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995
제가 좋아하는 중국 사상가는 공자와 맹자 그리고 묵자입니다.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저처럼 묵자의 사상에 조금 더 끌릴 거라 생각합니다.
춘추 중기 이래 전술상의 변화와 전쟁양상의 대규모화·지구전화(持久戰化)는 상승작용을 하면서 갈수록 심화되어 급기야는 전국 중기 이후 한 전투에서 수십 만의 병력이 동원되기도 했고 수년간 전쟁이 지속되는 일도 생겼다…B.C. 260년 진이 조(趙)에게 궤멸적 타격을 입힌 저 유명한 장평전(長平戰)에서는 15세 이상의 진민 모두가 참전하였고 백기가 조의 항졸(降卒) 40만을 갱살(坑殺)하는 대참극을 벌이기도 했다. - 서울대학교동양사학연구실, 「강좌 중국사 1」
묵자, 그리고 그와 관련된 집단인 묵가(墨家)가 활동했던 시대의 중국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묵자와 묵가의 사상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전쟁입니다. 이들은 전쟁을 일으키려는 국가가 있으면 그 국가를 찾아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적극 설득했습니다. 그래도 전쟁의 발발을 막을 수 없을 때는 침략을 당하는 편에서 침략국에 맞서 싸웠다고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칠 뿐만 아니라, 농업이 중심인 사회에서 농사 짓던 백성들까지 동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농사를 열심히 지어도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대에 많은 백성과 물자를 징발하는 것은 백성들의 삶을 더욱 궁핍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묵자와 묵가가 그토록 전쟁에 반대했던 이유입니다.
이스라엘의 전쟁
사람 1명을 죽이면 불의하다는 지탄을 받고, 반드시 그에 따른 사죄(死罪)를 짊어진다. 이를 확장하면 10명을 죽일 경우 10배의 불의가 되고, 10명의 살인에 따른 사죄를 짊어지게 된다. 100명을 죽일 경우 100배의 불의가 되고, 100명의 살인에 따른 사죄를 짊어지게 된다. 이 경우 천하의 군자들 모두 이를 알면 크게 비난하며 ‘불의’라고 말한다. 지금 남의 나라를 공격하는 불의를 저지르면서 비난을 할 줄도 모른다. 실로 그것이 불의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이다. - 「묵자」, 비공(非攻) 편
사람을 한 명만 죽여도 우리는 그를 살인자라고 부르며, 반드시 체포해서 처벌해야 한다고 합니다. 전두환처럼 국가와 군대를 이용해 수백 명의 시민을 살해한 이를 우리는 학살자라 부르며 더 강력한 처벌을 요구합니다.
그러면 3만 명 이상을 살해한 이스라엘은 뭐라고 부르고, 이스라엘 군대의 우두머리인 총리 네타냐후에게는 어떤 처벌이 마땅한 것일까요.
전 세계가 오늘밤 러시아 군의 부당하고 근거 없는 공격으로 고통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재앙적인 인명 손실과 고통을 유발할 계획적인 전쟁을 선택했다…미국과 동맹 및 파트너들은 단결되고 단호한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 ‘러시아의 부당하고 근거 없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한 바이든 대통령 성명’, 2022년 2월23일, 주한 미국대사관 홈페이지
미국은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매일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국민의 편에 서 있습니다. 저는 네타냐후 총리, 헤르초크 대통령, 새롭게 구성된 비상 내각 각료들과의 만남에서 이스라엘이 국가와 국민을 방어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그러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미국이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자세히 논의했습니다. -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기자회견’, 이스라엘 텔아비브, 2023년 10월12일, 주한 미국대사관 홈페이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미국 대통령 바이든은 성명을 발표하여 러시아와 푸틴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영국·프랑스·독일 등과 함께 러시아에 대한 인적·물적 제재에 들어갔습니다. 이들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침략당한 우크라이나에게 많은 양의 무기와 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스라엘을 대하는 태도는 러시아를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인종청소가 자행되고 있는 지금, 그들은 네타냐후에게 전쟁 중단을 요구하기는커녕 여전히 이스라엘에게 많은 무기와 돈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전쟁은 불의(不義)라고 비난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전쟁에 대해서는 항의나 제재는커녕 불의라며 비난할 마음조차 없는 겁니다.
천하에 남이란 없다
자신이 속한 문화, 국가, 종교 집단이 다른 집단에 비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믿음을 자민족중심주의(ethnocentrism)라고 한다...사람들이 ‘우리’를 만들어내자마자 그 외의 사람들은 다 ‘우리가 아니다’가 되어 버렸다…이러한 내집단 편향(in-group bias)은 우리가 내집단의 일원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특별한 대우를 해주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 Aronson 외, 「사회심리학」
1914~1918년 1차 세계대전으로 독일의 일반 시민들도 고통을 받았습니다. 바로 그 독일인들이, 1939년에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1941년에는 소련을 침공하는 히틀러를 지지했습니다. 수많은 소련인들이 희생을 당한 뒤에야 소련(러시아)은 독일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2022년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합니다. 전쟁 때문에 그토록 큰 희생을 치렀음에도, 많은 러시아인들이 전쟁을 일으킨 푸틴을 지지한다고 합니다.
한편 19~20세기, 많은 유대인들이 러시아와 유럽 각지에서 계속되는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를 합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점점 유대인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고, 독일에서는 홀로코스트가 벌어지자 갈 곳 없는 유대인들이 대거 팔레스타인으로 옮겨갑니다. 이들은 현지 아랍인들을 내쫓고 1948년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76년이 지난 지금도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인종청소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남의 집안을 자신의 집안을 보듯이 하면 누가 남의 집안을 어지럽히겠는가? 남의 나라를 자신의 나라를 보듯이 하면 누가 남의 나라를 공격하겠는가?…만일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서로 사랑하도록 만들면 나라와 나라는 서로 공격하는 일이 없을 것이고, 집안과 집안은 서로 어지럽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 「묵자」, 겸애(兼愛) 편
묵자의 말처럼 남의 나라를 자신의 나라 보듯이 한다면 러시아인들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일은 없겠지요. 다른 민족을 자기 민족인 듯 여긴다면 유대인이 아랍인을 팔레스타인 땅에서 몰아내는 일도 없을 겁니다. 유대인들이 겪은 홀로코스트가 인류에 대한 끔찍한 범죄이고 다시 일어나서는 안될 잔혹한 행위라고 생각한다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해서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되겠지요.
묵자는 세상 많은 문제의 원인을 사랑에서 찾습니다. 묵자가 겸애(兼愛)를 주장하는데, 이때의 겸(兼) 자는 ‘아우르다’ ‘포용하다’의 뜻을 담고 있다 합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공감과 연대,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는 인류애를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이 겸애는 공자의 인을 극단화시킨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신분과 계급에 따라 차별적으로 사랑하고 혈연의 친소도에 따라 사랑의 정도에 차이를 두는 그런 사랑이 아니다. 이 겸애 안에서는 가깝거나 멀거나 모든 이들이 구별없이 혼재한다. 차별을 두는 사랑, 별애(別愛)는 덕이 아니며 정반대로 그것은 세상의 모든 해악의 근원이다.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는 사랑만이 세상의 혼란을 구할 수가 있다. - 앙리 마스페로, 「고대 중국」
겸애를 통해 사랑이란 것은 한 개인이 지닌 마음의 상태를 넘어, 다수의 인간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가는 어떤 관계나 사회의 모습이 됩니다. 그렇게 되어야 묵자가 말하는 천하무인(天下無人), 즉 천하에 남이란 없는 세상도 이루어질 겁니다.
사랑의 능력
홍콩의 유덕화와 한국의 안성기가 출연했던 <묵공>이란 영화가 있는데, 대략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조나라의 항장군(안성기)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인구 4천 명의 양성을 공격하러 옵니다. 양성의 왕은 묵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묵가는 혁리(유덕화)를 파견해 조나라의 침공을 막으려 합니다.
「묵자」의 상당 부분이 어떻게 전투를 벌일지에 관한 것입니다. 비성문(備城門) 편이나 호령(號令) 편 등에는 적군으로부터 성을 지키는 방법, 무기를 만들고 다루는 방법, 군대 운영 방안까지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영화 <묵공> 속 혁리의 모습을 통해 묵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반전 운동을 하는 사람이 침략군에 맞서 전투를 벌이는 겁니다. 묵가는 전쟁이라는 큰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환란에 처한 사람들, 즉 피해자들을 지키려고 나섰던 겁니다.
매일 같이 전쟁이 끊이지 않는 시대에 귀족이나 관료의 입장으로 인간의 도리, 정치인의 자세 등을 논하는 데 그친 사상가 집단도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묵가는 이론이나 주장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 세계에 직접 뛰어들어 자신의 겸애 사상을 실천에 옮긴 셈입니다.
2023년 10월 이후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인의 편에서 집회를 열고 이스라엘에게 전쟁을 중단하라 외치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영국 정부의 입장과는 달리 보통의 시민들은 정치인들을 압박하고 언론에 글을 쓰며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중단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보상이나 대가도 없이 이 많은 사람들이 행동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내어놓으며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한 모금에 참여하면서도, 더 많이 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위 과정에서 체포를 당하면서도 행동을 멈추지 않는 그들의 마음 속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1차 세계대전이 지나고 2차 세계대전 발발을 몇 해 앞둔 1932년,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가 전쟁에 관한 편지를 주고 받습니다. 편지 내용은 <열린책들>에서 발행한 프로이트 전집 가운데 ‘왜 전쟁인가?’라는 꼭지에 담겨 있습니다.
인류를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존재하는가…인간의 증오와 파괴를 열망하는 이상심리에 저항할 수 있도록 인간의 정신 발달을 통제하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문입니다. -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의 편지에 대해 프로이트가 답을 합니다
인간이 전쟁에 기꺼이 호응하는 것이 파괴 본능의 결과라면, 가장 두드러진 방책은 파괴 본능의 적수인 에로스로 하여금 거기에 저항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인간들 사이에 감정적 유대가 생겨나도록 조장하는 것은 전쟁에 불리하게 작용할 게 분명합니다…종교도 역시 똑같은 말-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정신분석은 이런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 프로이트
2천 년이 넘는 긴 시간을 사이에 두고 묵자와 프로이트는 전쟁과 사랑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전쟁이 인간에게 주는 아픔과 고통은 매한가지일 테고, 그 전쟁을 막기 위한 방법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오늘도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해 팻말을 들고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 서 있는 저 사람들이 어쩌면 묵자와 프로이트가 말한 사랑을 품고 있는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님에도 내게 일어난 일인 것처럼 슬퍼하고, 내 나라에서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마치 내 나라에서 일어난 것처럼 앞장서고 있는 겁니다.
전쟁이라는 인류의 비극 앞에서, 우리는 이 세상에 사랑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것 또한 확인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사랑의 능력이 사회적인 힘이 되고, 그 힘이 세상을 조금씩 바꿀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 함께.
희망이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에 난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루쉰,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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