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사회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가 필요합니다.
국가나 정치의 주인이 되어야 할 것이고, 경제나 기업의 주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노예의 의식에 벗어나 주인의 의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73392.html
오랫동안 학대에 시달리던 사람은 자신이 학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노예 생활이 오래 되면 자신이 노예인지도 모를 때가 있습니다.
늘 그래 왔기 때문에 그냥 그게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힘들다 괴롭다 아프다 같은 것은 느끼지만 내가 노예이고 학대 받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지 못하는 겁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거나 바꿔야 한다는 것 또한 생각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노예로 살다보면 노예로서의 생각에 갇히기 쉽습니다.
게다가 노예이면서 마치 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주인이 노예를 대하는 그런 마음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있습니다.
쉬운 예가, 자신도 고된 노동에 시달리면서 다른 노동자가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을 하고 시위를 하는 것에 대해 비난하고 욕을 하는 것입니다.
주인은 노예 걱정을 하지 않고 제 이익만 생각하는데, 정작 노예는 다른 노예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을 걱정하는 꼴입니다.
아빠가 틈만 나면 아이를 두들겨 패고 욕을 한다고 하지요. 그래서 아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냐고, 그만 하라고 따졌다고 하지요. 그때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면 어떨까요
아니 지금 니가 어디서 아버지한테 대드는 거야. 아버지가 그럴 수도 있지. 어디서 버릇 없이. 당장 아버지한테 잘못했다고 사과 안해!
아빠가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에게도 폭력을 행사하고,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종 부리듯 하고 있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노예가 노예의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노예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주인한테 아무리 잘 보이고, 주인이 자기를 잘 대우해 준다고 해도 노예는 노예입니다.
내가 맨날 부자가 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꿈을 꾼다고 해서 노예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꿈에서 깬 다음날 아침이면 또 노예의 생활을 반복할 뿐입니다.
늘 그렇게 살아왔다고 해서 당연한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그랬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이 노예임을 알았으면, 노예에서 벗어날 궁리를 해야겠지요.
노예에서 벗어났으면 이제는 주인이 되려고 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그 주인은 과거처럼 노예를 부리는 주인이 아닙니다.
내가 살아가는 과정,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사회의 운영에 직접 참여하고 토론하고 결정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주인입니다.
노예의 주인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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