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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위한 사랑, 사랑을 위한 법

순돌이 아빠^.^ 2021. 2. 17. 13:21

요즘 제 삶에 큰 즐거움과 배움을 주는 게 넷플릭스 <빨간머리 앤>이에요. 

시즌2:8화에서 길버트의 친구 서배스천이 한 가게에 들러 코코넛 워터가 있냐고 물어요. 그러자 주인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해요. 서배스천이 다시 소금이 있냐고 물어요. 그러자 주인이 없다고 해요. 눈 앞 진열장에 아주 잘 보이도록 놓여 있는데도 말이에요. 

 

서배스천 : 편견이란 참 불편하군요.

i sometimes i find bigotry very inconvenient. 

주인 : 내 가게에서 나가요. 당신 같은 건달이나 거지가 있는 곳으로 가요, 가. 

get out of my shop go back to where you belong with the other delinquents and indigents. 

bigotry

[불가산][가산] (인권적·종교적인) 편견에 뿌리 박힌 증오, 고집불통; 편협한 행위[신념].

 

서배스천이 가게 주인한테 욕을 하거나 돌을 던진 것도 아니에요. 그냥 가게게 들어와서 정중하게-sir라고 하면서- 코코넛 오일과 소금을 구하려고 했던 것 뿐이에요. 물론 돈도 가지고 있었구요. 

 

왜 그랬을까요? 장사가 하기 싫어서? 서배스천과 싸운 적이 있어서? 아니에요. 서배스천이 흑인이기 때문이에요.

 

서배스천이 길버트와 함께 기차를 타려고 해요. 그러자 백인 직원이 못타게 해요.

 

길버트 : 캐나다 태평양 철도가 차별을 한다는 말인가요?

so what you're really saying is cp railways is prejudiced? 

백인 직원 : 이 열차엔 그쪽 손님을 위한 자리가 없다는 겁니다. 

...

백인 직원 : 이 열차에서 유색인종은 일해야 합니다. 

on this train, we put the coloreds to work. 

흑인 직원 : 뒤에 있는 짐칸에 자리가 있을 것 같아요. 

we might find space enough for him in the back...with cargo.

참...상상하기 어렵기도 하고, 생각하기 싫기도 한 상황이에요. 유색인종, 그러니까 서배스천이나 저 같은 사람은 돈을 내고 표를 사도 기차를 탈 수 없거나 화물칸에 갈 수 밖에 없다니 말이에요.

 

마릴라의 도움으로 그들이 기차를 타게 됐어요. 함께 자리에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한 백인이 그들을 지나며 말해요. 

 

역겹군

disgusting

 

정말 확 뺨때기라도 한대 때려 주고 싶어요. 인간이 인간에게,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 역겹다disgusting라니요!!!

 

역겹다고 하는 니가 역겨워요. 우웩!!!

<김씨네 편의점>이라는 TV 시리즈가 있어요. 앤과 함께 캐나다가 배경이에요. 차이점은 앤이 자동차 대신 말을 타고 다니던 시대의 백인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면, <김씨네 편의점>은 최근의 한국인 이민자 사회를 배경으로 해요. 

 

<김씨네 편의점> 시즌1:1화에 재미 있는 장면이 있어요. 동성애자들이 가게에 와서 행사 포스터를 창문에 붙여도 되겠냐고 물어요. 김씨가 싫다는 의사를 전하지요. 

 

김씨 : 아니, 난 게이가 싫어하지 않아. 하지만 퍼레이드는 싫어하지. 

i have no problem with gay but i have problem with parade.

... 

로저 : 혹시 동성애 혐오자세요? 이건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에요. 증오 범죄이기도 하고요. 신고하겠어요. 

mr. kim. are you homophobic? this is discrimination against "the homos". and it's a hate crime, i'm gonna report it. 

김씨 : 야, 신고한다고? 이봐! 잠깐만...야 야 야...

그러고는 로저를 불러서는 자신이 동성애 혐오자가 아니며, 내가 동성애 혐오자면 왜 게이 할인을 해주겠냐며 부랴부랴 상황을 수습(?)해요. 

 

혐오, 차별, 증오, 범죄, 신고...이런 단어들이 나와요. 만약 서배스천이 <김씨네 편의점> 시대에 살고 있다면 어땠을까요? 과연 백인들이 기차 승차를 거부하고, 역겹다고 했을까요?

역겹다는 말이 나오는 장면이 또 있어요. 앤의 친구 콜과 교사인 필립스가 가까이 스치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필립스가 콜에게 하는 말이 역겹다disgusting에요.

 

뭐가 왜 역겨운 걸까요? 콜이 선생한테 욕을 했나요 돌을 던졌나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교실에서 콜이 잘못한 일이 아닌데도 냅따 콜에게 험한 말을 하고 나무 작대리로 때리겠다고 위협해요. 시즌2:8화에서 앤이 물어요.

 

앤 : 필립스 선생님은 왜 너를 미워하실까?

콜 : 자신을 혼내지 못하기 때문이야. 나와 같거든. 

he couldn't punish himsef. for being like me. 

앤 : 너와 같다고? 남자를...

 

남자인 필립스가, 그것도 한 여성과 결혼을 앞둔 자신이, 다른 남자인 콜에게 끌린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콜에게 욕을 하고 그랬던 거지요.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거부하고 있었던 거에요. 안타까운 일이에요. 콜이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면서 숨기고 있는 것에 비해, 필립스는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하면서 결혼까지 하려고 하는 거에요. 

우리 동네에 있는 한 교회에서 아주 당당하고 크게 내건 현수막이에요. <김씨네 편의점> 같았으면 혐오나 증오 범죄로 신고 당했겠지요^^

<앤> 시즌 2:7화에서 콜과 앤, 다이애나가 조세핀의 초대로 파티에 가게 돼요. 거기서 조세핀 할머니가 다른 여성인 거트루드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고는 다이애나가 충격과 혼란에 빠져요. 

 

다이애나 : 여자 둘이선 아이도 낳을 수 없어 말이 안 돼. 

two women could never have children. 

...

다이애나 : 비정상이잖아.

it's unnatural.

 

뭐가 정상이고 뭐가 비정상인 걸까요? 백인은 정상이고 흑인은 비정상일까요? 이성애자가 되어 아이를 낳으면 자연스러운 거고, 동성애자가 되어 아이를 낳지 않으면 부자연스러운 걸까요? 

 

TV에서 말고 백인을 직접 만나본 적이 있으세요?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눠 본 적은요? 흑인은요? 흑인은 만나본 적이 있으세요? 그들과 직접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있으세요? 

 

제가 만난 경험을 떠올리면...별 달리 다른 게 없어요. 그냥 사람이에요. 

 

동성애자를 만나 본 적이 있으세요? 아니면 양성애자는요? 

 

제가 만난 경험을 떠올리면...별 달리 다른 게 없어요. 그냥 사람이에요.  

 

무슬림은요? 유대인은요? 힌두교인은요?

 

제가 만난 경험을 떠올리면... 별 달리 다른 게 없어요. 그냥 사람이에요. 그 자체로는 이상할 것도, 나쁠 것도 없는 사람인 거지요. 

콜이 다이애나에게 말해요.

 

콜 : 고모할머님께선 평생을 뭔가가 잘못됐다고 느끼며 사셨을 거야. 뭔가가 망가졌거나 부서졌거나 비정상이라고. 그러다 어느 날 만난 사람이 그게 사실이 아니란 걸 깨닫게 해줬어. 고모할머님은 잘못된 게 없고 괜찮은 거라고. 그러면 다행이이라고 생각해야지. 

 

콜이 이런 말을 하게 된 건 조세핀이 콜에게 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에요. 

 

조세핀 : 거트루드는 내 눈물을 사랑했지. 아주 솔직한 사람이었어. 나를 부끄럽게 했지. 나는 모든 걸 감추도록 배우고 자랐는데 거트루드는 놀랍도록 다양한 감정을 지녔어. 그녀의 눈으로 보는 삶은 정말로 다채로웠어. 나의 세상을 영원히 색칠했지. 처음으로 나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만났다. 

콜 : 그 말씀은 마치...기적처럼 들려요. 

 

기적같은 만남을 통해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다채로운 삶을 삶게 됐다면 그건 아주 좋은 일이고 축복할만한 일이겠지요. 

인간의 삶이 추구할만한 소중한 가치는 어떤 것인가요? 인간이 살면서 찾고 또 찾아볼만한 삶의 의미는 어떤 것인가요? 

 

법이나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이 우리가 찾는 삶의 가치이자 의미인가요?

 

콜 : 나 같은 사람은 불법이야

앤 : 법이 잘못됐지

 

그게 종교법이든 국가법이든 인간 세상에 법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함부로 사람을 죽이거나 때리면 안되잖아요. 그렇다고 모든 법이 옳고 정당한 거냐하면 그건 또 아니에요. 일제 시절에는 독립 운동이 불법이었을 거잖아요. 

 

만약 저에게 법을 지키기 위해 사랑을 버릴 것이냐, 사랑을 지키기 위해 법을 버릴 것이냐고 묻는다면 사랑을 지키기 위해 법을 버릴 거에요.

흑인인 서배스천은 지금 백인인 길버트 집에서 지내고 있어요. 그 마을에 흑인은 서배스천 한 사람뿐이고, 많은 사람이 그를 보고 놀라거나 무시하는 눈빛을 보내요. 하지만 서배스천과 길버트는 서로를 도와주고 아껴주며 지내고 있어요. 

 

조세핀은 세상의 법을 지키기 위해 평생 자신을 감추고 속이며 단조로운 삶을 이어가야 했을까요? 아니면 남들이 손가락질하고 욕을 해도 삶을 풍성하게 하고 기쁘하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 더 나았을까요? 앤이 콜에게 이런 말을 하죠. 

 

인생은 참 복잡하구나.

또 한편으론 아주 단순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하라

 

껍데기는 껍데기지

껍데기가 알맹이는 아니에요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더 사랑하다 떠날 수 있도록

 

내가 나일 수 있고

당신이 당신일 수 있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