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보고 나니 여운이 많이 남더라구요.
그리고 하루쯤 지나 영화에 나왔던 사람과 사람들, 장면과 장면들을 떠올리니 정말 참 좋은 작품이구나 싶습니다.
말로는 다 전하기 어려운
캐롤린이 갓난아이를 앞에 두고 술에 쩔어 있는 것은 분명 잘한 짓은 아니에요. 그래서 캐롤린에게 정신이 나갔냐고 소리치며 왜 이런 짓을 하냐고 물으면 캐롤린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지금껏 말해 보지 않은 것이 아닐지도 몰라요. 자신이 무엇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어째서 이토록 외롭고 공허한지 여러 차례 말했을 수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니가 팔자가 편해서 그런다, 그만한 거라도 감사하게 살아라 라고 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렇게 말하고 또 말해봐야 돌아오는 것이 달갑지 않거나 나쁜 소리 밖에 없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까 애기 앞에서 술에 쩔어 있는 것이 잘한 짓이냐구요? 잘했냐 못했냐로만 묻지 말고 왜, 어째서 캐롤린이 그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를 묻는 거에요.
왜 그토록 사랑을 갈망하게 되었냐는 거지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 보면 장발장이 빵을 훔쳐요. 빵을 훔치는 것이 범죄냐 아니냐를 떠나 왜 장발장이 빵을 훔쳤는지를 묻게 되잖아요.
그런데 왜 그랬는지는 묻지 않거나 건성으로 물은 뒤에 욕을 하거나 훈장질이나 하려 든다면 캐롤린도 그렇고 탈툴라도 그렇고 점점 입을 닫게 되겠지요.
말을 해도 전해지지 않으니 점점 말로 전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지요. 그렇게 되면 남들 눈에는 정신나간 이상한 짓거리나 하는 것들로 보일 수 있겠지요.
귀기울이고 들어야 알 수 있는
한창 나이도 젊은 탈룰라가 왜 그렇게 사느냐구요? 그러게요. 다른 기회도 있을 건데 왜 그렇게 살까요?
정말로 궁금하면 물어봐야겠지요. 그렇게 살지 마라고, 그렇게 살면 안된다는 가르침(?)을 주기 위해 묻지 말고 정말 왜 그런지 진심으로 물어야겠지요.
진심으로 물은 뒤에는 가만히 대답을 기다려야겠지요. 가만히 대답을 기다려도 답을 제대로 들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몰라요. 이미 여러번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은 속시원하게 말을 하고 싶기도 하고, 또 상처받을까봐 입을 닫거나 엉뚱할 말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탈루라의 얘기가 나와는 전혀 딴 세상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마음의 상태로 보면 여기도 저기도 뿌리 닿지 못하면서도 어딘가에 닿고 싶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구요.
마고요?
누가 보면 정말 멀쩡하지요. 많이 배웠고 큰 아파트과 비싼 그림들 속에 사는 마고.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마고지만 속은 점점 비어가요. 남편과 아들도 떠나고, 그나마 있던 거북이마저 떠나지요. 중력이 없다면 그냥 우주 멀리 날아가버리고 싶은 심정이에요.
마고에게 물어보세요. 왜 웃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왔는지.
마고에게 들어보세요. 어떻게 이제는 웃는 사람으로 살게 되었는지.
외로움과 사랑
영화 마지막 부분에 탈룰라가 캐롤린과 경찰을 향해 소리치는 장면이 있어요. 저 여자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며.
원해요?
원하냐구요?
두 유? 두 유? 하면서 소리치는데 눈물이 많이 나더라구요. 탈룰라가 아이를 대하는 대하는 마음, 캐롤린이 엄마를 찾는 마음, 그리고 아이가 캐롤린의 품으로 가며 '엄마'하는 마음.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거에요. 외로움이라는 것을 잘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고, 외로움이 깊으면 한겨울에 뼈가 시리듯 마음이 시린 사람도 있을 거구요.
먹을 게 없으면 배가 고프고, 사랑이 없으면 외로워요.
그 외로움을 덜어주고 마음이 시리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것도 사랑일 거구요.
지치고 힘겨울 때 쉴 수 있도록 해주고
가만히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쓸어주기도 하고
사고도 치고 실수도 하지만 상대방을 아끼는 마음으로 다가가고
시린발을 맞대다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함께 이불을 덮고 잠이 들기도 하고...
불타는 정열의 섹스가 없어도 서로를 느끼며 조금씩 깊어지는 그런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외로움에서 벗어나 삶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의미를 찾게 되는 것 같아요.
학력이나 지위가 높고, 아파트가 크고 돈이 많아서 의미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나누는 따뜻한 관계를 통해 의미를 찾는 거겠지요
의미를 느껴야 살고 싶어질 거고
그래야 이곳에 더 머물고 싶어질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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