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련 자료

아직은 살아 있어요

순돌이 아빠^.^ 2024. 3. 31. 21:41

작은책 2024년 4월호 https://www.sbook.co.kr/notice?tpf=board/view&board_code=1&code=4190

아직은 살아 있어요
미니(평화운동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지난 2023년 10월7일부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대규모 군사공격을 벌였고, 20 24년 3월 현재까지 3만명 넘게 사망했습니다. 게다가 8천명 이상이 아직도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 있다고 합니다. 뉴스 내용만으로도 놀라운데, 제가 만났던 사람들이 그곳에 살고 있기에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팔레스타인에 두 번 다녀왔습니다. 그때 만났던 친구들과 메신저나 이메일로 연락을 하고 있구요. 하루는 친구 N과 메신저로 대화를 주고 받을 때였습니다. 계속 전쟁 얘기만 할 수 없어 잠깐이라도 다른 얘길 하고 싶었고, 멀리 있는 저와 대화를 하며 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굿나잇!’이라고 말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N이 대답했어요.

사실 요즘 잠을 잘 못자요. 이스라엘이 계속 공격을 하고 있고, 지금도 우리집 저 옆에서 폭발 소리가 들려요. 지붕 위로 비행기가 시끄럽게 날아다니구요.

N의 대답에 뭐라 말을 못하겠더라구요.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저에게 N은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사진과 영상을 보내줬어요. 한 영상은 동네 사람이 밤중에 몰래 숨어서 촬영한 것이더라구요. 이스라엘 군인들이 어느 집 앞으로 가더니 부스럭 부스럭 뭔가를 합니다. 그러곤 다같이 한참 뒤로 물러났고, 곧 ‘펑!’하는 소리와 함께 골목길에 연기가 가득했습니다. 누군가의 집에 폭탄을 설치해서 폭파한 것입니다. 다른 영상에서는 엄청 큰 불도저가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주택을 포함해 온갖 것들을 다 때려부쉈습니다. 멀쩡한 도로까지 뒤집어 엎고 있더라구요.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걸까요. 팔레스타인인들이 여기 살고 있다는 흔적조차 지우고 싶은 걸까요.

“얄라 얄라(‘빨리 빨리’를 뜻하는 아랍어)”를 외치며 들것에 실린 환자를 긴급히 응급실로 옮기는 장면도 있었고, 화상으로 고통 받는 사람의 모습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영상을 보고 있는 것조차 너무 힘들더라구요. 영상 속 장면이 충격적이어서 힘들고, 제가 아는 누군가가 이 일을 겪고 있다는 것 때문에 또 힘들었습니다. 

그동안 N은 자신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말을 한 적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이번엔 영상까지  보낸 거에요. 세상 아무도 모른채 우리만 이렇게 고통 받다 죽어가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을 겁니다. 누군가에게 우리의 이야기가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간절했을 거구요.

아직은 살아 있어요

또다른 팔레스타인 친구 K에게 이메일로 ‘가족들이랑 모두 잘 있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안부를 묻는 것정도야 가벼운 일이지만, 요즘은 안부를 물을 때조차 심장이 콩닥거리는 건 어쩔 수 없어요. K에게서 답이 왔습니다.

우린 모두 잘 있어요…아직은 살아 있어요.

K는 제가 처음 팔레스타인에 갔을 때 저를 위해 많은 것을 해줬던 친구에요. 먹여주고 재워준 것은 물론이고 제가 팔레스타인을 잘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여기저기 안내도 해주고, 여러 사람과 인연을 맺게 해주었어요. 체격은 저보다 크고 호탕한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언제나 잘 있다고 대답했지 한번도 다른 말을 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아직은 살아 있어요’라고 하네요. 순간, 마음이 울컥하고 심장이 내려앉았습니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에요’라고 할지, 아니면 ‘잘 있다니 저도 안심이 되네요’라고 해야 할지…저는 또 아무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농담이라도 그런 말 하지 마세요’라는 말조차 나오지 않더라구요.

뉴스 화면을 보면 K와 함께 길을 걸으며 수다를 떨던 동네 풍경이 나오곤 해요. 물론 저는 지금 한국에 있고 K는 여전히 그 동네에 살고 있지요. 자주 가던 커피집이 있는 그 거리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손을 등뒤로 묶고 줄줄이 엮어 끌고 가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모두 얼굴을 가리고 머리를 숙이고 있어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혹시 거기에 K도 있는 건 아닐까요. 아니면 이제 제법 자랐을 그 집 아이가 그 안에 있으면 어쩌죠.

팔레스타인에는 서안 지구라는 곳도 있고, 가자 지구라는 곳도 있어요. 이번에 가장 상황이 심각한 곳은 가자 지구입니다. 예전에 저는 가자 지구에 간 적이 있습니다. 외국인인 제가 그냥 단순 방문을 하는데도 이스라엘의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고야 허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다녀온 이후로는 이스라엘의 봉쇄가 더 심해져서 어지간한 경우 아니면 가자 사람이 밖으로 나올 수도 없고,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쉽게 가자 지구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230만명가량이 살고 있는 가자 지구 주변에 콘크리트와 철조망으로 높은 장벽을 쌓았습니다. 공항이 있었지만 그것도 때려부순지 오래구요. 겨우 트인 지중해 바다 쪽으로는 군함을 띄워 지키고 있고, 어민이 물고기를 잡을 때 총을 쏘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하늘·땅·바다가 모두 가로막힌 감옥과 같은 곳입니다. 식량이며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 쪽으로 땅굴을 파면, 그 땅굴마저 없애겠다고 폭탄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이처럼 2023년 10월7일 이전에도 가자 지구는 정상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쓰기 어려운 글 

제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그 사이에 가자 지구에서 새로운 뉴스가 전해집니다. 구호품을 실은 차량이 도착하자 수천명의 사람이 몰렸고, 이스라엘군이 총을 쏴대서 백명이상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멀리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갑자기 들이닥친 것이 아니라, 가까이서 사람이 몰려드는 걸 보고 있다가 공격을 한 겁니다. 어느 살아남은 팔레스타인인은 밀가루를 이용해 우리에게 덫을 놓은 거냐며 울분을 터뜨렸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해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작은책>에 글을 싣게 되었습니다. 친구 N이 저에게 그들이 겪고 있는 일을 전했듯이, 이번에는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거라도 해야 조금은 덜 미안할 것 같아서요. 한국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집회가 있다고 사진이라도 보내면 친구들이 무척 고마워합니다. K가 그랬어요. 한국인들이 보내는 연대의 마음 때문에 팔레스타인인들이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거라고.

세상에서 가장 쓰기 어려운 글은,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밖에 없다고 느끼며 쓰는 글인 것 같습니다. 오늘 제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