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자매
<세자매>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아~우리 도덕적으로 살자’할 때도 좋았고, 이번에도 배우 김선영의 연기가 참 좋더라구요.
이 영화에서 보면 폭력적인 남편과 아빠를 둔 엄마와 세자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가족 안에서 남편/아빠의 성질이 그렇게 더러울 때 벌어지는 일 가운데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든 그 놈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또 욕을 하고 밥상을 뒤엎고 때리면 안 되니까요.
처음에는 일부러 그렇게 해서라도 그 놈의 성질을 가라앉히려고 했는지 몰라도, 나중에는 그게 아주 그냥 자연스레(?) 그렇게 됩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 놈이 기분 좋아할 말을 하고, 그 놈이 기분 나빠할 말을 안하게 되지요. 이것저것 따져 생각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됩니다.
그렇게 해야 그나마 가진 아주 작은 것이라도 계속 유지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이 년 저 년 욕을 먹지 않을 수 있고 와장창창 집안 살림 때려 부수는 꼴을 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살고 싶으니까 저도 모르게 그리 되는 겁니다.
2. 이란은 적
윤석열이 이란을 UAE의 적이라고 해서 난리가 났지요. 그 놈이야 원래 술 먹는 것 말고 아는 게 없고, 언제나 취한듯 아무말이나 지껄이는 놈이라서 그렇다 치지요.
그런데 갑자기 윤석열의 말을 옹호하고 나서는 인간들은 왜 그럴까요?
첫째, UAE가 어디에 있는 뭐하는 나라인지나 알았을까 싶어요. United Arab Emirates인지 United America Europe인이 알았을까요
둘째, 게다가 UAE와 이란의 관계가 어떤 건지는 알았을까요? 혹시 USA와 이란의 관계를 생각한 건 아닐까요 ^^
평소에는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으면서 지금 이렇게 나서서 떠드는 이유는 무얼까요
A)그나마 내가 가지고 있는 지위와 권력을 위해서
B)내가 속해 있다고 생각하는 집단이나 패거리의 지위와 권력을 위해서
C)나보다 더 높은 지위와 더 많은 권력을 지닌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76840.html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닐 수 있어요.
검토나 평가의 과정 없이 자연스레, 무의식적으로, 부지불식간에 그럴 수 있는 거지요.
자기도 자기가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왜 그렇게 판단을 했는지 몰라요.
UAE-이란 관계도, 나 자신의 내면에 대한 검토나 평가없이 그냥 갑자기,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그런 생각이 떠오르고, 그런 판단을 했을 수 있으니까요.
1)기본적으로 타고난 심성이 그럴 수 있어요.
그러니 오랫동안 그렇게 살고 있겠지요. 한 인간의 삶의 큰 방향이 그쪽으로 난 거에요.
반대로 아무리 돈도 좋고 권력도 좋지만, 기본적인 성향이 맞지 않으면 그런 삶을 유지하기 힘들어요.
처음에는 한 두번 그리 하다가도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어서 때려칠 거에요.
2)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와서 그렇게 사는 것이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겨질 수도 있어요.
<세자매>의 엄마와 세자매가 오랫동안 그렇게 살면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듯이 말이에요.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아빠를 둔 아이들은 커서도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하게 행동할 수 있지요.
어떻게든 빨리 권력자의 기분을 좋게 만드려고 하는 거에요.
3)지금 상황 때문일 수도 있어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가 무의식적으로 판단되는 거지요.
그러니 의식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너무다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당연하다 싶은 거에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밖으로 뿜여져나온 용암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땅 속에서 용담은 이미 끓고 있었고 솟구칠 에너지를 모으고 있었구요.
자전거를 타고 가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만나면 의식적으로 고려하고 평가하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레 브레이크를 잡아당기는 것과 비슷하지 싶어요.
어쩌면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 의식할 수 있는 것보다 의식할 수 없는 것이 더 중요하고 결정적일지도 몰라요.
3. 다시 세자매
<세자매>에서 아이들이 아빠의 폭력을 피해 동네 수퍼로 달려갑니다. 사람들에게 신고 좀 해주면 안되냐고 하지요. 그러니까 동네 사람이 되레 아이들을 욕합니다.
뭐? 신고? 지금 니가 너거 아빠를 전과자로 만들려고 그라나!
아빠의 폭력과 억압, 엄마의 무기력이나 외면을 겪고 자라온 아이들에게 세상은, 세상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요.
단지 나이가 어려서만이 아니라 힘이 없고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고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두들겨 맞는 인간들에게 말입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어떤 지도가 그려졌을까요.
https://www.tiktok.com/@theskystorys/video/7091340813698911490
큰 딸 희숙(김선영)이 언제나 헤헤 웃으며, 자기를 이용하기만 하는 사람에게도 별 말을 하지 못하는 데도 이유가 있겠지요.
둘째 딸 미연(문소리)이 괜찮지 않으면서도 괜찮은 척 살려고 이빨을 꽊깨무는 것도 이유가 있을 거구요.
막내 딸 미옥(장윤주)이 아들을 때리는 남편을 보고 미친듯이 달려들어 싸우는 것도 이유가 있을 거구요.
현재 내 모습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나를 둘러싼 수많은 관계들의 영향을 받았을 거에요.
과거에 빵을 먹고 살았냐, 밥을 먹고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 그 속에서 내가 어떤 위치나 처지에 있었느냐가 중요하겠지요.
당연히도 우리가 가진 생각이나 판단은 우리 자신의 것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할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지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많이 결정되지요.
편안하고 따뜻하고 안심되는 관계 속에서는 그와 연관된 모습이 나올 거에요.
지위나 권력 관계 속에서, 내가 짓눌리느냐 딛고 올라서느냐가 중요해지면 또 그와 연관된 모습이 나올 거구요.
관계나 환경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사는 인간은 없어요.
그런만큼 내가 지금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어떤 관계나 환경의 영향 때문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도 있을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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