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06년·09년 팔레스타인

황당했던 에레즈 체크 포인트

순돌이 아빠^.^ 2009. 10. 10. 20:58
점령군과 노동자의 관계

가자지구의 노동자들이 어떻게 체크 포인트를 통과해서 이스라엘 지역으로 일을 하러 가는지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 에레즈 체크 포인트에 6시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런데 외국인이 통과할 수 있는 시간은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였습니다. 그러니깐 체크 포인트를 통과하기 위해 밤 늦게부터 이른 새벽까지 에레즈를 지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진1 이른 새벽 일터로 가기 위해 팔레스타인 측 검문소 지나는 노동자들

 
사진2 팔레스타인 군인들이 노동자들의 신분증을 검사하고 있는 모습


그래서 할 수 없이 7시까지 팔레스타인 쪽 검문소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쪽 검문소의 풍경은 그야말로 동네 한마당에 사람들이 모여서 놀고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날씨가 쌀쌀해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는 차도 한잔씩 하고, 불에다 빵을 데워 먹으며 즐겁게 얘기도 했습니다. 팔레스타인 군인이 검문소를 지나는 노동자들 신분증을 확인하기는 했지만 거의 형식적으로 신분증을 가지고 있으냐 없느냐를 검사하는 정도였습니다.

사진 촬영도 마찬가지여서 군인들은 물론이고 노동자들도 마치 동네 아저씨들처럼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 주면서 찍으라고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서 사진을 찍자고도 했습니다. 

 
사진3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를 마음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팔레스타인 노동자들. 빨간 모자에 히브리어 글자가 보입니다.


그리고 7시가 되어서 우리는 팔레스타인 출입국 사무소로 갔습니다. 거기로 가니깐 여권을 달라고 하고 5~10분쯤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잠깐 뒤에 여권을 돌려받으면서 우리는 뜻밖이지만 뜻밖이지 않은 말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통과해도 좋다고 했다는 겁니다. 이집트에서 가자로 들어오는 라파 국경에서도 그랬고, 여기 에레즈 체크 포인트에서도 사람이 통과하고 말고는 전적으로 이스라엘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여권을 들고 우리가 검문소로 가니 군인이 장부에다 우리의 이름과 여권 번호 등을 적었습니다. 이스라엘 쪽 검문소가 컴퓨터를 가지고 하나하나 확인하던 것에 비하면 마치 동네 이장이 나와서 호구 조사 하는 분위기입니다. 이름을 적고 나서 우리는 길고 긴 터널로 들어갔습니다. 

 
사진4 팔레스타인 쪽 터널이 끝나고 이스라엘 쪽 터널이 시작되는 곳


100m쯤 되는 팔레스타인 쪽 터널은 그야말로 허름한 슬레이트 지붕에다 밖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입니다. 여기저기 쓰레기도 널려 있구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이스라엘 쪽 터널은 양 옆은 장벽 모양으로 되어 있고 하늘은 지붕으로 막혀 있는데다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서 촬영이 불가능한 지역입니다. 거기서 촬영을 했다가는 카메라를 부수는 일까지 벌어진다고 합니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외부에 알리지 않기 위한 것이죠.

이스라엘 쪽 터널 안으로 들어가면 이스라엘 군인들이 카메라로 보면서 자동으로 열고 닫는 커다란 철문이 하나 나옵니다. 그 다음에는 회전문이 나오고, 그걸 지나면 사람들을 길게 늘여 세워 놓기 위해 쇠로 만든 통로 몇 개가 나옵니다. 이 통로를 지나면 검색대에 짐검사를 하기 위해 짐들을 모두 올려놓아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참을 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은 그야말로 엽기였습니다.

 
사진5 X-RAY 촬영 깡통 속의 미니


사진 촬영을 할 수 없어서 설명을 하기 위해 이상하게(?) 생긴 그림 하나 그렸습니다. 둥글게 생긴 커다란 깡통 같은 곳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앞 뒤 문이 닫힙니다. 그리고 바닥에는 발바닥 모양이 있어 거기에 서라고 하고, 손을 하늘로 들어 올리라고 합니다. 그러면 양 옆에 옆에 있던 기다란 막대기 두개가 둥글게 회전을 하면서 온 몸을 촬영합니다. 깡통 밖에는 분명히 병원 X-RAY 촬영실 같은데 가면 붙어 있는 노란색 경고문이 붙어 있구요.

사람들은 외국인인 저희들에게까지 그렇게 했냐고 물었지만 문제는 저희가 아니고 노동자들입니다. 저희야 한번 하고 나면 언제 다시 이 짓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노동자들은 매일 같이 전신 X-RAY 촬영을 해야 하는 꼴입니다. 그래서 건강에 좋지 않다고 팔레스타인인들이 항의를 하고 촬영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지만 이스라엘은 막무가내입니다.

엽기는 그 깡통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기다란 통로를 지나고 짐 검색대와 X-RAY 깡통을 통과할 때까지 이스라엘 군인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맞은편 위쪽에서 아래를 내려보며 마이크를 가지고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고 큰 소리나 치고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서 노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순간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설마 마이크를 가지고 노래를 하랴 했던 거죠. 그런데 조금 있다보니 또 뭐라 뭐라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큰 소리를 치더니 곧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남들에겐 온갖 모욕과 불편함과 유해를 끼치면서 자신들은 노래를 부르다니 참 어처구이 없었습니다. 점령지 저임금 노동자들을 도대체 어떤 존재로 생각하지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온갖 더러운 기분을 안고 X-RAY 깡통을 지난 뒤 또 회전문과 쇠로 만든 통로를 따라 가서 이스라엘 군인에게 여권을 내어 보이니 다른 곳으로 또 가라고 합니다. 이번에도 검색대가 설치되어 있는 작은 건물입니다. 검색대 앞으로 가니 가방 안에서 노트북을 꺼내서 가방과 노트북을 따로 따로 검색대에 올리라고 했습니다.

짐이 검색대를 통과한 뒤에 한 군인이 30cm쯤 되는 막대기를 들고 오더니 노트북 여기저기에 막대기를 대어 봅니다. 키보드, CD-ROM 등 구석구석을 대면서 무언가를 찾는 듯 했습니다. 결국 아무 것도 찾을 거는 없었고, 제가 무엇을 하는 것이냐 물었지만 대답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노트북 안에 담긴 내용이 문제가 되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 껍데기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해 본 순간이었습니다.

 
사진6 팔레스타인 검문소에서 바라본 가자의 아침


이렇게 해서 우리는 에레즈 체크 포인트를 통과한 뒤에 라말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있지 않아 이스라엘이 에레즈 체크 포인트를 닫아걸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1월25일 총선의 결과로 팔레스타인 의회가 첫 열리는 날에 말입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하마스를 다수당으로 만들었으니 ‘너희들도 고생 좀 해 봐라’라는 거죠.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샤띠 난민촌에서 만났던 노동자 아흐마드씨가 떠올랐습니다. 고된 노동과 체크 포인트에서 온갖 모욕을 겪으면서도 일을 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오갔지만 언제까지일지 모르게 또 일을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싸게 부려먹을 때는 부려먹고, 마음 안 내키면 일을 못하게 만드는 것이 점령군과 노동자 사이의 관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