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음악가의 경우에 늘 그러하듯이, 베토벤의 작품에서는 영혼과 음악이 하나가 되었다. 영혼과 음악을 분리하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 가령 문학가나 '심리학자'로서가 아니라 음악가로서만이 이 위대한 사람의 영혼을 이해하게 되며, 또한 온전한 인간으로서만이 이 음악의 강력한 실체를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발터 리츨러의 <베토벤> 가운데
베토벤이 1770년에 태어났다고 하니 벌써 오래된 사람이지요. 이 곡을 1824년에 발표했다 하구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이 연주를 한 것이 1951년이니까, 제가 태어나기 한참 전의 일이네요. 이 음반을 들어보면 녹음 상태도 이것이 최근에 녹음한 것이 아니라 예전에 한 것이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곡도, 연주도, 녹음도 오래된 것들이지요.
어제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듣는데...날이 좋아서 그런지...진짜 눈물 나더라구요...
혹시나 실수를 하지 않을까 싶어 손잡이를 꽉 잡아야 했습니다.
베토벤이, 음악이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합창' 부분의 가사야 무슨 말인지 모르니, 그 말들이 없어도 음악 속에 미래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하던 베토벤의 그 시절보다는 지금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겠지요. 푸르트벵글러가 이 곡을 연주하던, 그러니까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그때보다도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 거구요.
그리고 또 세월이 50년이든 100년이든 흐르고, 제가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의 삶은 지금보다도 더 나아져 있을 겁니다.
우여곡절과 어려움이 왜 없겠습니까.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 작곡도 하고 연주도 했는데 말입니다.
곤란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아질 수 있기 때문에
희망이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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