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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연민

순돌이 아빠^.^ 2021. 2. 4. 11:33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머리 앤> 시즌1:3화에 보면, 앤이 학교에서 프리시에게 잘못을 저질러요. 다른 학생들에게 자기가 보고 들었던 성적인 얘기를 늘어놓기도 하지요. 마릴라 아줌마와 매슈 아저씨가 둘이 얘기를 해요. 

 

마릴라 : 맙소사 앤 때문에 내 명에 못 살겠네. 그런 더러운 말을 했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해. 

dear lord. that child will put me in the grave. i cannot bear to think her spewing such filth. 

매슈 :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it worries me to no end. 

마릴라 : 이게 무슨 망신이야. 온 동네에 소문날걸. 이미 다들 알지도 모르지. 

what a disgrace! wait until all of avonlea hears about this, if they haven't already. 

매슈 : 내가 걱정되는 건 앤이야. 

i feel worried for anne, is what. 

...

마릴라 : 그 아이는... 

that child is...

매슈 : 어린애잖아. 안까까워 죽겠어. 어린 여자애가 그런 꼴을 보고 자랐다니 

a child. burns me up. a girl of her tender age, she oughtn't to know such things. 

 

매슈의 말을 듣고 뭔가 깨달은 듯 변하는 마릴라의 표정이 정말...소문이 나고 망신을 당할 것을 걱정했던 마음과, 겪지 말아야 할 일을 겪은 앤을 걱정하는 마음.

마릴라는 냅따 옷을 챙겨 입고 프리시의 집으로 가요. 그리고 프리시의 엄마 앤드루스 부인에게 사과를 하지요. 

 

앤드루스 부인 : 댁의 아이가 제 딸의 평판을 더럽히는 말을 했으니...

마릴라 : 정말 죄송합니다.

앤드루스 : 그런 난잡한 계집애를 데려와서 애번리에 득 된 게 없잖아요. 

마릴라 : 뭐라구요?

앤드루스 : 제대로 들으셨잖아요. 

마릴라 : 내 말 잘들어요. 앤이 한 말 때문에 그 애를 탓할 수 있어도...

you can hold anne responsible for what she said...

앤드루스 : 당연히 탓하죠. 

i can and most certainly do. 

마릴라 : 앤이 어쩔 수 없이 보고 들은 것들까지 그 애 탓을 할 수 없어요. 상상 이상으로 많은 것을 감내한 아이에요. 

but you can't hold against her what she's seen or been exposed to. that child has endured more than any of us can know or imagine. 

 

앤이 잘못한 건 맞아요. 마릴라의 말처럼 앤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만 욕을 하면 되잖아요. 마릴라도 그래서 사과를 하러 온 거구요. exposed라고 했으니...앤이 경험했다고 할 수도 있고, 또 거기에 앤이 어떤 상황에 노출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앤이 원하지 않았던 상황에 노출됨으로써 경험한 거지요. 앤은 자신이 노출+경험한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고 친구들한테 말을 한 거구요.

 

마릴라 : 진보적 교육을 지향하는 분이 연민은 부족하다니 안타깝네요. 이래 놓고서 일요 예배에서는 연민이 생겨 불쌍한 앤이 안식처를 찾았다며 감사 기도를 드릴지 모르지만요. 

it's a shame proressive parenting doesn't seem to include compassion. but purhaps you'll muster some up in church on sunday...and thank the good lord that poor anne has finally found safe haven. 

 

마릴라는 진보적 여성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어요. 거기서 여성 인권과 페미니즘, 진보적인 교육 등에 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요. 

 

음...앤드루스 입장에서는 충분히 화가 나고 욕을 할 수도 있어요. 저라도 그랬을 것 같아요. 근데...선을 넘은 게 문제였어요. 그게 마릴라에게는 진보적 교육과 양육을 말하면서도 연민이 부족하다고 느껴졌겠지요. 가뜩이나 고아라고 놀림 받고 무시당해서 힘들어 하는 앤에게...

 

compassion

1. 동정 2. 연민 3.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맹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차마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을 가지고 있다.
...
만약 지금 어떤 사람이 문득 한 어린아이가 우물 속으로 빠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면, 누구나 깜짝 놀라며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되는 것은 어린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기 위해서가 아니고, 마을 사람과 친구들로부터 어린 아이를 구했다는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며, 어린 아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싫어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다.
이것을 통해서 볼 때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 - 맹자, <맹자>, 홍익출판사, 2006

 

<맹자> 가운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에요. 마릴라가 말했던 연민compassion,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과도 닮은 것 같아요. 

 

앞의 책에 이런 해설이 적혀 있어요.

 

맹자는 사람은 누구나 나면서부터 선한 본성과 그것에 근거한 선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선한 마음은 선한 본성이 드러난 단서이자 싹이며 그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싹이 자신에게 있음을 확신하고 그것을 기르는 노력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때도 우리 마음은 아프고 슬펐어요. 강남역 등에서 여성들이 살해될 때도 아프고 슬펐어요. 기계에 끼여 노동자들이 죽어갈 때도 우리 마음은 아프고 슬펐어요. 

 

그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고 얼마나 당황하고 얼마나 애가 타고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를 생각하면 우리의 마음도 한없이 무거워져요. 누가 시켜서 그런 것도 아니고 무얼 바래서도 그런 게 아니에요. 그냥 그렇게 되는 거에요. 

<한겨레> 고 김용균씨 모친 김미숙 이사장이 11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진보라고 해도 좋고 인권이라고 해도 좋아요. 사회주의라고 해도 좋고 페미니즘이라고 해도 좋아요. 그런 말들이 생기고, 그런 운동이나 활동들이 생긴 건 바로 연민과 측은지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단체를 만들고 교육을 하고, 정당을 만들고 국회의원이 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에요.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연민과 측은지심이 있는 거겠지요. 겨울 강물 위에 얼음이 얼고, 봄 땅 위에 꽃이 피는 것과 같지 싶어요. 

 

누구나 언제나 그런 마음을 갖고 살지는 못해요. 저부터도 그렇거든요. 많은 것은 모르고 지나가고, 어떤 것은 알면서도 모른체 해요. 어떤 때는 열 받고 짜증나서 저 사람이 어떤지 저떤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을 때도 많아요. 

 

그러다 어쩌다 마릴라의 말을 듣고는...아 그래 맞아.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중요하지만 연민의 마음이 바탕되어야 할거야...더 많은 것을 하려고 하고 더 빠르게 무언가를 하다보면 그런 마음을 잊고 달려 갈 때가 있는 것 같아...

 

또 그러다 어쩌다 맹자의 말을 떠올리며...아 그래 맞아. 우리한테는 선한 마음이 있을 거야. 그러니 세상이 온갖 문제와  사건들로 넘쳐나지만 그래도 이만큼 변한 거잖아. 생물학에서도 이타적인 행동은 진화 과정에서 발전해 온 거라고 했던 것 같아요

 

youtu.be/Eq3E2qq6oXo

유튜브에서 영상 보는 걸 좋아해요. 며칠 전에는 도로에 홀로 앉아 있는 강아지를 구하고 치료해준 사람의 영상을 봤어요. 정말...눈물 나더라구요.

 

이런 분들이 있어서, 

이런 선한 마음들이 있어서

이 세상이 좀 더 밝아지는 것 같아 

구름이 아빠께 순돌이 아빠가 감사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