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예술과 함께

비오는 날의 베토벤

순돌이 아빠^.^ 2019. 4. 26. 16:11

피아노 수업이 있었습니다. 이것 저것 하다 쌤이 말씀하시더라구요.


쌤 : 소리가 너무 작아요, 비가 와서 그런가...

미니 : 아...네...


또 이것 저것 하다 쌤이 말씀하십니다.


쌤 : 또 소리가 작아요. 소리 좀 키워보세요

미니 : 아...네...


쌤 : 그동안 여러 번 말씀 드렸지만 우리가 피아니스트가 되려는 건 아니에요. 정말 피아니스트가 되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음...연주자들이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해외로 공연을 다니기도 잖아요. 그 사람들도 아플 때가 있고 감기에 걸릴 때도 있을 거구요.

미니 : (힘없는 목소리로) 네...


쌤 : 하지만 연주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자기 컨디션을 유지해야 해요

미니 : 맞아요...


쌤 : 저는 입시할 때 운이 없었는지...아침 8시에 실기 시험을 보게 됐어요. 집에까지 갔다 오는 시간이 아까워서 아빠와 함께 학교 앞에 차를 세워 놓고 거기서 잔 뒤에 새벽 6:30에 연습실에 가서 연습을 하고 시험을 본 적도 있어요

미니 : (그동안 쌤들한테 놀라운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 조금 덜 놀라는 목소리로) 아...정말...


쌤 :  저의 쌤이 그런 얘길 한 적이 있어요. 주위의 환경을 손끝에 담지 말라구요.

미니 : (기가 죽어서 딴 곳을 바라보며) 네... (순돌아 도와줘~~~ ㅜㅜ)


쌤 : 우리가 사람이니까 몸의 컨디션이 일정할 순 없어요. 집에서 업라이트 피아노로 치다 여기 와서 그랜드 피아노로 치면 좀 더 힘이 들 수도 있구요. 그래도 일정한 컨디션을 유지하셔야 돼요.

미니 : (고개를 숙이며) 네...... (순돌아 살려줘~~~ ㅠㅠ)






그렇게 30분 가량이 흘렀습니다.


쌤 : 이제 베토벤의 곡을 들어볼까요


그러고 쌤은 피아노 옆에 앉아 살짝 몸을 피아노에 기댑니다. 저는 눈을 감고 잠깐 숨을 고르고, 어떻게 시작할지를 생각한 뒤에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쌤이 늘 강조하시는 게 얼마의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손도 다리도 마음도 곡에 대한 느낌도 모두 준비가 되면 시작하라고 하셨거든요.



그런데...다섯 마디쯤 지났을까요? 심장이 울렁이기 시작합니다. 어찌보면 정말 단순한 음들인데, 그 음들이 저를 왜 이렇게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몸의 기운이 눈으로 모이는 기분입니다. 물구나무를 섰을 때 온몸의 피가 얼굴로 모이는 기분이 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마음이 울컥거리는 게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열 마디쯤 지나니 정말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당황스러워서 건반을 누르며 괜히 창 밖을 보기도 하고 숨을 쉬기도 하면서 진정해 보려고 합니다. 쌤은 눈을 감고 듣고 계시구요.


악보 한 장을 넘어가면서 달아나려는 정신줄을 붙들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럴수록 심장은 더 울컥거리고 이제 손가락을 달달달~ 떨립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제 손가락들이 달달달~ 떨린다는 게 느껴집니다. 



건반을 제대로 짚고 있는지 어떤지도 모르겠습니다. 멈췄다가 다시 할까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눈물이 날 것 같아 멈췄다고 말하기도 그렇고...해서...틀리고 말고 뭐 그런 생각할 겨를 없이 그냥 달달거리는 손가락으로 겨우 건반을 눌렀습니다. 


다음 장으로 넘어갈 때 쯤 돼서 쌤이 몸을 일으켜 악보 쪽으로 손을 뻗습니다. 악보를 넘겨주시려는 거지요. 그러면서 말씀 하십니다. 


쌤 : 긴장을 좀 풀고 하세요.   


그 순간 건반에서 손을 떼서 무릎 위에 올려 놓고 천장을 바라 보며 말했습니다.


미니 : 죄송해요...자꾸 눈물이 나려고 해서요...

쌤 : 베토벤의 곡이 좀 그렇지요...








음반이나 라디오로 들을 때보다

연주회장에서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을 때보다


잘 치거나 못 치거나 

직접 악보를 보고 건반을 누르니 


곡이 더 아름답더라구요

음들을 잇고 있으면 곡의 아름다움에 빠져드는 것 같아요


비가 와서 그런지 

베토벤이라서 그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