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팔레스타인 노동자의 이야기
발렌타인데이라고 사람들이 서로 선물을 주면서 즐거워하던 2월14일, 저녁 6시쯤 가자지구에 있는 가자시티로 들어왔습니다. 가자시티로 들어오는데 ‘펑, 펑’하며 이스라엘군의 포격 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늘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인 2명을 암살하려고 했는데 실패한 뒤 가자지구에 포격을 퍼붓는 것이었습니다.
포격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라직과 아흐마드를 만났고, 그들은 우리를 샤띠 난민촌의 한 집으로 안내 주었습니다. 호텔에서 자겠느냐 어쩌겠느냐 물어서 가능하면 팔레스타인인 집에서 머물고 싶다고 해서 소개해 준 것입니다.
아흐마드씨
그 집에 가니 여느 집처럼 응접실로 우리를 안내 했고, 가족들과 친척들이 와서 서로 인사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아 그냥 웃음만 주고 받았는데, 조금 있으니깐 가다씨가 왔고 우리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녁 7시가 넘고 8시가 다 되어가던 시각, 가족들이 아버지 아흐마드씨가 아직 오지 않는다고 약간 걱정을 했습니다. 평소에는 일을 마치고 7시쯤 집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9시쯤 되니 그냥 보기에도 아주 지쳐 보이는 아흐마드씨가 집으로 들어섰습니다.
아흐마드씨는 올해 만55세로 자녀를 8명 둔 노동자입니다. 지금은 이스라엘 땅이라고 불리는 야파에서 어머니가 아흐마드씨를 임신한 채 48년 전쟁에서 이스라엘 군에 쫓겨 이곳 가자지구의 샤띠 난민촌으로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나타냐에서 수도관 공사를 하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 아흐마드씨가 오늘 집에 늦게 돌아온 까닭은 역시나 이스라엘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지역으로 출퇴근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에레츠 체크 포인트(검문소)를 지나야 하는데 에레츠를 통과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저 같은 경우도 에레츠를 통해 가자지구로 들어오면서 사진을 한방 찍었었는데 바로 군인이 달려와서 사진을 지우라고 요구 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에게는 에레츠 체크 포인트가 죽을 맛입니다. 언제,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아주 이른 새벽부터 집을 나서야 되고, 아이들은 아빠 얼굴을 볼 시간이 없다는 얘기를 들어 왔었습니다.
아흐마드씨에게 들은 얘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짧게는 1시간, 길게는 5시간씩 걸려서 체크 포인트를 통과한다고 합니다. 여기를 통과할 때는 어떤 쇠붙이를 가지고 가서도 안 되기에 아흐마드씨는 신발에 붙어 있던 쇠붙이까지 떼어 냈습니다.
아흐마드씨가 집으로 늦게 돌아온 것은 퇴근길에 이스라엘이 체크 포인트를 닫아 버려서 노동자들이 크게 항의를 하고서야 체크 포인트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는 그동안 제가 만나본 다른 팔레스타인인들의 생활과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하품 소리가 가슴을 때리던 순간
아흐마드씨의 딸인 가다씨가 아버지는 11시에 출근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전 11시에 출근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인 것 같아서 다시 물었습니다.
“11시에 출근을 한다구요? 11시에 집에서 나선다는 건가요, 아니면 11시에 일터에서 일을 시작한다는 건가요?”
“아니요, 지금이 밤 9시30분이잖아요. 1시간30분 있으면 출근을 한다는 거예요.”
고된 노동을 마치고 밤 9시에 집으로 돌아온 사람이 2시간 뒤에 다시 출근을 한다는 것이 언뜻 쉽게 이해가 되질 않아 아흐마드씨의 일상을 다시 자세히 물었습니다. 금요일과 토요일이 휴일인 아흐마드씨의 평일 시간표는 이렇습니다.
* 밤 11시 : 집에서 출발
* 에레츠 체크 포인트 통과
* 1시간 버스 타고 일터에 도착
* 오전 6시 : 일 시작
* 오전 11시 : 식사
* 오후 4시 : 일 마침
* 오후 7시 : 집 도착(체크 포인트가 별 일 없이 열려 있을 경우)
에레츠 체크 포인트를 통과한 뒤 1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면 일터에 도착하는데 굳이 밤 11시에 집에서 나서는 이유는 체크 포인트를 언제 통과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일도 일이지만 아흐마드씨가 일찍 집에 도착해서 다시 출근하기까지는 4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습니다. 그나마 2월14일 그날 밤은 검문소가 닫혔다 열리는 바람에 9시쯤 집에 도착했고, 잠이 들어서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의자에 앉아서 쉬다가 다시 밤 11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고단한 팔레스타인 노동자의 삶의 날들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아흐마드씨가 출근하시기 전에 제 옆에 앉으셔서 계속 하품을 하시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가슴을 때리던지…….
노동 해방이라는 것
2000년 알 아크사 인티파다가 시작되고 아흐마드씨는 5년 동안 이스라엘 지역으로 일을 하러 갈 수 없었고, 지난 2주 전부터서야 일을 하러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36세 이상의 사람만 이스라엘 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아흐마드씨가 그렇게 피곤한 생활을 계속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힘들기는 하지만 이스라엘 지역에서 일을 하는 것이 임금이 높기 때문입니다. 3일에 약 100딸라(약 10만원)를 받는다고 합니다. 가자지구의 높은 실업률과 저임금, 낮은 물가를 생각하면 ‘행운’이라고 불리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같은 공사장에서 일하는 이스라엘 노동자는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에 비해 2배 정도의 임금을 받는 반면, 일은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이 더 많이 한다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흐마드씨도 일하다가 다리를 다친 적이 있는데 이스라엘 기업이 치료를 책임졌다고 합니다.
여기까지가 2월14일 밤 9시부터 11시까지 제가 만났던 아흐마드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노동이 해방되고 노동자가 해방된다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일을 하고 싶어도 강요된 실업 때문에 일자리가 없고, 일터에서뿐만 아니라 출퇴근길에서조차 점령군에게 시달려야 하는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에게 노동 해방이란 무엇일까요?
그 답을 찾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제 삶에 주어진 과제이겠지요. 빛을 위해 스러져가는 우리들.
존재가 있으면 희망은 있다
- 루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래도 우리가 위안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래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희망이란 존재와 한 몸으로, 존재가 있으면 희망이 있고, 희망이 있으면 빛이 있다. 역사가들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세상 사물 중 어둠으로 영원히 생존을 누렸던 예는 없다. 어둠은 멸망해 가는 사물과 함께 하는 것으로, 그 사물이 멸망하면 어둠도 함께 멸망하며, 영원히 존재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미래는 영원히 존재하며 끝내 빛나기 마련이다. 어둠의 부착물이 되지 않고 빛을 위해 스러져갈 때, 우리에게는 분명 영원한 미래, 빛나는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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