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것들/스치는생각

찻집에서

순돌이 아빠^.^ 2009. 12. 27. 13:02

1.

어제 저녁 무렵 친구들을 명동에 있는 따로국밥집에서 만났습니다.

결혼한지 13년 된 친구와 2년된 친구 그리고 결혼 안 한 제가 앉아 있었는데

13년된 친구가 2년된 친구에게 '결혼 생활을 10년 넘게 지속할 수 있는 비법을 알려 주겠다고 합니다.

그 비법이란...


1. 한 자리에 1분 이상 같이 있지 마라

2. 세 마디 이상 말을 함께 하지 마라


이 두가지였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난 이야기라 함께 웃었는데 웃고 보니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사랑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 결혼을 했을 건데 지금은 왜 그렇게 됐을까?'라고 물어 보고 싶었지만

괜한 물음인 것 같아 묻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시간과 많은 것을 함께 해 온 사람들이 서로 마음 기쁘게 대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2.

친구들과 헤어져서 집 근처에 있는 전철역에 내리니 시간이 10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찻집으로 가서 책을 읽었습니다.


저는 술집을 굳이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리 즐기는 편도 아닙니다.

매캐한 담배 연기도 그렇거니와 딱 한 잔만 해도 얼굴을 뻘개지고 머리가 아파 오고 심장이 벌렁거리기 때문입니다.

술자리를 마치고 나서도 여전히 몸 안에서 알콜이 돌아다니는 게 느껴지구요.

또 물론 술을 먹으면 비용도 많이 들구요.

대신 제가 좋아하는 것은 사람을 만날 일 있으면 찻집에 앉아 얘기도 나누고 그러는 겁니다.

그리고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찻집에 앉아서 혼자 책을 읽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합니다.

어제도 밤 10시 조금 넘어 들어가서 1시30분쯤 찻집에서 나왔습니다.


책을 읽고 있는데 11시 조금 안 돼서 제 옆자리에 중딩으로 보이는 여성 3명이 앉았습니다.

앉자마자 큰 소리로 떠들고 온갖 장난을 치고 '캭!'하면서 바닥에 침도 뱉고 그랬습니다.

뭐라 뭐라 서로 얘기를 하더니 한 명이 '너는 좆이나 빨아라'할 때는 괜히 웃음도 나왔습니다.


그러다 전화기 소리가 울리고 3명 가운데 한 사람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굳이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닌데 워낙 큰 소리로 얘기해서 다 듣게 되었습니다.


통화 내용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지금 몇 신데 집에 안 오냐며 넌 왜 맨날 늦게 오냐고 화를 내고

딸은 엄마는 왜 맨날 화만 내냐며 곧 들어갈 거라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서 그 사람이 친구들한테 엄마와의 통화 때문에 열 받았다고 하면서

엄마를 향해 '씨발년' '미친년'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엄마와 자주 싸우고 그랬지만

엄마한테 '씨발년' '미친년'이라고 하는 것은 좀 낯설었습니다.


제가 놀란 것은 엄마한테 욕을 해서가 아니라

왜 엄마는 맨날 딸에게 화만 내는 존재가 되고

딸은 뒤에서나마 엄마한테 '씨발년' '미친년'이라고 하는 존재가 될 수 밖에 없었을까였습니다.


엄마와 딸이니 그동안도 그렇고 앞으로도 많은 것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할텐데

서로를 더 이해하고 마음으로 감싸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3.

그저께는 다른 찻집에서 한 세 시간 책을 읽었습니다.

찻집에서 책을 읽다 보면 한, 두 시간이야 금방 가니깐요.

하지만 제일 싼 차 한 잔 시켜 놓고 죽치고 앉아 있는 게 왠지 눈치 보여서 나왔습니다.


아무튼 이럴 때 차를 마시는 요령 가운데 하나는 일단 따뜻한 차를 편하게 마시고

마지막에 몇 모금은 남겨 두는 겁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 목이 마른데 물을 달라고 하기도 좀 그러니깐

책을 읽다 목이 마르면 아껴 뒀던 차를 말 그대로 딱 한 모금씩 넘겨서 목을 축이면 되거든요.


하루 죙일 차 한 잔 시켜 놓고 앉아 있어도 눈치 안 보이고

목 마르면 물을 달라고 할 수 있는 편안하고 싼 찻집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날도 제 옆에 중딩으로 보이는 여성 3명이 앉았습니다.

문득 문득 귀에 들리는 얘기는 연예인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그러다 한 명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야, 오늘이 크리스마스인데 내일이 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또 학원에 가야한다는 게 좀 그렇지 않냐?


아...

순간 제 마음도 좀 그랬습니다.

그러게요, 금요일이 크리스마스이고 다음 날이 토요일인데 그냥 놀면 안 되는 걸까요?


저야 지금은 무슨 시험을 칠 일도 없고, 성적을 위해서 공부를 해야 될 일도 없지만

많은 학생들이 삶의 많은 시간을  공부와 성적에 매여 사는 것 같습니다.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삶의 소중한 시간을

까닭도 목적도 없이 보내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잔칫날 잘 먹을 거라고 사흘 굶었더니

정작 잔칫날에는 잔칫집까지 걸을 힘이 없어서 맛난 것을 먹지도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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