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정신 상태'라 함은 과거에 경험한 정확하고 상세한 환각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대뇌피질의 발작을 일으키기 쉬운 장소에 가벼운 전기자극을 줌으로써 그것을 재현했던 것이다. 이 실험은 의식이 완벽하게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환자에게 자극을 주자 곧바로 지극히 생생한 멜로디의 환각이 생겨났다. 사람들과 정경의 환각도 일어났다. 그 같은 환각이 수술실이라는 무미건조한 분위기에서도 대단히 현실감 있게 추체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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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스 선생님,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도 알겠고, 내가 뇌졸중을 일으킨 노인네이며 양로원에서 살고 있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전 지금 아일랜드에서 보낸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간 기분도 들고요. 어머니의 팔에 안겨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고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펜필드도 지적했지만 "그렇나 간질성 환각, 몽상은 결코 공상이 아니라 기억이다. 지극히 명확하고 선명한 기억이며, 더구나 당신에 체험할 때의 감정과 함께 떠오른다." 그러한 기억은 대뇌피질이 자극을 받았을 때마다 되살아나는데, 평상시에 떠오르는 기억보다 훨씬 더 선명하다. - 234
나는 M부인에게 항경련제를 투여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음악성 발작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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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발작의 원인은 생리학적이면서 동시에 환자 고유의 것이기도 하다. 뇌의 어떤 특정 부위에 이상이 생겨서 일어날 뿐 아니라 개개의 심리적 조건과 심리적 필요에 따라서 일어나는 것이다. 데니스 윌리엄스는 그 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31번째 환자는 모르는 사람들 틈에 혼자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간질발작을 크게 일으켰다. 발작 초기에는 집에 있는 부모님이 떠올랐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간절한 바람을 느꼈다. 그것을 떠올리기만 해도 즐거운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소름이 돋고 몸이 더워지거나 차가워진다. 그다음에는 발작이 멈추거나 아니면 경련으로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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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부인의 경우, 옛 기억을 떠올리고 싶다는 욕구가 마음 깊숙한 곳에 지속적으로 존재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그녀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그녀가 다섯 살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꿈속에서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긴 환각 속에서 그녀는 사라진 중요한 어린 시절을 되찾았던 것이다. 그녀가 느꼈던 것은 단순한 '발작성 쾌락'이 아니라 뼛속 깊이 스며드는 깊은 환희였다. 그것은, 그녀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인생을 굳게 닫아걸었던 문이 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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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부인은 발작이 일어나면 인생에 생기가 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발작을 통해서 심리적인 안정과 현실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오랜 세월 뿌리 없는 풀처럼 살았던 그녀가 아무리 원해도 얻을 수 없었던 소중한 감각이었다. '나에게도 정말로 얼니 시절이 있었다. 집이 있었고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귀여워했다'와 같은 따뜻한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치료를 받아 환각을 없애고 싶어했던 m부인과는 달리, c부인은 항경련제를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회상이 필요합니다. 지금과 같은 상태가 필요해요.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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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병이 곧 건강이고 병에 걸리는 것이 곧 치료되는 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뇌졸중이 치료됨에 따라 c부인은 우울증에 시달렸고 공포를 느끼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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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필드는 언제나 이러한 관점에서 의식에 대해서 생각했다. 정신발작은 의식의 흐름(혹은 의식된 현실) 가운데 일부분을 포착해서 경련을 통해 그것을 재생하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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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줄중에서 회복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발작이 일어나서 행복했습니다. 일생에서 가장 건강하고 행복했던 경험이었습니다. 이제 어린 시절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자세한 부분까지 낱낱이 떠올릴 수는 없지만 분명히 있었다는 것만은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비로소 나는 어느 모로 보나 만족스럽고 완전한 존재가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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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다면 우리 시대에 새롭고 멋진 '실존적인' 과학, 실존적인 요법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과 체계적인 생리학을 결합함으로써 병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 234-251
어느 시대에나 종교문헌은 '환영vision'에 대한 묘사로 가득 차 있다. 문헌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숭고하고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느낌을 눈부신 광채와 함께 경험했다...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경험이 히스테리성 황홀 상태인지 혹은 정신병적인 황홀상태인지 아니면 간질이나 편두통 혹은 중독 때문에 생겨난 상태인지를 확인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 281
황홀 상태에서 힐데가르트는 자신의 환영에 대해 신을 향한 경외심과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영적이고 신비주의적인 것으로 가꾸어가는데 도움을 받았다.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환영이 하찮고 꺼림칙하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생리적인 현상일 수도 있겠지만,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지고한 황홀감에서 나오는 영감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 285
-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알마, 2020
https://www.google.com/search?q=%ED%86%B5%EC%84%B1%EA%B8%B0%EB%8F%84&sxsrf=ALeKk00bFKIIWnSGKqyarQa2Bff7HdvEaw:1584139743787&source=lnms&tbm=isch&sa=X&ved=2ahUKEwj-rc-1xJjoAhVRy4sBHTm_C9wQ_AUoAXoECA4Q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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