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을 검은 천으로 가리고 눈만 가리지 않은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는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보통 우리가 사람은 만나면 그 사람의 표정을 보면서 인사도 하고 얘기도 하고 그러는데, 얼굴 표정을 전혀 볼 수 없으니 말이에요.
이 영화의 배경은 사우디아라비아에요. 사우디아라비아가 뉴스에 나올 때는 주로 석유, 전쟁 아니면 여성과 관련된 어떤 일이 있어서일 때가 많아요. 누군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시설을 공격했다거나 여성들이 자동차 운전할 권리를 요구했다거나 뭐 그런 것들.
운전할 권리를 요구했다? 그럼 그전에는 운전할 권리가 없었다? 맞아요. 법으로 허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이 영화의 큰 줄거리는 마즈다가 여성으로써 자전거를 탈 자유를 얻어가는 과정이에요.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이야기에요. 여성이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면 안 된다는 관습 또는 문화 때문에 엄마와 학교 교사 등등이 그러지 말라고 압력을 넣거든요. 하지만 마즈다는 나는 자전거를 타고 싶다며 돈을 모으고 자전거 타는 연습을 하는 거에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즈다는 쉽게 기가 죽거나 움츠러들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해요.
왜 여자는 자전거를 타면 안 되냐고. 나는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왜 여자는 남자들이 볼 수 있는 곳에서 놀면 안 되냐고.
왜 남자들만 족보에 나오냐고. 왜 내 이름은 나오면 안 되냐고.
활짝 웃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하고, 답답해서 울기도 하는 와즈다의 모습을 보면 제 마음도 밝아져요. 딱딱하고 어둡고 메마른 관습이나 규칙, 교리에서 벗어나 밝고 환하게 피어나는 인간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어요.
여자 목소리가 담장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여자는 가족 아닌 남자를 만나면 안 된다
여자는 외출할 때 온몸을 가려야 된다
여자가 생리를 할 때는 쿠란을 직접 만져서는 안 된다...헐...
생리를 하는 것과 쿠란, 즉 그들에게 신성한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남자도 몸에서 분비물이 나오잖아요. 인간이란 게 다 그런 건데 특별히 여자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럽다거나 불결하다고 할 이유가 어디 있나 싶어요.
이슬람이라서 그렇다?
영화에 나오는 많은 장면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것이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많이 벌어졌기 때문일 거에요.
여자가 나대지 마라.
여자가 옷 똑바로 입어라.
여자가 남자 잘못 만나면 신세 망친다. 등등등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 싶어요. 정도의 차이가 있으면서도 닮은 모습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어요.
한국에서 어떤 여성이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출근을 한다고 하면 작거나 크거나 파문이 일어나겠지요. 와즈다의 엄마가 혹시나 남자가 자신을 볼까봐 얼른 벽 뒤로 몸을 숨기는 것처럼 말이에요. 남성이야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도 되고, 여성이 자신을 쳐다본다고 해서 몸을 숨길 필요가 없지만 말이에요.
원래 그랬어.
당연한 거야. 라고 한다면 그 원래, 그 당연이 언제 어디서부터 왜 생겼는지 물어볼 수 있을 거에요. 오래되었다고 다 좋은 거는 아니잖아요. 백인이 흑인을 차별한 것이 오래 되었다고 좋은 것은 아니듯이 말이에요.
아무튼 <와즈다>에서 와즈다는 이런 저런 상황에 답답해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지만 씩씩하고 활기차게 삶의 길을 열어가요. 그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저는 무슨 문제가 생기면 버럭 화를 내거나 실망해서 움츠러들거나 그렇게 잘 하는데, 와즈다는 저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에요. 저에게도 와즈다 같은 활기와 용기가 있으면 좋겠어요.
메마른 땅을 밝히는
빛나는 아침 햇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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