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예술과 함께

인생의 희노애락과 예술

순돌이 아빠^.^ 2022. 4. 22. 23:23

 

요즘 피아노로 쇼팽의 녹턴 2번을 배우고 있어요. 예전에도 한 번 배운 적이 있는데…그때는 너무 너무 어렵기만 해서 무슨 정신으로 쳤는지 모르겠어요 ㅠㅠ

 

세월이 어느만큼 흐르고 나니…그나마 그때보다는 덜 어려워져서 다행이에요. 좀 덜 어려워지니, 곡을 느끼는 것도 좀 더 편안해지더라구요.

https://youtu.be/NS-11EgaNvw

오늘 수업이 있었어요. 수업은 늘 비슷한 방식이에요. 준비해간 것을 연주하면 샘이 이러면 좋겠다 저러면 좋겠다 하시고, 그러면 다시 해보기도 하고 숙제로 남기기도 하고.

 

준비해간 것을 듣고 나시더니 샘이 그러더라구요.

 

샘 : 음…음악이란 게 그런 것 같아요. 나이가 어리면 나이가 좀 든 분들보다는 연주를 빨리할 수는 있을 거에요. 아무래도 근육 같은게 부드럽고 그러니까…

순돌이 아빠 : 맞아요. 나이가 들면 눈도 침침해지고 ㅋㅋㅋ

샘 : 근데…빨리 칠 수는 있는데…특히 이런 곡은…나이가 들고 인생의 희노애락을 느껴보신 분들이 치면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순돌이 아빠 : (악보 위로 손을 움직이며) 맞아요. 이 곡을 치고 있으면 제 삶의 여러 순간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여러 사람들의 얼굴이 지나가기도 하고 그래요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기도 하고 그래요. 이 연주를 통해 나는 요즘 이렇게 살고 있는데 당신은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라고 묻고 싶기도 하고…

 

샘 : 정말 아름다운 곡이죠?

순돌이 아빠 : 맞아요

샘 : 정말 오래 전에 작곡한 곡인데 그 오랜 세월 많은 사람이 연주하고, 아직까지도 연주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지난번에는 수업 도중에 눈물이 날뻔 했어요. 시~솔 하는데 벌써 마음이 짜릿 하더라구요. 1마디의 시~솔을 벌써 여러 수백번 쳤는데도, 그때 그때 느낌이 다를 때가 많아요. 

 

그러다 2마디에서 시~라 하면서 소리를 살짝 오므리는데…마음이 쿵! 하더라구요. 

 

연주를 멈췄어요. 그 순간, 샘이 왜 멈추느냐고 묻는게 아니라

 

샘 : (큰소리로 악보를 향해 손짓을 하며)그래 바로 이거에요. 제가 원하는 소리가 이거였어요

순돌이 아빠 : (피아노 위에 엎드리며) 눈물 날 것 같아요

샘 : 그렇죠…

 

웃기죠? 솔 소리 하나, 라 소리 하나에 심장이 쿵쾅거리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하고…어떤 때는 정말 눈물이 나기도 하고…^^;;

 

그 소리들이 제 마음에 떠올리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추억일 수도 있고, 희노애락일 수도 있고…

제 나이 이제 50이 넘었으니 적다고 할 수도 없고 많다고 할 수도 없을 거에요.

 

많다고 하거나 적다고 하거나 아무튼 나이가 들면서 뭔가 달라진 거는 있는 거 같아요. 

 

예를 들어 최근에 셰익스피어의 작품 몇 개를 다시 읽었는데 20대 30대에 읽었을 때와는 느낌이 또 다른 것 같아요.

 

<맥베드>를 놓고 보면…예전에는 

 

맥베드 이 나쁜 놈아 그러면 안 되지. 그렇게 사람을 죽이고 음모를 꾸미며 권력을 추구하는 건 나쁜 짓이야

 

뭐 그런 생각이 강했어요.

그런데 이번엔 뭐랄까...

 

권력과 탐욕의 부질없음? 그래, 그래서 뭐할건데 싶은? 그 높은 자리에 앉아서 얻을 수 있는 게 뭔데 싶은? 아니면 인생의 허무함 같은 게 더 많이 느껴지더라구요. 

 

맥베드와 그 부인을 보면서 윤석열과 김건희가 많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아이고 그렇게 남을 괴롭히고 거짓말 하고 그래서  대통령이 되고 대통령 마누라가 되니까 좋냐? 뭐가 그리 좋냐? 마음의 평안과 만족을 얻었냐? 

 

싶기도 하고 그렇더라구요.

 

밝은 빛의 봄날이 더욱 좋아지고, 순돌이와 하루 하루 함께 보내는 것이 더욱 소중해기도 하구요.

밀레. 자화상

삶의 시간이 흐르고, 이런 저런 감정과 생각들이 오가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예술 작품을 대하는 제 마음도 달라진 것 같아요. 

 

아마 세월이 5년 10년 또 흐르고 나서 맥베드를 다시 읽고, 쇼팽의 녹턴을 다시 연주하면 그때는 또 다른 느낌이 들고 다른 감정이 일어나기도 하겠지요.

 

수백년동안 늘 같았던 글이고 같았던 곡인데도, 제가 무엇을 느끼며 살아가는지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 예술인 것 같아요. 

 

인생의 희노애락이 똑같은 예술 작품을 제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도록 하는 것도 같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