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방백) 아, 과연 그렇다. 그 말이 내 양심을 따갑게 채찍질하는구나! 화장술로 곱게 단장하 창녀의 볼이 추악하다 한들, 그럴싸한 말로 꾸민 내 행실보다 추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 무거워라, 이 죄의 짐! - 60
왕
고맙소.
(폴로니어스 퇴장, 왕, 이리 저리 걸어 다니면서) 아, 부패한 나의 죄악, 악취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인류 최초의 저주를 받은 형제 살인의 죄.
…
그러나 아, 뭐라고 기도를 드려야 용서받을 수 있을까? “비열한 살인죄를 용서하소서” 하면 될까?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살인으로 얻은 이득을 아직도 다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나와 왕관과 나의 야심과 왕비를, 죄로 얻은 것을 간직하면서 죄의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
…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는가? 회개해 보자. 회개로 안 될 일이 있겠는가? 그러나 회개할 수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아, 비참한 신세로다! 죽음같이 어두운 내 가슴! 오, 덫에 걸린 새 같은 이 영혼, 벗어나려고 몸부림칠수록 더 꼼짝할 수 없게 되는구나! 도와주소서, 천사여! - 78
왕비
…
죄악의 본성이 본디 그런 것이지만, 병든 내 영혼에는 하찮은 일 하나하나가 무슨 큰 재앙의 서곡 같이만 여겨지는구나. 죄지은 마음이 어리석은 두려움에 가득 차서 감추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도리어 더 나타나게 되나보다. - 94
- 셰익스피어, <햄릿>, 동서문화사, 2016
잘못을 저지르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당황하거나 놀라거나 때론 무섭기까지 합니다
뭐 저런 인간이 있나 싶기도 하고
우리가 한 하늘 아래 같은 인간으로 살고 있는 것이 맞나 싶기도 하지요
나 자신을 포함해 누구나 갖고 있을 것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아주 낯설게 느껴집니다
죄책감이란 것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 수가 많지는 않겠지만 어딘가에는 꼭 있겠지요
<햄릿>에서 보듯 다른 사람을 죽이고 권력을 차지한 인간도
자기가 저지른 짓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말입니다
양심이나 죄책감은 우리 사는 세상이 좀 더 안전하고 평화로울 수 있도록 만드는
아주 중요한 마음의 기능이지 싶습니다
양심이나 죄책감이 있기 때문에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고
행여 잘못을 저지른 뒤에는 자신을 반성하며
다시 그런 짓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겠지요
누군가 양심이나 죄책감을 잘 느끼지 않는다 싶으면
만약 정말로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된다면
개인적으로는 그런 사람과의 관계를 멀리해야 할 것이며
사회적으로는 그 사람의 활동을 억제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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