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우연히 같은 제목의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 리스베트의 매력에 빠져서 원작 소설을 읽었습니다.
어떤 영화는 재미는 있는데 의미가 좀 없는 경우가 있고
어떤 책은 재미는 별로 없지만 의미가 깊은 경우가 있어요.
근데 이 영화와 책은 재미와 의미를 둘 다 품고 있어서 아주 아주 좋았어요.
리스베트 뿐만 아니라 미카엘이나 에리카 등등 나오는 인물들도 인상적이었고,
중요한 줄거리는 물론이고 문득 문득 스치는 대화나 상황이 ‘오...장난 아니네’였어요
뭐랄까...액션/스릴러 영화 같기도 하고 추리 소설 같기도 하면서도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인간의 탐욕 같은 것을 기본 바탕으로 깔고 있다고 해야 할까....
영화를 보고 나서 소설을 읽으면 결론을 이미 알고 있어서 재미가 없지 않을까 걱정할 수도 있지만...소설을 읽으면 오히려 영화가 더 잘 이해될 수도 있을 거에요.
영화는 소설을 아주 짧게 표현했거든요.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 영화 속 순간순간 스치는 이미지에 많은 얘기가 담겨 있다는 것도 알게 되지 싶어요.
아무튼
아주 아주 멋지고 매력적이고 홀딱 반할만한 작품이에요.
문득 문득
리스베트를 떠올리면
용기와 희망 같은 게 생기는 기분도 들고...^^
그리고,
리스베트 역을 맡았던 루니 마라가 제가 아주 아주 좋아하는 영화 <캐롤>의 테레즈였다니...허걱!!!!
스티그 라르손, <밀레니엄1부-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뿔, 2001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1권
학교 안에서 준수되는 공동생활의 규칙들은 리스베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하여 그녀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오직 자기 일만 열심히 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을 그런 그녀를 한시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녀는 반 아이들과 격렬한 싸움을 벌인 후 집으로 쫓겨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녀보다 훨씬 덩치가 큰 남자아이들은 젓가락 같이 깡마른 이 소녀를 건드려서 좋을 일이 없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여느 소녀들과 달리, 그녀는 결코 물러서는 법이 없었고, 모욕을 받는 즉시 주먹이나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휘두르며 덤벼들곤 했다. 그녀는 불쾌한 짓거리를 그냥 당하고 있느니, 죽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여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그녀는 반드시 복수를 했다. - 319
소년의 완력이 월등했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리스베트는 점점 더 처참한 꼴이 되어갔다. 결국 짜증이 난 소년은 그녀의 얼굴 중앙에 크게 한 방 날렸다.
...
그녀는 이틀 동안 집에 누워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일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3일 때 되는 날, 그녀는 야구 방망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가, 깡패 녀석이 나타나자마자 그대로 귀 위를 후려졌다. - 320
물론 그녀는 각종 여성 보호 단체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쪽으로 도움을 청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왜냐면 그녀의 생각에 이런 단체들은 희생자들을 위한 것인데, 자신이 희생자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해결책은 오직 하나,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행동하는 것, 다시 말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맞아, 이게 바로 최선의 해결책이야! -331
갑자기 닐스 비우르만의 가슴에 서늘한 공포가 차오르면서, 결국 자제력을 잃고 말았다. 그는 미친 듯이 수갑을 잡아당겼다. 이럴 수가! 저년이 나를 지배하고 있어! - 358
“앞으론 내가 네 삶을 통제할 거야. 네가 전혀 예상 못한 시간에, 예를 들어 네가 자고 있을 때 갑자기 이걸 들고 네 방에 들어올 수도 있어” 그는 전기 충격기를 흔들어 보였다. “즉 널 감시하겠단 말이야. 만에 하나, 네가 어떤 여자애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면-그 여자애가 자의로 온 건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아-그 어떤 종류의 여자와도 함께 있을 꼴을 보게 되면...”
리스베트는 다시 손으로 자기 목을 자르는 시늉을 해 보였다. - 363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2권
일주일 동안 한집에 있었지만 그는 한 번도 그녀에게 작업하려 들지 않았다. 그저 함께 일하고, 그녀의 의견을 묻고, 그녀의 추론이 틀리면 그녀의 손가락을 살짝 때리고, 또 그녀가 자신의 오류를 고쳐주면 고마워했다. 요컨대 그녀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하고 있었다.
홀연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와 같이 지내는 것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쩌면 그를 신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 176
그녀는 장례식 때 자기 뒤에 서 있던 드라간 아르만스키를 생각했다. 사실은 한마디라도 건네주었어야 옳았다. 그가 와준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표해 줘야 했다. 하지만 그랬다면 그는 이를 빌미로 자신의 삶 전체를 간섭하려 들 것이다. 손가락 끝만 내밀면 팔 전체를 삼켜버릴 것이다. 그러고도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조차 깨닫지 못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지 않았던가?
...
무엇이든 뒤져보려 하는 그, 급기야는 자신의 사생활까지 알아보려 하는 그가 짜증 나는 건 사실이었지만...그와 함게 일한 시간은 나쁘다고 할 수 없었다. 누군가와 같이 일한다는 것, 전에는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그와는 조금도 힘들지 않게 해나갈 수 있었다. 그는 잔소리를 늘어놓지도 않았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려 들지도 않았다. - 320
“그런데 왜 유턴했지?”
...
“당신과 같이 있는 게 좋았어요” 그녀의 어색한 고백이었다.
이제껏 그녀가 한 번도 입에 담아본 적이 없는 그런 종류의 말이었다. - 322
지금 지속적인 관계라고 말했나요? 우리가 방금 매듭지은 사건이 뭐죠? 추악한 성욕에 사로잡힌 사내들이 주인공으로 활약한 그런 사건 아니었던가요? 그 모든 것을 보고도 지속적인 관계를 꿈꾼다고요? 만일 내게 힘이 있다면, 그런 인간들을 모조리 박멸해 버리고 싶을 뿐이에요. - 325
그녀는 손으로 턱을 받치고 한동안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행복해 보였다. 갑자기 그녀에게도 기이한 느낌이 찾아왔다. 산다는 게 꽤나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 367
미카엘은 연인으로선 아무 문제 없는 남자였다. 침대 위에서 둘이 함께 있는 시간은 항상 즐거웠다. 둘의 육체적 관계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그는 결코 그녀를 자신의 취향대로 길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 419
그녀가 이렇듯 타인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자기에게 이처럼 가까이 다가오도록 허락한 경우는 미카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정말이지, 이 남자는 그녀의 방어 매커니즘을 뚫고 들어와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개인적인 일이나 감정을 털어놓게 만드는 무서운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
그가 코를 골면서 잠들어 있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생전 처음 느껴보는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가 솟아올랐다. 이제 그녀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은 결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녀의 능력을 이용하지도, 그녀에게 상처 주는 일도 없을 거라는 사실을. 본성상 절대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 420
이어 그녀는 마치 마비된 듯 꼼짝도 않고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렇듯 강하게 생의 의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
어린 시절부터 리스베트 살란데르의 내부에는 어떤 두려움이 웅크리고 있었다. 너무 크고 암울해서 거의 병적인 상태로까지 발전해 있는 두려움이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내밀한 감정들을 비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하여 그녀는 감정들을 가슴속 깊은 곳에 파묻고 꼭꼭 숨겨 왔었다. 그렇게 가냘픈 자존심을 간신히 지켜올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듯 애써 쌓아온 자존심이 일시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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