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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면역력

순돌이 아빠^.^ 2021. 2. 3. 12:47

사람들은 안 좋은 일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일이 일어나면 심리적 면역체계가 잘 작동한다. - shan j. lopez편, <인간의 강점 발견하기>, 학지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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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빨간머리 앤> 시즌1:1화에서 앤이 드디어 집을 갖게 되고 가족을 갖게 되었다고 아주 아주 좋아했어요. 근데 막상 그 집에 도착해보니...고아원에 남자 아이를 부탁했지, 여자아이를 부탁한 건 아니라네요. 오늘은 어쩔 수 없으니 여기서 자고 내일 돌아가라고 해요. 

 

같이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마릴라 아줌마 : 음식에는 손도 안 대는구나

앤 : 죄송하지만 넘어가지 않아요. 깊은 절망에 빠져 있거든요. 깊은 절망에 빠졌을 때 뭘 드실 수 있어요?

i can't. i'm sorry. i'm in the depths of despair. can you eat when you're in the depths of despair. 

 

그냥 슬프거나 속상한 정도가 아니라 깊은 절망,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다고 해요. 

 

앤이 울면서 잠자리에 들어요. 

 

마릴라 : 잘 자거라.

앤 : 저한테는 최악의 밤이라는 걸 아시면서 어떻게 잘 자라는 말씀을 하실 수가 있어요? 

how can you call it a good night when you know this must be the very worst night i've ever had?

 

최악, 아주 최악, 내 인생에 이런 일이 또 없었을 최악을 최악의 밤이라고 해요. 아래층에서 아줌마와 아저씨가 앤에 대해 얘기하는 중간에도 앤의 울음 소리가 계속 들려요.

다음날 아침이에요. 앤의 표정이나 목소리가 밝게 바뀌어 있어요. 창가에 있던 하얀 꽃가지를 가방에 넣고 다시 식탁에 앉아요.

 

앤 : 오늘 아침에는 배가 고프네요. 세상이 끝날 것 같지도 않고요. 어제밤처럼 말이에요. 아름다운 아침이라서 다해이에요. 비를 맞으며 돌아갈 일은 없을 테니까요...슬픈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기가 여러 어려움을 용감하게 헤쳐나간다고 상상하는 건 좋은데요...자기가 실제로 비통할 때는 그게 그렇게 쉽지 않아요. 

i'm pretty hungry this morning. the world doesn't seem such a howling wilderness as it did last night. i'm glad it's pretty morning, so we won't be driving back in the rain...it's all very well to read sorrowful stories, and imagine yourself living through them heroically but...it's so not easy when you're actually woeful. 

 

앤도 그렇고, 아마도...우리가 그럴 거에요. 최악의 날이었다고, 정말 슬펐다고, 완전 망한 날이었다고 해도...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점점 자신을 되찾고 회복할 때가 많아요.

 

물론 회복이 잘 돼지 않아 오랜 시간 좌절과 절망에 빠져 있을 때도 있어요. 좌절과 절망 속에 빠져 있는 시간도 있지만...많은 순간, 우리는 스스로 다시 일어날 거에요. 또 스스로 일어났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걸 거구요. 

좌절했다고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면...

 

아빠가 엄마를 죽이겠다고 가위를 높이 쳐들었을 때, 그 크고 무거운 손을 나의 작은 손과 몸으로 가로막으며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무얼 잘못했는지도 없으면서 잘못했다고 소리치며 울었던 꼬마 아이는 더이상 이 세상에 없었을 거에요. 

 

절망했다고 그대로 웅크리고만 있었다면...엄마가 몽둥이로 나를 두들겨 패면서 호로새끼라고 욕을 퍼부었을 때 저는 이미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는 아이가 되었을 거에요. 

 

하지만 저는 유리창이고 테레비고 온통 부서진 것들을 치웠고, 퀴퀴한 냄새가 넘쳐나는 아빠가 우웩 해 놓은 것들을 걸레로 닦았어요. 

 

하지만 저는 두들겨맞아 아프기도 하고 온갖 욕과 저주의 소리를 들어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다음날이면 학교에 갔고 책을 읽었어요. 

처음 자살에 관한 글을 읽고, 처음 자살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던 게 중학교 때였어요. 처음 집을 나가서 사람들이 저를 찾으러다녔던 것도 그때였구요. 그때 이후로 자살이나 죽음은 내 삶의 언저리에 늘 맴도는 그림자 같았어요.

 

그래도 어쨌거나 지금까지 50년을 살아남았고, 지금은 순돌이 아빠가 돼서 순돌이랑 잘 놀고 있어요. 슬플 때도 있고 괴로운 꿈을 꿀 때도 있어요. 즐겁고 행복할 때도 많구요. 이렇게 혼자 중얼중얼 거리기도 하구요. ^^

 

몸에는 무슨 무슨 호르몬이 있고, 무슨 무슨 세포가 있고 등등의 면역체계가 있다는 걸 들은 것도 같아요. 마음에도 그런 게 있을까요?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앤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어렵고 힘든 일을 많이 겪기도 하지만 그 순간을 이겨내고 다시 웃으며 새로운 삶을 향해 더욱 노력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마음의 면역체계라는 것이 정말 있다면...앤처럼 더 좋은 것, 더 나은 것, 더 기쁜 것들을 많이 떠올리는 것도 좋은 일인 것 같아요. 마치 건겅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거나 몸에 좋다는 무언가를 먹듯이 말이에요. 

 

그리고 최악의 밤을 눈물로 보내고 나서도 빛나는 아침 햇살 아래서 웃을 수 있는 의지나 용기를 갖도록 자꾸 연습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운동을 하면 처음에는 팔다리가 아프기도 하고 숨이 가빠서 더이상 하기 싫기도 하지만...자꾸 하다보면 아픔도 덜해지고 견디기도 이겨낼 수 있는 것도 많아지듯이 말이에요.

 

면역력 챙겨라, 면역력을 높여라 등등의 말이 있지요.

마음의 면역력이란 게 정말 있다면

그것 또한 챙기고 높이며 살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