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예술과 함께

국립발레단 - <안나 카레니나>를 보고

순돌이 아빠^.^ 2017. 11. 5. 09:25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은 뒤부터는 '안나'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아리고 짜릿해집니다. 안타깝고 불쌍하고 슬프고 그래요. ㅠㅠ 국립발레단에서 '안나'에 관한 공연을 한다기에 얼른 예매를 했지요. 그리고 발레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안나의 삶을, <안나 카레니나>를 좀 더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안나와 브론스끼가 만나 기쁨과 열정 가득한 춤을 춥니다. 너무 멋지더라구요. 그리고 서로의 옷을 벗기며 끌어안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마음이 쿵!하더라구요. 옷을 벗고 섹스하는 장면을 연출해서가 아니라, 기쁨에 차서 옷을 벗는 장면이 마치 껍데기, 허울, 거짓을 벗어던지는 모습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기쁘게 사랑하기에 껍데기를 벗을 수 있었을 것이고, 껍데기를 벗을 수 있기에 기쁘게 사랑할 수도 있겠지요. 


휴식시간에 공연장 밖으로 걸어나오는데 뒤에서 걸어오시던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아...역시 애들 보여주지 않길 잘했어...갑자기 옷을 벗어서 깜짝 놀랐다니까...


그래요...옷을 벗은 건 맞아요. 그렇다고 완전히 나체가 된 것도 아니고 겉옷을 벗고 그 안에 다른 옷이 있었고...설사 다른 옷이 없었다고 하더라도...제게는 그들의 기쁨과 사랑이 더 크게 다가왔을 것 같은데...




안나가 남편인 까레닌을 만나 춤을 춥니다. 무덤덤하고 형식적이고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몸짓. 시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제가 3층 좌석에 앉아 보는데도 안나와 까레닌의 모습이 느껴지더라구요. 


많은 여성들이 그럴 것 같아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자신의 마음과 교감이 일어나는 사람을 만나면 웃고, 얘기하고, 살아나고, 기쁘고, 두근거리고, 설레겠지요. 똑같은 춤을 춰도 더 생기있고 활력이 넘칠 거구요.


그러다 남편 앞에 서면 입을 닫고 표정이 굳어지고 방어하거나 공격할 준비를 하고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고 후회되고 원망스럽고...똑같은 춤을 춰도 기운이 없고 어딘가에 끌려 가는 것 같아요.


브론스끼가 안나를 쓰다듬으며 어깨와 팔에 입맞춤을 할 때는 안나의 몸짓이 피어나며 활짝 웃는 것 같아요. 까레닌이 안나를 쓰다듬으며 어깨와 팔에 입맞춤을 할 때는 몸짓이 죽어있고 억지로 참으며 버티는 것 같아요. 








브론스끼와 까레닌, 남겨 두고 온 아들, 세상 사람들의 비난....갈등, 외로움, 안타까움...답답함, 화가 났다 슬프고...불안하고..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던....안나가 결국은 자살을 해요. 


무대 뒤편에 기차가 움직이는 화면이 나오자 제 마음 속에 '아...이제 죽으려나 보다' 싶더라구요. 안나가 죽음 가까이 가면서 춤을 추는데 제 마음에서 이런 말들이 떠올랐어요.


안돼요. 그러지 마요. 안돼....


하지만 안나는 무대 위에 쓰러졌고 제 마음은 무겁게 내려 앉더라구요.



여기가 끝이 아니었어요. 그 다음에는 죽은 안나 곁으로 주변 사람들이 몰려 들었어요. 그리고 안나의 주검을 그저 바라만 보더라구요. 안나에게 다가가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결국 발걸음을 멈추거나 다른 사람이 말리기도 했지요. 


책으로 읽을 때는 안나의 죽음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리고 발레로 보고 나니까 이런 마음이 들었어요.


안나가 자살을 한 것은 맞아. 하지만 그게 과연 안나만의 일인 걸까. 자살을 했다고 해서 그게 안나에게만 그 책임이 있는 걸까. 그 많은 사람들은...




과거도 지금도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안나'처럼 살고 있을까요. 꿈이 있어도 마음껏 펼쳐 보지 못하고, '여자'라는 틀 안에 갇혀 살아야 하는...사랑과 행복을 찾아보지만 사랑과 행복을 찾는다는 것이 세상 무엇보다 힘든 일이 되어버린...


혼자 외로이 삶을 버티다 죽어간 사람들, 목숨은 붙어 있으나 마음이 죽어버린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의미일까요






* 레빈과 끼찌가 환히 웃으며 춤을 추는 장면은 너무 아름다웠어요


* 레빈이 농민들과 함께 낫질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저걸 저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싶어 놀라웠어요 ^^


* 오케스트라의 음악과 연주도 좋았고, 중간에 한 번씩 나와서 노래를 해 주셨는데 그것도 너무 좋았어요.


* 우리 동네에 순대국 집에 새로 생겼어요. 공연 가기 전에 순대국을 먹었는데 5천원이었어요. 제가 산 공연 티켓도 5천원이었구요. 5천원으로 배를 든든히 하고, 또 5천원으로 마음에 감동과 아름다움을 담은 시간이었어요. 


극을 만들고 춤을 추고 연주를 하고 노래를 하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