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의 마음에 든 것은 급진주의 자체였다. 국가는 쇠퇴하여 사라지고 계급 없는 사회가 나타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희망적인 예언들은 더이상 급진적이지 않았으며, 더이상 메시아적이지도 않았다…나치와 지적인 공산주의 동조자들은 러시아에서 “혁명은 하나의 종교이고 철학이지, 단순히 삶의 사회적, 정치적 측면과 관련된 갈등이 아니기” 때문에 똑같이 소비에트 러시아에 끌렸던 것이다.
계급이 대중으로 변하고, 정치 제도의 권위와 특권이 와해되면서 서구 국가들 내에 러시아의 조건과 유사한 조건들이 생겨났다. 그래서 유럽의 혁명가들은 사회, 정치 조건의 변화가 아니라 기존의 모든 신조, 가치 및 제도의 철저한 파괴를 고대하는, 전형적인 러시아적인 혁명의 광신주의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 64
-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 한길사
그리고 또 자네는, 자네가 사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상이 자네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연기할 수 없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지"
"뭐라고? 사상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고?" - 도스또옙스끼, <악령> 가운데
사회가 온통 문제로 가득차 있어서 이를 급진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히 그럴 수 있지요.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은 그 급진적인 태도가 어느 맥락에 놓여 있고, 무엇을 위한 것이냐에 달려 있을 겁니다.
나치 독일이나 소련 공산당의 활동은 급진적이었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인간의 인간의 자유와 연대에 기초한 것도
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사회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었지요.
타인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며 존중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었구요.
무언가를 끊임없이 때려부수고 파괴했지만
사랑과 우정, 연대와 연민의 마음에 기초를 둔 새로운 관계나 사회를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한번에 다 때려부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생각에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그런 급격한 변화와 급격한 변화를 위한 행동에 매료되는 사람도 있구요.
000을 위해서 급진적이거나 과격해지는 것이 아니라
급진적이거나 과격한 것을 좋아해서 000을 주장할 수도 있는 거지요.
그리고 그 방향이 잘못되면 자신은 물론이고 수많은 사람을 큰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거구요.
땅을 갈아엎는다고 해서 저절로 벼나 고추가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땅을 갈아엎고 거기에 모내기를 하거나 씨앗을 심어야 하고
벼나 고추가 잘 자라도록 풀도 뽑고 거름도 주고 해야겠지요
빨리 자라라고 어린 벼나 고추를 잡아당길 수도 없을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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