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착취.폭력/지배.착취.폭력-여러가지

전쟁, 그리고 살인을 했다는 괴로움과 죄책감

순돌이 아빠^.^ 2017. 3. 26. 06:32

내 손으로 사람을 죽이고 가까이서 그를 지켜보게 된 것은 이 사나이가 처음이다. 이 사람의 죽음은 나의 소행이다. - 175

 

자네는 전에 나에게 하나의 관념이자 내 머리 속에 살아 있다가 결단을 하게 만든 하나의 연상에 불과했어. 내가 찔러 죽인 것은 이러한 적이라는 연상이야. 지금에야 자네도 나와 같은 인간임을 알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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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에게 일러 주는 사람이 없단 말인가. 자네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불쌍한 개란 사실을. 자네들 어머니들도 우리의 어머니들처럼 근심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죽음과 고통을 똑같이 두려워하며 똑같이 죽어 간다는 사실을 말이야.

 

부디 용서해다오. 전우여, 어째서 자네가 나의 적이 되었던가. 우리가 이런 무기와 군복을 벗어 던지면 카친스키나 알베르트처럼 자네도 나의 벗이 될 수 있을텐데. 전우여, 나의 목숨에서 20년을 떼어 가서 일어나다오. 아니 더 많은 햇수라도 가져가다오. 내가 살아 있다 한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야.- 177



그의 군복은 아직 반쯤 열려 있다. 지갑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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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에는 어떤 여자와 어린 여자아이의 사진들이 들어 있다...사진 옆에 편지가 꽂혀 있어서 그것을 꺼내 읽어보려고 한다...그런데 나는 프랑스어를 조금밖에 할 줄 모른다. 내가 번역해 읽은 단어 하나하나가 마치 총알처럼, 찔린 상처처럼 가슴에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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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한번 사진들을 바라본다. 이들은 부유한 사람들이 아니다. 나중에 돈을 좀 벌면 익명으로 이들에게 돈을 보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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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 남자는 내 생명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나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고, 약속해야 한다. 나는 앞으로 오로지 그와 그의 가족을 위해서만 살겠다고 맹목적으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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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군인 수첩을 펴고 천천히 읽어본다. <제라드 뒤발, 인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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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쇄공 제라드 뒤발을 죽였던 것이다. 나는 인쇄공이 되어야 한다. 나의 머리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인쇄공이 되어야 한다. 인쇄공이. - 178


  레마르크, <서부 전선 이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