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어떤가? 아마도 다른 나라들에도 통치자들과 평민(민중:demos)이 있겠지만, 이 나라에도 마찬가지로 있겠지?”
…
“한데 이들 모두는 서로를 시민들로 부르겠지?”
…”
“다른 나라들에서는 평민이 통치자들을 ‘시민(polites)들’이라는 호칭에 더하여 뭬라 부르는가?”
“많은 나라에서는 ‘군주(絶對君主: despotes)’들로 부르지만, 민주적으로 다스려지는 나라들에서는 바로 이 이름으로 즉 ‘통치자들’로 부릅니다.
…
“하나 다른 나라들에서는 통치자들이 평민들을 뭬라 말하는가?”
“노예(doulos)들이라 말합니다” 그가 대답했네. - 플라톤, <플라톤의 국가>, 서광사, 1997, 344쪽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하는 말입니다.
시민 가운데 한 사람이 정치나 행정의 업무를 맡다 보니 이들의 권한에는 제약이 있습니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기한도 정해져 있구요.
이를 정치인이나 행정가라고 한다면, 이들은 다른 시민들에 비해 특별한 힘을 갖고 있지 않을 겁니다.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 있는 정치인 시민A와 평민 시민B의 관계인 거지요.
하지만 왕이나 군주한테는 그런 게 없습니다. 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하고 싶을 때까지 하는 거지요.
이를 독재자라고 한다면, 이들은 다른 인간들에 비해 특별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북한이나 사우디아라비아, 아프가니스탄 같은 나라들이 되겠지요.
한국으로 치면 옛 조선의 왕 아니면 박정희나 전두환을 생각해보면 되겠지요. 사람 하나 죽이는 거 일도 아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떤 나라가 시민-시민의 관계인지 군주-노예의 관계인지, 아니면 그 가운데 어느 정도의 상태인지를 알아볼 수 있는 지표 가운데 하나가 정치인 또는 행정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거나 손가락질을 할 수 있느냐 일 겁니다.
푸틴이 우두머리로 있는 러시아의 경우, 비록 푸틴이 선거를 통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고는 하나 그를 자유롭게 비판하거나 조롱할 수는 없습니다. 죽을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독살을 당할 수도 있고 총에 맞을 수도 있겠지요.
이런 러시아는 지금 시민-시민 관계보다는 군주-노예 관계 쪽에 가까울 겁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제가 보기에는 광주항쟁과 6월항쟁 등을 통해 시민-시민 관계에 가깝도록 만들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윤석열이나 그의 무리들을 보면 심성이 군주-노예 쪽에 좀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힘겹게 민주적인 시스템 쪽으로 조금 옮겨 놓았더니, 민주주의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 권력을 잡은 거지요.
시민-시민의 관계가 되려면 일단 정치인이나 행정가가 평민 또는 민중을 대할 때 자기와 같은 동등한 시민이라는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치인으로서의 권한과 힘을 가진 만큼 다른 시민들이 비판이나 손가락질을 할 수도 있는 거구요.
그 사람의 사생활에 대해서 말하는 건 아닙니다. 속옷을 빨간색을 입든 파란색을 입든, 순대국밥을 좋아하든 돼지국밥을 좋아하든 그건 사생활의 영역이기 때문에 다른 시민들이 이러쿵저러쿵 할 게 없습니다.
하지만 공적인 영역, 공적인 지위와 활동에 관해서는 얼마든지 비판도 하고 손가락질도 할 수 있는 거지요.
이번에 한 고등학생이 그린 만화가 유명해졌습니다. 공모전에 출품한 '윤석열차'라는 작품이지요.
그림 그 자체만으로도 유명해졌는데, 윤석열 정권에서 ‘엄중 경고’를 하고 나섬으로써 더욱 유명해졌지요.
그림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열차의 앞머리는 윤석열이고 조종은 김건희가 하고 있습니다. 그 뒤에는 검사들이 칼을 휘두르고 있구요.
이건 누가 봐도 공적인 지위와 활동에 관한 것이며. 이들의 공적 활동을 비판하고 손가락질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다른 한 시민도 아니고 윤석열 정권이 나서서 ‘엄중 경고’를 하고 나선 거지요. 참으로 치졸해서 헛웃음만 나옵니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1061292.html
북한에서야 김정은이나 리설주를 비판하면 당장에 잡혀가겠지요.
독재 국가라서 우두머리를 비판하면 잡혀가는 거고, 우두머리를 비판하면 잡혀가니까 독재 국가인 거지요.
제가 정치 얘기를 하면서 심성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윤석열을 비판한다고 해서 감옥으로 끌려가진 않습니다. 그런데 권력을 쥔 자들이 자신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이요, 힘으로 비판하는 자들을 억압하려 합니다.
이것은 정치의 문제이자 심성의 문제인 겁니다.
민주주의 시스템을 이용해 높은 지위를 얻었으나 정작 자신들은 왕이나 군주처럼 되고 싶어 하는 자들입니다. 엇박자지요.
https://moneys.mt.co.kr/news/mwView.php?no=2022100615402329550
‘윤석열차’와 관련해서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이렇게 얘기 했다죠.
이날 한 장관은 국감장에서 윤석열차 풍자만화 논란과 관련해 "표현의 자유는 넓게 보장돼야 하지만 혐오·증오 정서가 퍼지는 것은 반대한다"며 "제가 심사위원이었으면 상을 줘 응원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전했다.
정치인이나 행정가가 받을 수도 있는 비판을 ‘혐오와 증오’라고 표현한 겁니다.
게다가 상을 주지는 않았을 거라니…지가 상을 주거나 말거나 상관은 없지만…참 졸렬하네요
그 대통령의 수준에 아주 잘 맞는 그 법무부 장관입니다. 끼리끼리지요.
졸렬하다
옹졸하고 보잘것없다
장 레옹 제롬이 그린 그림으로, 로마인들이 노예를 사고파는 장면입니다. 이 그림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나요?
1. 합법적인 상거래를 하고 있는 로마인들에 대한 혐오와 증오
2.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 있지? 이 새끼들 제 정신이야!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아내 이명희가 다른 사람에게 욕을 하고 폭력을 행사한다는 보도가 있었지요.
이 영상을 보면 진짜 열이 뻗치고 마구마구 욕이 튀어나옵니다.
아무리 한쪽은 돈을 주고 일을 시키고, 다른 쪽은 돈을 받고 일을 하는 쪽이라고 하지만 이게 어디 시민-시민의 관계입니까.
그렇다고 이명희가 왕이나 군주는 아니니,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들의 관계가 군주-노예를 닮았다거나 그들의 심성이 군주-노예에 가깝다는 겁니다.
꼭 대통령이나 정치인만 그런 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군주-노예의 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족이나 종교 집단에서 쉽게 볼 수 있지요.
우두머리만 그런 게 아니라 구성원들조차 그럴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인간을 대하는 관점이 군주-노예의 틀에 고정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 니가 힘이 있으면 니가 군주처럼 되고 내가 노예처럼 되는 겁니다. 반대로 내가 힘이 있으면 내가 군주처럼 되고 니가 노예처럼 되는 거지요.
그런 관계가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동등이나 평등은 낯설고 이상하게 보입니다.
조인성이 나왔던 영화 <비열한 거리>가 표현했던 조폭들의 세계가 그렇지 않습니까.
학교나 동호회에 가도 비슷합니다. 잘 모르던 사람이 서로의 나이를 확인하고 나서 한쪽은 곧바로 형님 하면서 굽실거리고 다른 쪽은 어깨를 펴고 그래그래 하지요.
한쪽은 잘 모시겠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내가 잘 챙겨주겠다고 합니다.
그들이 군주와 노예는 아닙니다. 그런데 군주-노예 관계에서나 있을법한 심성과 관계를 가진 것입니다.
정치 행태는 정치인의 심리 상태를 반영합니다.
시민-시민 관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다른 시민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진 정치인은 그러지 말라고 해도 말과 행동에서 그런 심리 상태가 드러날 겁니다.
그렇지 않고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정치인이 되고 행정가가 되었으나 여전히 군주-노예의 심리 상태를 가진 이들은 그러지 말라고 해도 말과 행동에서 그런 심리 상태가 드러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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