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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도우려는

순돌이 아빠^.^ 2021. 1. 26. 07:05

깁슨은 넷플릭스 드라마 <더 폴>에서 경찰이자 여성이고, 제가 참 배울 게 많은 사람이에요. 범인을 잘 잡아서거나 총을 잘 쏴서가 아니라 힘든 일을 겪은 사람의 처지나 입장을 잘 이해하고 도움을 주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살인범 폴이 로즈를 납치, 폭행해요. 여기저기 끌려다니기도 하고 차에 갇히기도 했던 로즈를 깁슨이 구출해요. 시즌3:3화에 보면, 여러날이 지나고 로즈가 깁슨 앞에서 자신의 아픈 마음을 말해요. 

 

로즈 : 제가 항상 원한 건...사랑과 안전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젠 그저...막연하게 떠다니는 느낌이에요. 텅 빈 곳에서요...저는 마치...지금 제 발밑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제 발을 잡아 줄 게 없죠. 살짝 취한 것 같아요.

깁슨 : 로즈. 명심해요. 당신은 살아남았어요. 이겨냈다고요. 다 지나간 일이에요. 

 

이 말을 하는 과정에서 말의 내용보다는...깁슨의 표정을 보면...정말 깁슨이 로즈의 아픔에 공감하며 위로해 주고 감싸주려는 게 느껴져요. 공감한다고 위로한다고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로즈의 손을 잡으며 말을 건네는 그 모습이 참 뭉클해요.

 

범인을 잡는 것은 중요해요. 그리고 상처를 입은 사람을 위로하고 도움을 주는 일도 중요하겠지요. 어쩌면...범인을 잡는 것은 상처 입은 사람을 위한 일이고, 혹시나 모를 또다른 상처를 막기 위한 일이기도 하겠지요. 

 

사건보다는 사람이 중요한 거니까요.

 

이 드라마에서 제 마음을 참 안타깝게 하는 사람이 샐리에요. 샐리는 여성 연쇄살인범 폴 스펙터의 아내이기도 하고,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고, 산부인과에서 아이와 산모를 돌보는 간호사이기도 해요. 

 

폴의 요구로 샐리는 경찰에 거짓말을 한 적이 있어요. 폴의 행적을 거짓으로 말함으로써 수사에 혼선이 생겼지요. 그래서 경찰이 샐리도 기소를 하려고 해요. 시즌3:3화에 보면, 다른 경찰 간부 등과 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깁슨이 샐리에 대해 말을 해요.

 

간부 등 : 아내는 어떻습니까?

깁슨 : 샐리가 걱정입니다. 확실히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텐데 의심조차 못 했던 일이니 당연한 결과죠. 하지만 아내가 위법 행위를 반복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자신의 유죄를 인정했고 사실관계를 바로잡았어요...샐리의 기소는 철회해야겠어요.

간부 등 : 아내가 스펙터의 소재에 관해 처음부터 솔직히 말했으면 우리가 놈을 더욱 면밀해 수사할 수 있었고 그럼 로즈 스태그는 그런 고생을 안 겪었겠지. 

깁슨 : 저는 그저...아내를 법정에 몰아세우면 당사자의 심신 건겅에 큰 악영향을 줄 것 같아서요. 정말 아내의 기소가 공익을 위한 것일까요? 

간부 등 : 난 공공기소국장으로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

깁슨 : 샐리 앤 스펙터는 경찰 구금 중 유산했어요. 그건 어느 여인에게나 절망적인 일인데 특히 샐리에겐 더욱 그렇죠. 샐리가 돌보는 이들과 자녀들이 샐리의 정체성을 형성해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샐리가 돌보는 신생아 부모들은 샐리를 천사로 여긴답니다. 이제 샐리는 모든 걸 잃은 듯해요. 결혼 생활, 직장, 유산한 아기까지요. 순진함의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하죠. 

 

저는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고 생각지는 않아요. 법적으로 보면 당연히 샐리가 폴을 도운 것이 맞으니까요.

 

그리고 가장 열심히 폴을 쫓아서 잡은 깁슨이 샐리의 처지를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하는 것도 응원하고 싶어요. 사건도 사건이고, 범인도 범인이지만...아무 것도 모른채 살다 어느날 갑자기 너무 많은 것을 잃고, 너무 많은 충격을 받았을 샐리를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는 거에요.

 

깁슨을 빼면 모두 남성들이었어요. 남성이라는 게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깁슨이 여성이기 때문에 샐리의 처지를 좀 더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여성이라고 남들을 다 이해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깁슨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성적인 위치가 샐리의 처지에 좀 더 다가갈 수 있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다른 사람, 특히나 힘든 일을 겪은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도우려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거...그 사람의 표정이나 몸짓, 쓰는 단어나 음색 등을 통해서 상대가 지금 기쁜지 슬픈지, 고통스러운지 행복한지를 알아야 하잖아요. 우리가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상대의 마음을 직접 알 수 없으니 여러가지 단서나 정보를 모으고 종합해서 어느만큼이라도 접근해 보는 거지요. 

 

저부터도 대부분은 잘 몰라요. 가끔, 아주 가끔 천천히 가만히 그 사람의 표정이나 말에 집중하다보면 전부 다는 아니어도 어느 만큼 알게 될 때가 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이 힘든 일을 겪었다 싶으면...도움을 주고 싶어져요. 근데...그 사람이 힘든 일을 겪었고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해서 제가 언제나 무언가를 하는 거는 아니에요. 

 

어떤 때는 가만히 듣기만 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손을 잡거나 어깨를 두드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직접 나서서 무언가 행동을 할 때도 있어요.

 

그때 그때 다 달라요. 처지를 이해하는 것도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도움을 줄지 말지 어쩔지, 도움을 준다면 어떤 도움을 줄지를 찾는 것도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에요.

 

상대에게 어떤 것이 도움이 될지를 생각하기도 하겠지만...사실...내게 닥칠 일을 생각하기도 하고, 얼마만큼의 부담을 안을지를 생각할 때도 있어요. 물론 가끔은 이런 저런 생각없이 무조건 무언가를 하려 나서기도 하구요. 

 

그런 면에서 보면 깁슨이 저보다 3천배는 훌륭한 사람이에요. 무엇보다 상대의 말을 찬찬히 들으며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요. 그리고 상대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하나하나 되짚어 생각하지요. 

 

당장에 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어도...그렇게 상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작은 몸짓이라도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저런 모습이 우리 사는 인간 세상에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일인가 싶어요. 

사건을 해결하고 나쁜 놈을 때려잡는 게 중요하다는 거는 두 번 말하면 입 아픈 일이겠지요. 깁슨은 나쁜 놈 때려잡는 일도 잘해요. 그래서 벨파스트까지 와서 팀장으로 이 사건을 직접 맡게 된 거구요.

 

하지만 사건만 해결하고 나쁜 놈만 때려잡으면 우리 세상이 조금은 어두운 회색이 될지도 몰라요. 영화 <이퀄리브리엄>처럼요. 나쁜 일은 없는데 기쁨과 행복도 없는 거지요. 

 

그게 수사든 경찰이든, 정치든 경제든 결국은 사람 사는 일이잖아요. 악보다는 선이 많기를, 슬픔보다는 기쁨이 많기를, 차가움보다는 따스함이 많기를 바라는 거구요. 

 

그러려면 깁슨이 가진 성향이라면 성향이고, 능력이라면 능력이라고 할 그 무언가를 우리가 배우고 함께 하면 좋겠다 싶어요. 

 

아픈 마음을 품을 줄 알아야

밝게 빛나는 웃음도 볼 수 있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