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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에 뿌리 내린 삶과 사회

순돌이 아빠^.^ 2015. 9. 22. 17:51


어떤 토대를 얻으려면 개인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어떤 권위와의 관계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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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아무리 고매한 도덕적 원칙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자유와 자율의 토대가 되어줄 수는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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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개인의 자유와 자율에 필요한 토대를 쌓을 수 있는 것은 경험적 인식뿐이다. 즉 인간과 이 세상 밖의 어떤 권위 사이에 극히 개인적이고 호혜적인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만이 개인의 자유와 자율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세상 밖에 있는 이 권위가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이성’이 균형을 잃지 않도록 바로잡아주는 평형추의 역할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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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유혹에 저항하기 위해선 개인에겐 내면의 초월적 경험의 증거가 필요하다. 이런 경험의 증거를 가진 개인은 그것이 없었을 경우에 불가피했을 대중 속으로의 함몰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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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만일 개인이 정신적으로 진정한 쇄신을 이루지 못한다면 사회도 또한 정신적 쇄신을 이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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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교회들이, 분명히 현실 속에서 하고 있는 바와 같이, 개인을 사회적 조직 안으로 엮어 넣음으로써 책임감을 모르는 하나의 부품으로 전락시키려고 노력할 때, 나는 구원을 하나의 착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개인을 무신경하고 무심한 대중으로부터 끌어내어 그 사람에게 그 사람 자신이 하나의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각인시키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의 구원은 개인의 영혼의 권에 달려 있다는 점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인도 교회들은 오히려 그 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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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집회들이 개인 앞에서 사상을 과시하면서 군중 암시의 힘을 빌려 개인에게 그 사상을 각인시키려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때 달갑지 않은 결과가 나타난다. 그 흥분이 식으면, 대중인간은 즉시 더욱 더 뻔하고 더욱 더 요란한 다른 슬로건에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치명적인 영향력을 차단시켜주는 효과적인 방폐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개인과 신 사이의 개인적 관계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군중 회합에서 제자들을 자신에게로 부른 적이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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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와 바울이라면 자신의 내면적인 경험을 믿으면서 대중의 의견을 무시하고 각자의 길을 걸은 사람들의 원형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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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자리는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종교적 경험이다. 이 경험이 개인의 신앙을 신과의 즉시적인 관계로 승화시킨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과연 종교적 경험을 한 적이 있으며 또 신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은 적이 있고, 그리하여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나 자신을 군중 속으로 녹아들지 않도록 지켜줄 확신을 품은 적이 있는가?


- 칼 구스타프 융, <무엇이 개인을 이렇게 만드는가?>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