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쇼스타코비치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삶, 권력과 예술 등에 관해 이야기한 것이에요.
작곡가, 게다가 클래식 음악 작곡가의 얘기라고 하면 뭔가 음악에 관한 어려운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뭐랄까…음악과 예술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바라본다고나 할까…그래서 특별히 어려운 이야기는 없어요. 그러니까 저같은 사람도 읽을 수 있었겠지요 ^^
읽은 소감이요?
참 마음 뭉클해요. 혹시 <속삭이는 사회-스탈린 시대 보통 사람들의 삶, 내면, 기억>이라는 책 읽어 보셨어요? 이 책은 어쩌면 속삭이는 사회를 살다 갔던 한 음악가의 이야기인지도 몰라요.
왜 뭉클하냐구요? 스탈린 시대…모두가 숨죽이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으면 다행이던 그 시절…그 아픈 얘기만으로도…게다가 쇼스타코비치가 그 속에서도 자신의 음악과 생각을 지켜나가려고 한 것이 참 마음에 많이 남아요. 마치 사진 속 그의 표정처럼.
요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있어요. 많은 것을 가진 것들이 뭐가 모자라서 저 짓거리를 하고 또 하는 걸까요?
쇼스타코비치가 그토록 싫어했던 폭력과 전쟁을.
클래식 음악이면 뭔가 우아하고 고상할 것 같지요. 물론 그런 곡들도 많이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만약 쇼스타코비치가 지금 살고 있다면 폭력과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인들의 고통과 절망을 음악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우리 삶 속에 음악이 있고
음악 속에 우리 삶이 있는 것처럼.
솔로몬 볼코프, <증언-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회고록>, 온다프레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진실을 추구하며 모든 사람에게 응분의 정당한 판결을 내리는 법정은 존재한다. 이는 자신의 양심을 걸고 진술하는 증인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그것보다 더 무서운 심판은 없다. - 75
부모님은 의심할 바 없는 인텔리켄치아였다. 당연히 그에 요구되는 섬세한 정신적 특질들도 지니고 있었다. 부모님은 예술과 아름다움을 좋아했으면 음악에 대해서는 특히 남다른 호감을 갖고 있었다. - 77
그렇지만 지금 프로코피예프네 가족의 분위기와 비교해보면, 우리 가족이 조금은 과감하게 자유로운 사고를 했음을 알 수 있다.
…
쇼스타코비치의 부모들은 자유로운 사고의 소유자였으며 삶을 즐 길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사람들이든 환영했고 정치적 견해에 상관없이 사정이 급박하면 누구에게든 도움을 주었다. - 80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도 고통을 느낀다. 나는 모든 것에 대해 고통을 느낀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말이다. - 95
요즘은 무례한 행동을 견디지 못하겠다. 그런 상대가 소위 위대한 예술가라 하더라도 말이다. 무례함과 잔인함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속성이다. 그런 수많은 예 중 하나가 스탈린이다.
아시다시피, 레닌은 그의 ‘정치적 유언장’에서 스탈린에게 오직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례함이라고 말했다.
…
지금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이지만, 당 지도부는 스탈린을 당 서기의 지위에서 밀어내야 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았다. 그들의 관점에서 볼 때 무례함은 아무런 단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건 오히려 용기와 거의 마찬가지의 덕목이었다.
…
하지만 우리는 그 일이 결국 어떻게 끝장났는지 안다. 안 돼. 무례한 사람에게서 결코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 말라. 그 야만인이 정치나 예술 혹은 어떤 분야에 있든 상관이 없다. 어디에 있는가와 상관없이 그는 늘 독재자, 폭군이 되고 싶어 한다. 그는 모든 사람을 억누르려 한다. 그러므로 결과는 아주 좋지 않다. 예외는 없다.
내가 화나는 것은 이런 사디스트들에게 언제나 팬과 추종자가 있으며 그것도 아주 진지한 추종자가 따른 다는 사실 때문이다. - 112
토스카니니의 지휘 스타일과 리허설을 지휘하는 그의 태도에 대한 글도 읽었다. 이 불쾌한 행동들을 묘사한 사람은 아무튼 그런 태도를 신나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 게 뭐가 신날 일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신나는 게 아니라 포학무도한 짓이다. 그는 음악가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저주를 내뱉으며 아주 뻔뻔스럽게 소란을 피운다. 불쌍한 음악가들은 이런 온갖 부조리를 참아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해고당한다. 심지어 그들은 그런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기까지 한다. - 114
우리는 외국인이나 외국의 것이라면 모조리 멸시하는 것 같다. 그러나 병적 멸시는 병적인 아첨의 반대편 얼굴이다.멸시와 아첨은 한 영혼 속에서 공존한다. 마야콥스키가 바로 좋은 예다. 그는 자신의 시詩에서 파리와 미국에 대해 침을 뱉었지만, 셔츠는 파리에서 사고 싶어 했고 미국산 만년필을 준다면 테이블 밑에라도 기어들었을 것이다. - 155
이 연주자들은 작곡가가 의도한 바대로 연주하지도 않고 그 작품에 대한 자기만의 해석을 나타내지도 못한다. 그 작품이 자신에게 갖는 고유한 의미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얼 연주하는가? 그저 음표만 연주할 뿐이다. 그것도 기본적으로 귀에만 의존한다. 누군가가 먼저 초연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머지는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니까. 이렇게 귀에 의존하는 연주의 작품 목록이 오늘날에는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와 힌데미트의 작품을 포함하기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그랬다고 해서 이런 스타들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본질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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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새 연주법’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불평할 수 있는가? 그게 무언데? 돈이 가득 든 지갑이라도 되는가? 길을 걸어가다가 ‘새 연주법’을 주울 수 있는가? 누군가가 떨어뜨린 것을 줍기만 하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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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당신이 새 연주법을 찾을 게 아니라, 그것이 당신에게 찾아와야 한다. 어떤 음악 작품을 위한 새 연주법은 대개 인생의 다른 측면들이나 인생 일반에 대하여 새로운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오게 마련이다. - 211
그래서 그에게 충고했다. “자네는 왜 연주하는 곡들의 다성 음악적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는가. 여러 성부의 움직임을 보여주게.
…
그리고 연극을 비유로 들어 설명했다고 기억한다. 거의 모든 피아니스트는 전면에 한 인물이나 주선율만 내세우고 다른 것들은 그냥 어두운 배경과 수렁 속에 남겨둔다. 그렇지만 희곡은 대개 여러 배역을 위해 쓰인다. 만약 주인공 혼자만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이 반응하지 않는다면 연극은 의미가 통하지 않고 지루해진다. 묻고 대답하는 것을 우리가 들을 수 있도록, 모든 등장 인물은 배역에 맞게 발언해야 한다. 그래야 연극의 흐름을 따라가는 일이 재미있어지는 것이다. - 212
문제는 당시에 [햄릿]이 상연 금지되었다는 데에 있었따. 믿거나 말거나, 우리 나라 극장에서 셰익스피어 특히 [햄릿]이나 [맥베스]를 공연하려면 대개 말썽이 생겼다. 스탈린은 이런 연극은 그 어떤 것도 견딜 수 없어했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뻔하다. 범죄를 저지른 왕이라는 주제, 그런 주제가 어떻게 지도자이신 스승님의 마음에 들 수 있겠는가. - 240
자, 그러면 권력 투쟁의 문제로 들어가보자. 아키모프의 <햄릿>에서는 이 투쟁이 중심 테마다. 왕좌를 위한 투쟁. 전통적인 죄의식 고통이나 의혹 같은 것은 몽땅 없어졌다. 나는 예술의 영원한 주제인 권력 투쟁은 신물이 난다. 아무도 그걸 피할 수 없다. 특히 우리 시대에는 말이다. - 246
과거에는 유형수들을 ‘저 불쌍한 것들’이라 불렀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뭐든지 주고 조금이라도 도와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요즈음엔 체포된 사람들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다. 일단 투옥되고 나면 당신은 더 이상 인간으로서 존재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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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청중들에게 죄수들은 불쌍한 사람이며 쓰러진 사람을 짓밟지는 말아야 한다는 점을 일깨우고 싶었다. 오늘은 당신이 감옥에 있지만 내일은 거기에 갇힌 사람이 나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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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호반시나>를 보자. 골리친 공작은 극도로 인정머리 없는 성품이지만, 그가 유형을 당하자 무소륵스키는 그를 동정한다. 인간이란 원래 그래야 한다. - 283
독재자는 스스로가 예술의 후원자로 간주되는 것을 좋아한다. 이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지만 독재자들은 예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왜 그런가? 독재는 비꼬이고 뒤틀린 현상, 즉 도착 현상이며 독재자는 그런 성격의 사람, 즉 도착자倒錯者이기 때문이다. 여러 측면에서 그러하다. 독재자는 시체를 밟고 넘어가면서 권력을 추구한다. 권력이 손짓하면 그는 다른 사람들을 짓밟고 조롱할 기회가 생길 테니까 거기에 유혹을 느낀다.
그렇다면 권력에 대한 탐욕은 도착성이 있는 게 아닐까?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권력에 대한 탐욕이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그 순간, 그는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이다. 권력의 정상에 오르고 싶어하는 입후보자들은 모두 내게는 의심스럽게 보인다. 지나온 불확실한 젊은 시절 동안 착각은 충분히 겪었다.
결국 자기의 도착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나면 그 사람은 지도자가 되지만 자기 같은 미친 사람들이 또 나올 위험으로부터 권력을 지켜야 하므로 도착성은 계속되는 것이다. 그런 적이 없다면 적을 만들어내기라도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가 가진 힘을 완전히 발휘할 수 없고 대중을 철저히 억압하여 피를 흘리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권력을 가진들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거의 없다. - 307
그를 보니까 혐오스러웠지만 동정은 하지 않았다. 그래, 동정심은 전혀 생기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당신은 이제 끝났어. 당신은 권력을 손에 넣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을 고문하고 싶어서 안달이군. 처형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당신이 겁쟁이이기 때문이야.
그래서 나는 그에게 직접 이 말을 들려주었다. 할 말이 있으며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고 남김 없이 전부 이야기한다는 것이 나의 원칙이다. 그는 울면서 후회했다. 하지만 그 순간 이후 내 눈에 그는 더 이상 음악가일 수 없었다. 그를 내가 잘못 알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피를 보고 싶어하는 성향은 도착성인데, 도착적인 인간이 예술, 특히 음악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따금 독일에서 죽음의 수용소 소장들이 바흐와 모차르트를 사랑하고 이해했다는 주장이나 그런 글이 나온다. 그 외에도 또 있다. 그 사람들이 슈베르트의 음악을 듣고 눈물을 지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건 언론인들이 만들어낸 거짓말이다. 내 개인으로서는 처형자이면서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런 이야기들이 그치지 않고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독재자들이 예술의 ‘후원자’이고 ‘애호가’라면 좋겠다고 생각할까?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독재자들은 비열하고 교활하며 잔꾀가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식쟁이거나 촌뜨기이기보다는 교양 있고 문화적인 사람으로 보이기를 원한다. 그러면 자기들이 저지르는 더러운 일들이 훨씬 근사하게 포장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더러운 일을 직접 하는 사람은 거친 폭력배이든 졸개이든 상관없겠지 - 311
그러니 이제 왜 바그너에 대해 양면적 감정을 갖는지 그 이유를 알아준다면 좋겠다. 러시아 작곡가들은 그로부터 오케스트레이션의 새 기법을 배웠지만 대규모로 명성을 확보한다든지 음모와 내부 투쟁을 일으키는 방법은 배우지 않았다. <지크프리트> 제1막의 칼 제련 장면은 천재적인 부분이다. 그렇지만 왜 자기 지지자들을 동원하여 브람스를 공격하는가. 동업자를 못살게 구는 행동은 그냥 순간적으로 불쾌해져서 저지르게 되는 행동이 아니다. 그건 타고난 본성에 기인하는 행동이다. 잔인한 성품을 타고났다면 그런 것이 음악에 반영되지 않을 수 없다. 바그너는 이런 사실을 일깨워주는 좋은 예다. 그런 사람은 그 밖에도 많이 있다. - 321
물론 파시즘은 내게도 가증스런 것이지만 독일의 파시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든 똑같이 가증스럽다. 요즘 사람들은 히틀러가 우리를 괴롭히기 전에는 모든 것이 좋았고 전쟁 전이 목가적인 시절이기나 했던 것처럼 회상하기 좋아한다. 물론 히틀러가 범죄자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지만 스탈린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나는 히틀러 때문에 죽은 사람들의 고통을 영원히 마음속에서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의 명령으로 살해된 사람들을 생각해도 그에 못지 않게 고통스럽다.
고문당하고 총살당하고 굶어 죽은 모든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히틀러와의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우리 나라에는 그런 사람들이 수백만이나 있었다.
전쟁은 새로운 슬픔과 훨씬 더 새로운 파괴를 가져왔지만 나는 공포로 마비되었던 전쟁 이전의 시절을 잊지 않았다. <교향곡 제7번>과 <교향곡제8번>뿐 아니라 <교향곡4 제4번> 이후의 내 교향곡이 말하려던 것은 그 시절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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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교향곡은 대부분 묘비다. 너무 많은 수의 우리 국민들이 죽었고 그들이 어디에 묻혔는지는 알려지지도 않았다. 친척들조차 알지 못한다. 내 친구도 여러 명 그런 일을 당했다. 메이예르홀트나 투하쳅스키의 묘비르 어디에 세우겠는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음악밖에 없다. 나는 이런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작품 하나씩을 바치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하니까 그들 모두에게 내 음악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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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에서 <교향곡 제7번>과 <교향곡 제8번>은 ‘전쟁 교향곡’이 되었다. - 371
유대 민속음악의 이런 속성은 음악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내 생각과 아주 비슷하다. 무슨 음악에든 두 층위가 있어야 한다. 유대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고통을 겪어왔기 때문에 자기들의 절망을 숨기는 법을 배웠다. 그들은 춤곡에서도 절망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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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순전히 음악적 이슈만이 아니라 도덕적 이슈이기도 하다. 나는 유대인을 대하는 태도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시대에 자기가 선량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반유대주의자일 수는 없다. 이것은 너무나 뻔한 사실이어서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 주제를 갖고 30년이 넘도록 논란을 벌여야 했다. - 373
서로 반대 진영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이 예술에 대해 내놓은 선언이란 것이 서로 닮아가는 걸 보면 재미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만약 음악이 듣기 흉하고 추악하고 야만스러운 것이 되면, 그것은 그 자체의 존재 목적을 더 이상 충족시키지 못하게 되며 그런 것은 더 이상 음악이 아니다”
자, 고급 예술을 지지하려는 탐미주의자라면 누구라도 이런 발췌문 밑에 기꺼이 서명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말은 저 탁월한 음악 비평가 즈다노프의 발언이다. 저 탐미주의자들과 그는 인생과 비극, 희생자,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키는 음악에 똑같이 반대한다. 음악은 오로지 아름답고 우아해야 하며 작곡가들은 순수하게 음악적 문제에만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는 편이 시끄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런 관점을 언제나 격렬하게 반대해왔으며 그것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했다. 나는 언제나 음악이 적극적인 세력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게 러시아의 전통이다. - 378
그러나 이제 나는 모든 일이 얼마나 복잡 미묘한 것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이제 나는 글라주노프의 정신 속에 영원한 갈등이 있었으리라 추측한다. 그것은 러시아 인텔리켄치아, 우리 모두에게 나타나는 영원한 갈등이다. 글라주노프는 자기가 누리는 개인적 혜택이 불공평한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괴로워했다. 그는 인생에서 정당한 혜택을 누리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의 방문을 받았고 그런 사람들을 도우려고 애썼다. 그러고 나면 그런 사람들은 더 많이 왔지만 그들 모두를 도울 수는 없었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그는 기적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었고, 우리 모두 또한 그러했다. 그런 데서 끊임없이 괴로움이 생긴다. - 397
체호프의 전 생애는 순수함과 겸손함의 표본이었다. 그것도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겸손함이 아니라 내면적인 겸손함이었다. - 413
체호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살았을 때 혼자였듯이 나는 무덤에서도 홀로 누울 것이다” - 416
한 사람이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을 변화시키거나 가르칠 수는 없다. 그런 일은 아무도 해내지 못했다. 예수 그리스도일지라도 자기가 그런 일에서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 그 방면에서 세계 기록을 세운 사람은 아직 없으며 지금처럼 험하고 불안스러운 시기에는 특히 그렇다. 모든 인류를 한꺼번에 구원하려는 실험은 이제 실현가능성이 지독히 의심스러워 보인다.
그리 길지 않은 내 인생에서도 이런 지긋지긋한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자기가 인류를 올바른 길로 돌려놓으라는 소명을 부여받았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인류 전체는 아닐지 모르지만 최소한 자기 나라 국민들을 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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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 전매 특허권자들끼리는 공통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자기 말에 반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두사람 모두 기분이 나빠지면 아주 거친 말투로 욕하는 재주가 뛰어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들이 구원하겠다고 계획하는 바로 그 국민들을 전적으로 경멸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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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특별한 것이 없는 일반인들, 깨끗하다기보다는 더러운 편에 속하는 일반인들을 경멸하는군요. 그렇다면 왜 스스로를 예언자이고 구세주라고 자처합니까?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 428
두 번째 구세주가 스탈린임이 분명히 밝혀졌으면 좋겠다. 그가 맑스주의자이자 공산주의자였으며 또 무신론 국가의 수장이었고 종교 신자들을 탄압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
스탈린에게 이데올로기, 믿음, 이념, 원칙 같은 게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스탈린은 학정을 자행하고 사람들을 공포와 죄의식으로 묶어두기 쉽게 해주는 것이라면 어떤 주장이라도 견지했다. 지도자이신 스승님께서 오늘은 이런 말을 했지만 내일은 또 다른 소리를 할 것이다. 그는 권력을 자기 손에 계속 쥐고 있는 한, 자기가 무슨 말을 했든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중 가장 기가 막힌 것이 스탈린과 히틀러의 관계다. 스탈린은 히틀러의 이데올로기가 무엇이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히틀러가 자신을 지지해주고 영토도 확장하도록 도와주리라는 판단이 내려지자 그는 곧바로 히틀러와 친구가 되었다. 독재자와 사형 집행인에게는 이데올로기가 없다. 단지 광적 권력욕만 있을 뿐이다 - 430
그러나 보론스키는 스탈린에게 복종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탈린은 그를 리페츠크로 유행을 보내싸가 모스크바로 다시 불러들였다. 전례 없는 사건이었다. “그래, 이제는 한 나라에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가? 내가 러시아에 사회주의를 건설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겠지?” 스탈린은 보론스크에게 말했다. 보론스키는 그냥 머리만 끄덕였어도 다시 스탈린의 자문위원이 되었겠지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군요. 당신이 오로지 당신 혼자만을 위한 사회주의를 크레믈에 건설했다는 사실은 잘 알겠습니다:” 스탈린은 명령했다. “이자를 돌려보내라” 스탈린은 보론스키를 구제하려는 노력을 몇 번 더 해보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보론스키는 심하게 앓아 감옥 병실에 누워 있었다. 스탈린은 그를 만나러 와서 죽기 전에 참회하도록 설득했다. 보론스키는 마지막 남은 기운을 쥐어짜서 내뱉었다. “신부여 저리 꺼지시오” 보론스키는 스탈린 앞에서 참회를 거부한다는 뜻을 분명히 나타냈고, 절개를 꺾지 않은 채 감옥에서 죽었다. - 435
그래, 다시 말하겠다. 스탈린은 병적으로 미신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 각국의 용서받지 못한 선조와 인류의 구원자들은 모두 그런 증세로 고생하고 있다.
…
물론 스탈린은 미치광이이며 그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역사상 미치광이 통치자는 수없이 많았으며 러시아에도 러시아의 몫 즉 이반 뇌제와 파벨1세가 있었다. 네로도 미친 사람이었던 것 같고 영국의 조지 몇 세 중에 누구인가도 미쳤다고 한다.
유명한 정신분석의 베흐테레프는 우리 가족의 친구인 외과의사 그레코프 박사의 친한 친구였다. 그는 용감하게도 스탈린이 미쳤다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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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크레믈에 불려 가서 스탈린의 정신 상태를 꼼꼼하게 살폈다. 그런 뒤 그는 곧 죽었다. 그레코프는 베흐테레프가 독살된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
말년에 스탈린은 점점 더 미치광이처럼 되었다. 그는 미신 증세도 더 심해진 것 같다. 지도자이신 스승님은 수많은 자기 개인 다차 중 하나에 들어앉아서 문을 잠그고 괴상망측한 방법으로 혼자 즐기고 있었다. 묵은 잡지나 신문에서 그림과 사진을 오려내어 종이에 붙이고는 벽에 걸어두고 본다는 것이다.
…
경호원은 어질어질해질 지경이라고 투덜댔다. 지도자이신 스승님은 다차 마당에 거의 한 번도 나오지 않았고 어쩌다 나오더라도 진짜 편집증 환자처럼 행동했다. 경호원 말에 따르면, 그는 계속 주위를 둘러보고 살피고 뚫어지게 쳐다본다는 것이었다. 경호원은 잔뜩 감탄했다. “그분은 적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한 번 휙 보기만 하면 모든 것을 아시지요” - 439
음악은 한 인간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조명해준다. 그것은 인간의 마지막 희망이며 마지막 피난처이기도 하다. = 515
음악에서의 의미, 이 말은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아주 기이하게 들릴 것이다. 특히 서구에서는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여기 러시아에서는 이런 질문이 자주 제기된다. 도대체 이 작품에서 작곡가가 말하려는 게 무엇인가? 그는 무엇을 밝히려는가? 물론 이 질문은 소박한 것이지만, 소박함과 조잡함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분명 제기될 만한 질문이다.
나는 거기에 이런 질문을 덧붙이고 싶다. 음악이 악을 공격할 수 있을까? 음악이 인간으로 하여금 잠시 걸음을 멈추어 서서 생각하게 할 수 있을까? 음악이 울려 퍼지면 이때껏 익숙하게 보아오던 여러 악행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될 수 있을까? 자기가 전혀 관심도 보이지 않고 스쳐 지나갔던 사건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 518
요컨대 마야콥스키에게는 내가 싫어하는 갖가지 종류의 성격이 모두 모여 있었다. 사기성, 자기 선전 벽, 유복한 생활에 대한 욕심, 그중 제일 큰 문제는 약자에 대한 경멸과 강자에 대한 비굴함이었다. 마야콥스키에는 힘이 곧 최고의 도덕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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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내가 문제 삼는 것은 재능이 아니다. 재능은 추상적인 문제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입장이다. 푸시킨은 잔혹한 시대에 살면서 시를 써서 자유를 찬양했고 낙오한 사람들에 대한 자비를 호소했다. 마야콥스키가 추구한 것은 그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 544
결국 누구나 시인이 될 수는 없지만 시민 노릇은 제대로 해야한다. 그런데 마야콥스키는 시민이 아니라 스탈린을 충실하게 섬긴 아첨꾼이었다. - 545
지지부진 계속되던 대화가 갑자기 위험한 쪽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스탈린은 자기가 오케스트레이션에도 일가견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졌다. - 570
이것은 스탈린이 작곡을 눈꼽만큼도 이해하지 못하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작곡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내 추정치에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다른 주제도 그렇듯이 스탈린이 음악도 아는 게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게 분명해졌다. 그가 오케스트레이션이라는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오로지 허풍을 떨려는 수작이었지만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 - 574
전쟁이 끝난 뒤 조셴코는 서방세계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
스탈린은 서구 언론을 면밀하게 지켜보고 있었다….스탈린은 다른 사람들의 명성을 주의 깊게 저울질해보고 그것이 너무 무거워진다 싶으면 곧 저울에서 밀어 떨어뜨린다.
조셴코는 그렇게 해서 당한 것이다.
…
전쟁이 끝난 뒤, 레닌그라드 시인들의 밤이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낭송회에 아흐마토바가 나오자 청중들이 기립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스탈린은 물었다. “기립하는 일을 조직한 게 누구야?” - 589
'사랑.평화.함께 살기 > 삶.사랑.평화-책과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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