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련 자료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어요

순돌이 아빠^.^ 2024. 4. 29. 12:18

작은책 24년 5월호 https://www.sbook.co.kr/notice?tpf=board/view&board_code=1&code=4202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어요
미니(평화운동가)

전쟁과 서커스

이스라엘의 폭격이 한창이던 지난 2월23일, <팔레스타인 크로니클>이라는 웹사이트에서  ‘프리 가자 서커스 - 대량 학살 가운데 라파에 있는 난민 어린이들의 일상 찾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전쟁으로 난리가 난 상황에서 왠 서커스라는 생각이 들어 살짝 놀라기도 하고, 관련 내용이 궁금해졌습니다.  

1백만명 넘는 난민이 몰려 있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최남단 라파(Rafah)에서 ‘프리 가자 서커스(Free Gaza Circus)’라는 단체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서커스라고 해서 높은 곳에서 공중 그네를 도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큰 축제를 펼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가자를 둘러싸고 있는 장벽 앞 공터에 수십명의 어린이들이 모여 있고, 얼굴에 분장을 한 두어명의 단원이 공연을 합니다. 단원들이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재미난 말과 몸짓을 보여주면 어린이들은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고 크게 웃습니다.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기도 하고, 서로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기도 합니다. 전쟁과 폭격이 계속 되는 상황에서 어린이들이 웃으며 소리치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서커스는 기쁨입니다. 지금 가자가 처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사랑을 퍼뜨림으로써 부정적인 에너지를 없애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그동안 저는 팔레스타인이라는 말만 떠올려도 우울하거나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프리 가자 서커스’의 설립자 무함마드의 이 말은 제가 부정적인 감정에만 머물러 있지 않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불안과 혼란인 이 어린이들에게 희망과 사랑, 기쁨과 행복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자의 어린이들

가자 지구는 가로 약 10km, 세로 약 40km의 좁은 지역에 230만명가량의 인구가 몰려 있는 곳입니다. UNRWA(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 사업기구)에 따르면 2023년 10월부터 2024년 3월말까지 약 3만3천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3분의 1이 넘는 1만3천명가량이 어린이·청소년입니다. 2019∼2022년 전 세계 분쟁지역 어린이·청소년 사망자 약 1만2천명보다 많은 수치라고 합니다. 필립 라자리니 UNRWA 집행위원장은 ‘가자 지구의 전쟁은 어린이들에 대한 전쟁’이라고도 했습니다. 이 전쟁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군대가 전투를 벌이며 상대에게 항복을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팔레스타인 사람 모두에게 일방적으로 폭탄을 퍼붓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방어 능력이 약한 어린이들은 더더욱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3월17일 터키 언론 <TRT>가 유튜브에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다리를 잃은 팔레스타인 소녀가 오열하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습니다. 전쟁으로 가족까지 모두 잃은 11살의 라잔은 휠체어에 앉아 “신이시여 제발, 제 다리를 돌려주세요”라며 울었습니다. CNN에 따르면 하루 평균 10명 이상의 어린이가 폭격 등으로 한쪽 또는 양쪽 다리를 잃고 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해 가진 부정적 편견이 어린이의 희생을 더욱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언론 <더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에 따르면, 이스라엘 재무장관 스모트리히는 산부인과 병동에서 유대인과 아랍인 산모의 분리를 지지한다고 발언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이 일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물론 제 아내가 인종주의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20년 뒤에 자기 아이를 죽이고 싶어할지도 모르는 아이를 출산하는 (아랍)여자 옆에 눕기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스모트리히는 아랍계 어린이를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런 사고를 지닌 인물들이 이스라엘 정부를 주도하고 있으니, 어린이라고 해서 공격 대상에서 제외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군사 공격뿐만 아니라 봉쇄되어 있는 가자에 식량 반입조차 차단함으로써 굶주림 또한 어린이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뉴스와 영상이 가자 어린이들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먹을 게 없다보니 아이들은 점점 쇠약해지고 있으며, 음식을 구하기 위해 무료 배급소 앞에서 성인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합니다. 힘들게 구한 음식을 냄비에 담아가다 길에  쏟는 바람에 그 자리에 서서 엉엉 울기도 하고, 흙바닥에 흩뿌려진 밀가루를 발견하고는 허겁지겁 주머니에 밀어넣기도 합니다. 심지어 미국이 선전용으로 공중에서 떨어뜨리는 구호 식량을 잡으려다 되레 무거운 상자에 맞아 다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마음까지 살아남아야

어린이의 육체적 안전뿐만 아니라 심리적 건강도 중요합니다. <TRT>가 2월16일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는 난민촌 텐트 앞에서 한 어린이가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울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고 천둥이 치자, 이스라엘이 폭격하는 소리인 줄 알고 크게 놀랐다고 합니다.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겁니다.

심리적 외상은 무력한 이들의 고통이다. 외상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 피해자는 압도적인 세력에 의해 무기력해지고 만다. 그 세력이 자연에 의한 것일 때, 우리는 재해라고 말한다. 그 세력이 다른 인간에 의한 것일 때, 우리는 그것을 잔학 행위라고 말한다. - 주디스 허먼, <트라우마 - 가정 폭력에서 정치적 테러까지>

지금 어린이들을 위한 심리 치료 같은 건 상상도 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절망과 좌절에 깊이 빠지지 않도록 작게라도 서커스 공연을 하고, 함께 손을 잡고 춤을 추고 크게 소리칠 시간이 더욱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이슬람 명절인 라마단 기간동안 어른들은 어떻게든 사탕 하나라도 구해서 아이들에게 나눠주려고 합니다. 그걸 받고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그렇게 웃어줘서 고맙기도 합니다. 어린이들의 몸이 살아남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의 마음도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까지 살아남아야 진짜 살아남는 것이겠지요. 

가자 어린이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늘 나오는 얘기가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어요’ ‘폭격을 그만 하면 좋겠어요’입니다. 이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좋아하는 인형을 가지고 놀고 싶어요’라고 합니다. 그들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좋아하는 인형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그 평범한(?) 일상을 하루빨리 되찾기 바랍니다. 또한 가자의 푸른 하늘 아래 그들의 내일이 사라지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