 둘러 앉았다.
...
그 사람은 계속해서 씩씩거리며 욕을 했고, 엄마와 동생은 그 사람의 말에 공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를 돕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를 괴롭히는 그 사람도 죽이고 싶을 만큼 싫었지만, 엄마와 동생도 꼴 보기 싫었다. 꼭 폭군에게 지배당하는 약자들 중 하나를 희생양 삼아 자신들은 희생당하지 않으려 하는 비겁한 자들처럼 보였다. ‘더러운 것들. 내가 저 놈한테 밤마다 시달린 것 다 알면서 나를 잡아오는데 도와줘? 똑같은 것들’이라는 생각에 계속 눈물만 흘렀다. - 30

내 몸을 벌써부터 습관적으로 고문을 당하던 몸에 각인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짧게 반복되는 근육의 경련, 고문실에 들어서는 기분으로 그 사람의 침실로 끌려갔다.
...
‘이게 말로는 안 되겠네’라며 혁대를 풀어 손에 감아쥐고 마구 휘저으며 나를 쳤다.
...
발로 내 가슴을 퍽퍽 차기 시작했다. 세게 가슴을 퍽 찼는데 그 힘이 너무 셋던지 뒤로 확 밀렸다. 밀리다 그만 서랍장의 손잡이에 척추가 부딪혔다. 순간 찌릿하며 기분이 이상했다. 게다가 가슴을 세게 맞아 숨이 멎어 켁켁거리기까지 했다. 숨이 안 쉬어졌다.
...
멈추지 않고 마구 발로 차는데 더는 웅크려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방바닥에 옆으로 드러누어 쓰러진 나를 그 사람은 계속해서 짓밟고 걷어찼다. - 29~31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내게 일어나는 일이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성폭력을 당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나를 모든 위험에서 지켜줘야 하는 ‘아빠’라는 사람에게. 지진보다 더 큰 충격이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지탱해주는 땅바닥이 흔들리는 지진은 사람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거대한 공포감을 준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살아갈 곳, 먹을 것, 입을 것 등 기본적인 생존 기반을 제공하고, 애정을 주고 인간관계를 처음 경험하게 하는 땅과 같은 존재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땅이고, 신이고, 나를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모든 것이다. 그런 존재가 내게 성폭력이라는 짓을 할 때 나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했다. - 32

엄마라는 사람은 워낙 결혼 초부터 계속된 매질에 익숙해지고 무기력해져 있었다. 왜 경찰을 부르지 않나 싶었지만, 그때는 부부싸움으로 경찰에 신고를 하면 ‘집안 문제’로 여기고 경찰이 집에 오지도 않았다. 엄마는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신고는 아예 생각조차 못 하게 되고, 내게 일어나는 일도 어디에 어떻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전혀 모른 것 같다.

그리고 나중에 엄마와 이야기 나누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엄마도 죽느냐 사느냐 하는 위협을 계속 느끼며 살아서 딸을 돕는 건 생각조차 못 했다고 했다. 가족 모두 목숨을 위협하는 아빠라는 사람과 살면서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떨어진 것 같고,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잃어버린 듯했다. - 33

무엇보다 어린 아이를 둔 젊은 아빠이던 형사가 참 고맙다. 그 형사는 내가 피해 상황을 이야기하기 편하게 해주려고 여경을 불러 함께 있게 해줬다. 또 내가 이야기하는 내용이 두서없었을 텐데 차분히 들어줬다.

무엇보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울면, 자신도 마음 아파하며 담배를 연거푸 피워대기도 했다. 나보다 더 힘든 표정과 말투로 ‘나도 자식을 낳아 키우는 아빠다. 너희 아빠는 아빠도 아니다’라고 말해줬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내가 경찰에 신고하기를 정말 잘했구나. 신고한 내가 잘못한 게 아니구나’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용기를 내 부끄러워하지 않고 피해 사실을 낱낱이 이야기할 수 있었다.
...
밤새도록 이야기해도 새로운 기억이 떠오르고, 또 떠올라서 밥을 새웠는데, 그날만큼 속 시원하게 이야기한 적이 없는 듯하다. - 48

‘아주 집안을 콩가루를 만들어. 너 때문에 이게 뭐냐? 집안이 박살나니까 좋냐?’

거센 발길질과 엄마의 성난 목소리에 눈을 떴다. 뒤를 돌아보니 커다란 엄마와 아빠가 잠자던 나를 발로 걷어차고 있다. 그런데 잠시 뒤 두 사람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천천히 몸을 돌려 누워 방을 살펴보니 쉼터였다. ‘아, 쉼터구나. 그래 이제 쉼터지’

그런데 엄마와 아빠의 발길질이 내 몸에 남아 있다. 등짝이 뻐근하다.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돌아버린 게 아닐까? 어떻게 발길질을 느낄 수 있지? 어떻게 그 사람들이 눈에 보일 수가 있지? 겁이 났다. 내가 점점 미쳐 가는 것 같았다.
...
아빠는 감옥에 가고 나는 쉼터에 왔는데, 그 사람이 자유롭게 활보하던 세상하고는 분명 다른 세상을 맞이하게 됐는데, 나는 여전히 아빠란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었다. - 50

며칠 쉬고 난 뒤 쉼터 선생님과 한국성폭력상담소라는 곳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여자들만 있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라는 간판을 보며 ‘세상에 이런 상담소도 있었구나’ 싶은 마음이 원망하듯 들었다.

나는 이런 곳이 있다는 걸 몰랐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성폭력 상담소를 찾아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꿈도 못 꿨다. 하기야 내가 그 사람에게 당한 짓이 이곳에서 말하는 ‘성폭력’이라는 것도 겨우 며칠 전에 알게 됐으니, 성폭력만 전문으로 다루는 상담소가 있으리라고는 당연히 상상도 못한 것이다. - 51

2학기 개강을 준비하는 나는 1학기 때와 전혀 달랐다. 1학기 때는 아빠가 내 수강 신청까지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처음으로 내가 듣고 싶은 강의를 신청했다. 또 처음으로 혼자 미용실도 갔다.

“이만큼 싹 잘라주세요. 짧은 단발로요”

그 사람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 머리도 잘랐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
‘미용실에서 혼자 머리 자르기’는 늘 가위를 들고 제멋대로 내 머리카락 길이까지 정하던 그 사람에게서 벗어난 것을 확이나는 나만의 세리머니였다. 원래는 긴 머리를 좋아하지만 일부러 싹둑 잘랐다. 일상생활의 소소한 것들을 마음대로 하면서 나는 자유를 느꼈다. 그때 알았다. 나는 참 자유로움을 좋아하고, 자유를 누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 53

2학기가 시작되고 쉼터에서 학교를 다녔다. 버스를 타면 서울 한복판을 마음껏 달려 학교에 도착했다. 이런 게 자유다. 나는 차창을 열고 바람을 쐬면서 온몸으로 새로운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늘 내 얼굴에 미소가 자리잡았다. - 53

하루는 친한 언니 둘이 왜 여름 방학 동안 가출을 했냐고 해서 그동안 내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했다. 처음으로 친구라고 생각하게 된 이해심 깊은 언니들. 그 언니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예전하고 달리 꺽꺽거리는 울음이 줄었고, 무용담처럼 말하고 있었다.

왜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나와 친한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언니들을 보며 힘이 났다. 집에서 그 사람에게 당하며 살 때는 그렇게 평생 살다 죽겠구나 했고, 내가 당한 일을 평생 부끄러워하며 살아야 하는 줄 알았는데, 세상에 나와 보니 내가 잘못한 게 아닐 뿐 아니라 이런 삶을 살아낸 것만으로도 격려와 칭찬을 받을 일이었다. 가까운 친구들에게 내 삶에 관해 말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치유를 위한 첫걸음, 첫 호흡이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이제부터 그 사람한테 당한 일들을 확실하게 씻어버리고 진짜 멋지게 살아야지, 다짐했다. - 54

본래의 내가 궁금했다. 나는 말 없고, 늘 어둡고, 침울하게 지내던 왕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는 밝은 사람이었다. 좋은 기운이 넘치고, 긍정적이고, 웃음도 많다. 다른 사람을 웃기는 것도 좋아한다. 아빠에게 상처 받기 전 나를 찾으려고 보물찾기 하듯 나 자신을 살펴보고, 관찰하고, 새로운 면모를 발견해냈다. - 55

그 사람은 변호사를 사고, 탄원서를 넣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특히 자신이 정신 질환이 있으니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엄마에게 탄원서를 쓰게 했단다. 편하게 벌을 받고 싶어하는 그 사람을 보며 여전히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구나 싶어 화가 나고 미웠다.

그러나 나는 화내고 미워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지 않았다. 나는 내 밝은 모습이 그 빛을 밝혀가고, 잔잔하며 자유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데 더 관심이 많았다. - 56

그 사람에게서 벗어나 살게 되면 나도 다른 사람들 속에 묻혀 적당히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
겉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듯 보였지만 속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너무도 다른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비교하고, 혼자 속으로 상처받고, 틀어졌다.
...
싫고 밉다는 감정에서 더 나아가 적대감까지 들었다. 나를 잘 알고 나와 친밀한 친구에게 악다구니를 쓰기도 했다.

“너 내가 힘들게 살았다고 동정하는 거야? 동정이나 연민이면 때려 치워. 왜 잘 해주는데?”

입으로는 고함을 쳤지만 속으로는 ‘절대 떠나지 마. 너마저 떠나면 안 돼’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그때 내 속울음과 진심을 알고 지금까지 남아준 친구들이 눈물 나게 고맙다. - 59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빠와 엄마는 이혼을 했다. 그 뒤 나는 엄마와 함께 살았다.
...
어느 날 그 사람은 집으로 찾아와 엄마를 때리기 시작했다...마루에 앉아 방 안에서 들려오는 아바의 욕설과 엄마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 퍽퍽 하는 발길질과 주먹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갑자기 엄마가 문을 열고 나온다.

“잠깐만, 오줌 좀 누고”

풀린 눈, 터지고 부어오른 입술, 옷도, 몸도 방금 링 위에서 일방적으로 얻어터지다 쉬는 시간에 내려온 권투 선수 같았다.
...
“이년아, 얼른 들어와, 내가 그만둘 줄 알아? 잘 해주면 안 돼. 패야지”
...
나는 어렸지만 이혼해서도 맞고만 있는 엄마가 이해하기 어려웠다. 차라리 동네 파출소에 신고하지 싶었다. 엄마는 또 끌려 들어가 얼마간 더 맞았고, 아빠의 뜻대로 재결합을 약속하고서야 끝이 났다. 같이 살다가도 때리면 헤어져야 할 판에, 재결합하자며 때리는 사람과 같이 살려고 하다니, 엄마는 바보인 게 틀림없다. - 62

새벽쯤일까? 나는 누군가의 손이 내 바지를 내리고, 팬티 속으로 들어오는 기척에 잠이 깼다. 그런데 소리를 지를 수는 없었다. 그 손의 주인은 바로 옆에 누워 있는 아빠였기 때문이다.
...
엄마와 외할머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일단은 돌아오는 여름 방학에 우리부터 시골로 전학을 보낸다고 했다. 나는 무조건 싫다고 했지만 엄마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왜 가기 싫은지 말하지 못해 답답했다. 부끄럽기도 하고, 아빠가 내 몸을 만질 때 가만히 있었던 게 왠지 마음에 걸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65

마당에 나가 얼른 대문을 걸어 잠갔다. 오빠, 동생, 나는 모두 겁에 질려 있었다. 엄마나 외할머니가 일하는 곳에는 전화도 없어 도와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었다. 초라한 나무 대문 하나만 믿고 안방에 앉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
안방에 들어서는 그 사람의 손에는 부엌에 있던 연탄집게가 들려 있었다.
...
아빠는 도망가는 나를 쫓아와 연탄집게로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맞아본 중에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맞은 곳은 금세 붉고 선명하게 살이 튀어 올랐다. 여기 저기 부풀어 오른 모양이 굵은 지렁이 같았다. 얼굴로 날아오는 연탄집게를 막으려고 올린 팔뚝이 감전된 듯 찌릿지릿했다. 허벅지, 무릎, 등 온몸에 굵은 지렁이가 감겼다. - 67

아빠 손 닿는 게 더 아프고 더러우니까 약도 바르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말 한마디 못했다. 또 맞을까봐 겁이 나서 가만히 있었다. 엄마가 왜 그렇게 바보같이 맞고 또 맞으면서도 같이 살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더 맞을까봐 무서워서 그냥 산 것 같다.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68

그 사람은 내 위에 있었다. 다리 사이로 까칠까칠한 털이 느껴졌다. 내 바지는 이미 벗겨져 있었다. 그 사람은 바지를 벗고, 딱딱하고 커달나 몽둥이 같은 뭔가를 내 다리 사이에 대고 있었다.

“가만있어봐, 힘빼고. 들어갈 수 있어. 처음에는 좀 아파. 가만 있어봐”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힘으로, 무게로 누르고 그 짓을 하려 들었다. 너무 아팠다. 나는 몸을 이리저리 피했다.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지만 내 몸은 자동적으로 자신을 지키려 했다. 그 사람은 계속해서 공격을 했고, 내 몸은 계속 피했다. 그래, 공격이 맞는 표현 같다.

“에잇, 가만있어봐”

갑자기 눈앞이 번쩍 했다. 그 사람의 커다란 주먹이 내 얼굴로 날아 들었고, 순간 그 커다란 몽둥이 같은 것이 내 몸을 찢었다. 찢어진 게 어디 몸뿐이겠는가. 그 순간 내 마음과 영혼은 내 몸을 떠나 저기 어딘가로 가버린 듯했다.
...
쓰라리고 아팠지만 방금 때린 주먹으로 내 입을 틀어막고 있어 아무 소리도 지를 수 없었다. 그 사람은 그 상태에서 위아래로 몇 번 움직이며 내 몸을 더 아프게 하더니 몸을 부르르 떨고 내려왔다. - 69

마음의 아픔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찢긴 몸, 언제 또 맞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막막함,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이런 삶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사람은 아빠라는 가면을 쓰고 가족이라는 감옥 안에 나를 가둬두고 영원히 쭉 이렇게 살아갈 것 같다. - 72

성폭력을 당하고 그 기억을 안고 사는 건 분명 쉽지 않다. 그러나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내가 있는 그대로 힘들어할 수 있도록 풀어주는 시간을 통해 내 상처는 부드럽게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오기로 버티고, 악으로 살아남는 그런 수준을 뛰어넘는 여유로운 견기기, 부드러운 내면의 힘을 슬슬 키워봐야겠다.
나는 지치고 힘이 빠져 축 처져 있는 시간을 못 견디고 나 자신을 엄격하게 대하는 편이었다. 그래야 무너지지 않고, 강해지고, 잘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힘들어해도 내버려두고, 울면 눈물로 닦아주고, 떼쓰고 쓰러져 있어도 봐줄 수 있었으면 좀더 좋았을 텐데 싶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은 마음뿐 아니라 몸이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와도 조금 더 여유롭게 내가 아파할 수 있도록 놔두려 하는 편이다.

‘아프구나, 어디가 아파? 그래? 좀 쉬어. 괜찮아. 여유롭게, 부드럽게 쉬었다 가자’

나를 토닥여준다. - 74

성폭력 피해를 당한 기억으로 힘들고 아파하는 친구가 지쳐 쓰러져 있을 때 가만히 곁에 있어주기만 해도 좋겠다. 친구가 울면 같이 울어줘도 좋겠지만, 눈물이 잘 나오지 않아 어렵다면 그냥 예쁜 손수건 한 장 들고 옆에 조용히 앉아 있어보자. 힘든 시간을 보내는 친구 곁에서 당신이 언제나 거기 있는 나무 같은 친구가 돼주기를 바란다. - 75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내 경험에 비춰보면 연애 관계를 맺기가 참 어려웠다. 가장 믿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내 상처 탓에 내가 싫어지고 나를 버리고 떠날까봐 두려워지면 더욱 가시를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정말 뜬금없이 아픈 기억들, 분노의 감정들이 속에서 치고 올라올 때면 미친 사람으로 돌변하기도 했다. - 75

학교라는 공간이 그나마 숨쉬기 편했다. 그러나 여전히 외로웠다. 외롭다는 말은 그때의 내 감정을 표현하기에는 좀 싱겁다. 전 지구에 내 문제를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고, 그 문제를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가 돼서 사는 외로움. 그런 와중에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학교 생활을 즐기고, 우정을 나눴다. ‘그래, 아빠라는 사람이 나를 아무리 감시해도 내게[는 나만의 탈출구가 있을 거야’라는 생각의 싹이 내 속에서 자리기 시작했다.
...
그 사람은 그때 나를 자기 손아귀에 완전히 가뒀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속에서 무시하기’라는 나만의 방법을 통해 그 사람이 내게 저지르는 짓거리와 상관없이 내가 그 나이에 최선을 다해 해야 하는 것들, 누려야 하는 것들을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열심히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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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반항하지 않고 당한다고 해서 그게 꺾인 것도 아니고, 포기한 것도 아니다. 그놈한테 동조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그때 내 상황 속에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내가 무너지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누구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렇게 살아내는 것이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저지른 더러운 짓을 완전히 무시하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그때도 학교에서 웃을 일이 있을 때는 웃고, 좋은 것이 있을 때는 좋아했고, 공부해야 할 때는 열심히 공부했다. - 104

경험한 일들을 쭉 정리하면서 내게 일어난 일을 견뎌낼 수 있게 해 준 것이 무엇인지 차츰 알게 됐다.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재수 없고, 더럽고, 아프고, 힘든 일들이 많았지만, 나는 그 어느 순간에도 자포자기 하거나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아주 더러운 경험을 했을 때, 죽을 만큼 힘들 때면 나는 ‘이게 끝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강하게 붙잡았다. 견뎌내려고 특별한 노력을 한 것은 아니다. 그냥 그날그날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묵묵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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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단순히 버텨내는 것을 넘어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경험하는 모든 일에 관한 인식이 달라졌다.

‘내 잘못도 아니잖아, 미친놈이 개도 안 하는 미친 짓, 더러운 짓 하는 건데 내가 왜 쪽팔려? 난 꼭 이 집구석, 저 새끼 손아귀에서 벗어날 거야, 꼭!’ - 114

내게 일어난 일들은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힘주어 생각했다. 힘주어 생각하지 않으면 스멀스멀 나를 잡아먹는 수치심에 내가 먹히고 말 것 같았다. 내 잘못이 아니다. 그 사람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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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이 흔히 갖게 되는 수치심은 가해자들에게나 던져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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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 사회의 시선도 피해자들을 수치심 아래 묶어두지 않았으면 한다. 성폭력은 성의 문제가 아니고 폭력의 문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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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우만 봐도 혼자서 저절로 수치심을 벗게 된 게 아니다. 집을 나와 지내면서 교회 친구들과 집을 얻어 같이 살았다. 힘들 때면 술을 양껏 마시고 완전 뻗은 상태에서 집에 업혀 오기도 했고, 그렇게 들어온 날은 울며불며 밤새 신세 한탄을 하기도 했다. 그런 나를 친구들은 오랜 시간 사랑으로 참아줬다. 수치심과 분노에 사로잡혀 울부짖다 잠이 든 적도 부지기수다. 다음 날이면 친구들은 따끈한 북엇국이나 콩나물국을 끓여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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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집을 나와 만난 한국성폭력상담소, 교회, 일터의 친구들 모두 내 상처를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조금씩 내 상처를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게 됐다. 친구들은 상처를 통해 나를 본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상처를 봐줬다. 친구들의 빛나는 눈들이 내 수치심을 씻어줬다. - 115

그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서 죽이고, 말려서 죽이고, 나도 죽고 싶은 욕구가 불쑥불쑥 내 가슴을 후벼 판다. - 135

그 사람이 나를 괴롭게, 살기 싫게 만들던 그 시간 동안 계속 미워했고, 집을 나온 뒤에도 내 분이 풀릴 때까지 힘껏 미워했다.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면 힘들다는 성인군자들의 말이 세상에 가득하다. 그렇지만 나는 용서하고, 안 미워하려고 노력하고, 애쓰면서 힘든 것보다는 욕하고 용서 안 되면 안 되는대로 힘껏 싫어하면서 힘든 게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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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세게 때리고 싶을 때는 베개나 쿠션을 막 때리기도 했고, 집어던지고 싶을 때는 집어던졌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혼자서 주로 했고, 내 물건들을 집어던졌다. 그런 시간이 길다면 길 수도 있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만큼 했다.

그러다 보니 내 속에서 독, 악, 분 같은 것들이 슬슬 빠져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실컷 미워하고, 욕하고, 머릿속에서 수십 번씩 죽이고, 또 죽이면서 그 사람을 찾아가 죽이고 싶은 욕구를 해소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욕도 하고 또 하다 보니 그놈에게 하고 싶던 욕들이 내 속에서 다 빠져나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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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이 점점 빠져나가면서 나는 ‘독기가 빠졌다. 눈에 살기가 빠졌다’는 말을 듣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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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안 느끼려고 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닌 듯했다. 미운 만큼 미워하되 그 미워하는 감정이 나를 집어삼키고, 나를 해치도록 두지 않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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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철저히 나를 위해 미워하고, 욕하고, 울었다. 그 사람이 욕먹고 장수하거나 배부르라고 하는 게 아니다. - 137

“피곤하지. 우리 샤워부터 하고 한번 땀나게 하고 푹 자자. 일어나서 정리한 것 잠깐 훑어보고 내일 시험 보러 가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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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갑자기 뒤에 서 있던 그 사람이 내 뒤통수를 사정없이 내리 쳤다...허리가 무척 아팠다. 주먹으로 등 뒤를 퍽퍽 친 것 같다...그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채를 잡고 나를 쓰러뜨린 뒤 욕실에서 거실로 질질 끌고 나왔다.

“야, 이년아, 거울에 네 얼굴 봤어. 얼굴을 찡그려? 네가 뭐 성모 마리아라도 되냐?”

머리 가죽이 벗겨진 것처럼 화끈거렸다. 거실까지 머리카락이 당겨지는 힘으로 끌려나왔다. 그 사람은 내 온몸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아니, 밟았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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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어차피 내가 이렇게 해놔서 시집도 못 가, 누가 널 데려가겠냐? 좀 잘 해주면 기어올라, 아주. 이게 나를 무시해? 네가 뭐 깨끗한 년이나 되는 줄 알아? 거울에 비치는 거 다 봤어, 이년아. 어디 얼굴을 찡그려, 아주 무슨 벌레 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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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거울 속에서 네가 나를 어떤 눈으로 쳐다봤는지 알아? 내가 너 수능 시험 보게 할 거 같아?...저 년이 대학 가면 나를 얼마나 더 무시할 거야? 너는 내가 망쳐놔서 시집도 못가, 내 애나 낳고 내가 시키는 대로 살어, 이년아...” - 142~145

딸이 아빠에게 강제로 그 짓거리 당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지칠 때까지 때리는, 이건 도대체 뭐로 만들어진 인간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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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원하는 대로 아무 때나 원하면 그짓을 해야 하는데, 그것에 기꺼운 마음으로 응하지 않았다고 화풀이를 하는 것이다. 몇 주 동안 계획해서 만든 밀월여행이었는데 ‘네가 싫어해서 분위기 다 망쳤잖아’하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을 두고 가지고 놀던 인형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 148

사실 몇 년 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꿈이 달라지는 경험을 했다. 꿈속에서 그 사람은 늘 내 뒤를 따라왔다. 나는 있는 힘껏 도망가는데도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아 땀을 흘리다 깼다.

그날도 꿈속에서 나는 도망가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꿈속의 내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뭐가 무서워, 그래 한번 뒤돌아보자, 쫓아버리자’

그날도 겁에 질려 있던 꿈속의 나는 정신없이 도망가다 갑자기, 멈췄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몸을 완전히 틀었을 때, 내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뒤로 꿈속에서 그 사람을 피해 도망가는 일은 없어졌다. - 151

그 사람은 오늘 뭔가 특별한 것을 준비한 듯하다.

하얀 사기그릇에 맑은 물을 담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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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뭐라고 이야기를 하고, 엄숙한 의식을 거행하는 사람처럼 조용히 말했다.

“수연아, 우리 이제 결혼식 할 거야. 지금은 이렇게 정화수만 떠놓고 하지만, 나중에 너 외국에 나가 있으면 내가 가서 결혼식 제대로 올려줄게. 넌 거기서 내 아이 낳고 살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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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내 거 잡아봐. 나도 네 거에 손 얹을게. 이게 약속이야. 이제부터 다른 사람한테는 허락하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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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우리는 진짜 부부야. 네 엄마는 큰 형님이라고 생각하고, 이제부터 형님이라고 불러, 알았지? 자, 이제 내 거에 뽀뽀해. 나도 해줄게”

내 머리를 끌어다 더러운 것에 들이밀었다. 그리고 내 몸에 입을 갖다 대는 것이다. - 167

그날은 내가 좋아하는 강아지와 나, 그 사람만 집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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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한테 핥아보라고 하려고. 왜 여자들 개랑 그 짓도 하고 그러거든”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개소리도 저것보다는 낫겠다.

“가만히 있어봐, 아, 가만있어. 핥아봐, 아, 여기, 여기”

오히려 강아지가 미안한지 딴짓을 한다. - 175

며칠 전에 아빠라는 새끼한테 전화를 했다. 그 사람을 우연히 마주친 뒤 화가 나면 종종 전화를 걸어 따지는 습관이 생겼다.

“아가, 왜?”
“지랄한다, 그렇게 부르고 싶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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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 아주 지랄을 한다. (비웃음을 적절히 날려준 뒤) 나 잘 살고 있어, 개새끼야. 너는 나를 사랑할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 개새끼야, 진자 괜찮은 애 만났거든. 근데 내가 부모가 제대로 없다고 걔네 부모가 결혼 반대한다. 개새끼 너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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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했다. 몇 년 만에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난 뒤 몇 번 전화해서 욕을 했는데, 속이 참 후련하다. 내 속에 쌓인 쓰레기 같은 감정을 버려야 할 곳에 버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하게 됐다. 주변 사람들에게 화도 잘 내고 신경질적이라는 평을 자주 들었는데, 그 화는 주변 사람들에게 갈 것들이 아니었다. 그 사람 때문에 쌓인 분노가 엉뚱한 곳으로 튀는 것을 이제는 멈추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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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 번화를 해서 욕을 하기 시작하면서 겁낼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에게 할 욕을 종이에 글로 쓰거나 입속이나 머릿속에서 하는 게 아니라 소리 내어 하기 시작하니 또 다른 경지가 펼쳐졌다.

그 사람의 귀에 직접 욕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 사람에게 품은 두려움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이제 내 어린 시절 막강한 힘으로 나를 마구 대할 수 있던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개새끼를 개새끼라 부르고(나는 이 욕을 할 때마다 개한테 미안하지만 달리 무슨 욕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너 때문에 진짜 화가 났거든’ 하고 그 사람에게 직접 전달하고 있는 지금이 참 좋다. - 197

개인 상담은 찬찬히 자기 기억을 풀어내고, 그때 느꼈던 내 감정들을 세밀하게 살펴주는 과정이다. 힘들어도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견디며 살아남는 데만 혈안이 돼 있던 내게 ‘그때 정말 힘들었다. 아팠다, 죽여버리고 싶었다...’ 같은 여러 감정들을 쏟아내는 과정은 오랜 시가닝 걸리고, 상담비가 많이 들기는 했지만 그만큼 값어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친한 친구가 해주기에는 너무 버거운 부분이 있기에 친밀하면서 무엇이든 털어놓을 수 있는 편안한 개인 상담자를 두는 것은 치유의 과정을 한결 쉽게 한다. - 207

“얘는 돈은 없어도 입은 고급이야”

친구들이 내 식생활을 두고 놀릴 때 하는 말이다. 나느 먹는 것 하나를 고를 때도 어디 것인지, 농약은 얼마나 사용했는지, 식품 첨가물은 어느 정도 들어갔는지 꼼꼼하게 살펴보는 편이다. 자신을 소중하게 대해주고 싶어서 돈이 더 들더라도 생협의 유기농 또는 무농약 농산물을 주문해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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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귀하게 여겨줘야 한다는 마음에 먹을거리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먹을거리만이 아니다. 어느 겨울 너무 추운 저녁이었다. 천 운동화 신고 있었는데 발이 너무 시려 서러워지기 시작했다. 추위를 많이 타서 추워지면 눈물이 난다. 그래서 어그 부츠 매장으로 가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츠를 골랐다. 그리고 아주 조금 망설인 뒤 ‘난 이정도 대덥은 받을 자격이 있어’하는 마음으로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 210

타인의 투자는 돈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만나 사랑을 듬뿍 받는 것도 좋은 투자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기본적인 신뢰가 없던 나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친구들의 사랑 덕분에 타인을 조금씩 신뢰하게 됐다. 사랑으로 채워야 할 공간은 오직 사랑으로만 채워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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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는 것만큼 영혼을 성숙하고 풍성하게 하는 것도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특히 나는 내가 사랑을 잘 주지 못해도 미안해하기보다는 고마워하며 그 사랑을 받아들였다. 이기적이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부족한 내 사랑의 공간을 채워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나도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 풍성해졌다. - 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