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료샤, 당신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한 것은, 당신의 말을 들으니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난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착한 여자는커녕 못된 여자예요. 아주 나쁜 여자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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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은 나를 누님이라고 불러 주었어요. 난 죽을 때까지 절대로 잊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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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동안 그리 흔하지 않은, 인간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는 움직임이 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의 마음에 동시에 일어났다는 것 -556
내 마음에 느껴지는 것이 있었어요...나를 동정해 준 사람은 이분이 처음이에요...난 당신 같은 사람이 반드시 나타나서 나를 용서해 주리라고 믿고 있었어요. 나처럼 더러운 여자라도 야비한 욕망을 갖지 않고, 진정으로 사랑해 줄 사람이 있으리라고 믿어 왔었지요... - 565
-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 형제들>
라스콜리니코프는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소녀의 여위긴 했으나 귀염성 있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소녀는 그를 보면서 그 애답지 않게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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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이름이 뭐예요?...그리고 어디에 사시나요?” 소녀는 숨을 할딱거리며 다그치듯 물었다.
그는 소녀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일종의 행복감 같은 것을 느끼면서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를 보는 것이 그로서는 즐거워 못 견딜 지경이었다. 왜 그런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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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소냐 언니가 좋으냐?”
“누구보다도 제일 좋아요” 폴렌카는 아주 힘주어 말했다. 소녀의 미소에는 진실이 깃들어 있었다.
“나도 좋아해 주겠니?”
대답 대신 소녀는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입맞춤하려고 내미는 소녀의 도톰한 입술을 보았다. 순간 성냥개비처럼 가냘픈 소녀의 팔이 그를 꼭 껴안고, 가슴팍에 조그마한 머리를 묻었다. 소녀는 점점 세게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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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렌카, 내 이름은 로지온이란다. 언젠가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렴. ‘주님의 종인 로지온’하고 말이야. 그것으로 되니까”
“앞으로 평생 동안 아저씨를 위해 기도하겠어요” 소녀는 다시 그를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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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말이야, 라무지힌!” 라스콜리니코프는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싶네만, 나는 방금 사람이 죽어가는 곳에 있었다네. 어느 관리가 죽었거든...그래 나는 거기서 내 돈을 모조리 털어주고 말았어. 아니, 그뿐만 아니라 바로 지금 한 인간이 내게 키스를 해줬어. 그 인간은 예를 들어 내가 누구를 죽였다치더라도 역시...요컨대 나는 거기서 또 하나의 인간을 만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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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은 리자베타를...죽일 생각은 아니었지...그녀를 죽인 건 우연이었소...그 녀석은 할멈만을 죽일 생각으로...할멈이 호자 있을 때...찾아간 거야...그런데 마침 그때 리자베타가 들어왔소...그래서 그만...그 여자까지 죽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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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무언인가에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외마디 소리를 지르더니 무엇 때문인지 자기도 모르면서 다짜고짜 그의 발 아래 무릎을 꿇었다. 절망에 쫓긴 듯이 그녀는 소리쳤다.
“당신은 어째서 자기 자신에게 그런 짓을 저지르고 마셨어요!”
그러더니 별안간 벌떡 일어나서 그의 목에 달려들어 그를 두 팔로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라스콜리니코프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슬픈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냐, 당신은 이상한 여자로군. 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도 끌어안고 키스를 하다니, 당신도 정신이 없는 모양이지?”
“당신보다 불행한 사람이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그의 말도 들리지 않는지 그녀는 정신없이 소리쳤다. 그러고는 갑작스레 발작이라도 일어난 듯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벌써 오랜 옛날에 잊어버렸던 감정이 물결처럼 그의 가슴에 스며들어 순식간에 그의 마음을 부드럽게 했다. 그는 그 감정에 거역하지 않았다. 눈물이 두 방울 그의 눈에 넘쳐 눈썹에 맺혔다.
“그럼, 당신은 나를 버리지 않을 거지, 소냐?” 그는 희망 비슷한 것을 느끼면서 그녀를 보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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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어제 당신에게 가자고 했을 때는 나 자신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소. 당신에게 가자고 했던 것이나 이리로 온 것이나 모두 오로지 당신이 나를 버리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절박한 심정에서였소. 나를 버리지 않겠지, 소냐?”
소냐는 그의 손을 꼭 쥐었다.
...
“...도대체 당신은 그런 비열한 사나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하지만 당신은 괴로워하고 계시잖아요?” 소냐는 소리쳤다.
또다시 아까와 같은 감정이 물결치듯 밀려와 라스콜리니코프의 마음을 한순간 부드럽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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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마음 속에는 하나의 감동이 움트고 있었다. 소냐를 바라보면서 그의 마음은 죄어들었다. 이 여자에게 있어 나는 무엇인가? 왜 이 여자는 울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어머니나 두냐처럼 나를 두둔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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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콜리니코프는 그녀의 무릎을 안고 소리내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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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냐는 벌떡 일어나서 몸을 떨며 유심히 그를 지켜보았다. 그러자 한순간에 그녀의 심장은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두 눈은 끝없는 행복으로 빛나기 시작했다...사랑이 두 사람을 소생시켰다. 두 사람의 가슴은 갸륵하게도 서로가 상대방을 소생시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생명의 한없는 샘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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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죄를 범하고, 판결을 받고, 시베리아로 오게 된 일조차도, 이제 이 최초의 뜨겁고 치열한 감동 덕분에 마치 자기 이외의 다른 데서 일어난 일인 것처럼 느껴지며, 어떤 이상한 남의 일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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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이미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서서히 갱생의 길을 걸어가는 이야기, 그 인간이 점차 새로운 인간으로 되어 가며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서서히 옮아가서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미지의 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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