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전쟁이었다. 그러면서도 늑대굴이라는 야릇한 세계에 틀어박혀서 현실을 점점 등졌다. 전방하고도 후방하고도 담을 쌓았다. 고립은 인간미를 송두리째 앗아갔다. 오랜 세월 옆에서 시중을 든 사람에게도 히틀러는 우애는 고사하고 정다운 정을 베푼 적이 없었다. 히틀러가 진심으로 좋아한 것은 어린 셰퍼드뿐이었다. 지난 가을만 하더라도 히틀러는 인간은 웃기는 ‘우주 박테리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인간의 삶과 아픔은 알 바 아니었다. 히틀러는 공습이 시작된 뒤 야전병원과 폭력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을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학살도 보지 않았고 강제수용소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고 포로들이 굶어 죽는 수용소도 보지 않았다. 히틀러에게 적은 그저 짓뭉개야 할 해충일 뿐이었다. 인간에 대한 히틀러의 깊은 경멸감 앞에서는 동족도 비켜 갈 수가 없었다.
…
히틀러에게 수십만명의 사망자와 불구자는 그저 추상이었다. 민족의 생존을 위한 ‘영웅적 투쟁’에서 불가피하게 치러야 하는 희생이었다. - 611
- 이언 커쇼, <히틀러 2>, 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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