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다음날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설 잘 쇘나?’하니깐 ‘내가 기름에 튀겨 죽을 지경이다’라고 하더라구요. 아마도 시댁에서 명절 지내느라 고생을 많이 했나 봅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일이라는 것이 단순해서 누군가 일하지 않고 먹고만 있으면 누군가는 자기가 먹을 것도 아닌데 냅다 부지런을 떨어야 하겠지요.
명절날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비추는 텔레비전 뉴스 뒤에는 뭐라 말도 못하고 속이 타 들어가며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겠지요. 국민소득이 얼마니, 어느 회사가 올해는 순이익을 얼마 냈느니, 누구는 재산이 얼마가 되느니 하는 화려한 말들 뒤에 감춰진 것들이 있듯이 말입니다.
나눠 먹어야지요
너도 나도 대박을 꿈꾸는 세상입니다. 주식 대박, 부동산 대박은 기본이고 영화를 만들거나 공연을 한 번 해도 대박 터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대박이란 것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남의 주머니에 있는 것을 내 주머니에 왕창 집어넣는 일이겠지요. [맹자] 공손추 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옛날에 시장에서 교역하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가지고 와서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물건과 맞바꾸는 것이었고, 시장을 맡은 관리는 그것을 감독할 뿐이었다. 그런데 한 천한 사내가 있어서 반드시 사방이 훤히 보이는 높은 곳을 찾아 올라가서는 좌우로 둘러보고서 시장의 이익을 그물질 하듯 싹 거둬가버리니 사람들이 모두 그를 천하게 여겼다.
MBC에서 방영한 [아마존의 눈물]이란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거기에 ‘조에’라 불리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몇몇 사람이 사냥을 해서 동물을 잡아오면 그걸 요리 해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다 같이 나눠 먹더라구요. 지금의 한국 사회보다 발전된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먹을 게 있으면 나눠 먹는다’라는 그 단순하고 지혜로운 삶을 실천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MBC [아마존의 눈물] 가운데 한 조에 사람이 사냥을 하는 모습
대박이란 것은 결국 ‘먹을 게 있으면 나 혼자 먹는다’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노릇인지 그런 천박한 생각이 대접 받는 세상이고, 그런 천박한 짓을 서슴지 않는 사람이 존경 받는 인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삼성입니다. 올해가 전 삼성 그룹 회장 이병철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었다고 신문에 전면도 아니고 양면에 걸쳐 관련 광고가 실리고 있습니다.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부와 권력의 세습체제는 한국 사회의 아주 어두운 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떳떳하게 세상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3부자의 시민권
이씨 3부자가 부를 세습하고, 그들이 어떻게 부를 쌓았는지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더라도 그들이 그만한 부를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부정의한 일입니다. 한국 사회를 하나의 공동체로 본다면 한쪽에서는 먹을 거 걱정에, 잠자리 걱정인 것에 비해 한쪽에서는 하늘 높이 부의 탑을 쌓고 있으니 그 자체가 잘못된 거라는 겁니다. 고루 나눠 가지고, 나눠 쓰는 것이 정의입니다. 설사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다른 이들에 비해 지나치게 많이 가진 것 자체가 부도덕 하고 비윤리적인 행위인 거지요.
이병철 이건희 이재용
3부자는 그들의 부를 가지고 정치인, 언론인, 학자, 예술인 등을 고용합니다. 개천에서 용 난다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공부 잘해서 유명한 대학에 들어간 사람도 데려다가 쥐어짜지요. 그렇게 해서 사회를 그들의 생각과 이익에 따라 움직이게 만듭니다.
그러면 사회는 소수에게 힘이 점점 더 몰리게 되고, 공정함이나 조화로움을 잃고 계속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3부자의 더 많은 부를 위해 정치인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정작 그들이 돌아봐야 할 가난한 이들의 삶은 외면당하겠지요. 3부자를 비판할 수 없으니 진실을 말하는 언론은 불가능해지고, 진리를 찾아 밤을 새워도 모자랄 판국에 학문한다는 이들이 3부자의 입김에 맞는 말을 하기 위해 온갖 아양을 떨어 댑니다. 이러니 그 사회가 어떻게 건강해 질 수 있겠습니까.
선거 때 1인 1표가 기본이라고 하는데 정말 한국 사회의 선거는 1인 1표제입니까? 아니지요. 저의 정치적 의지는 1표로 표현될지 몰라도 3부자의 의지는 100만 표, 1,00만 표로 나타납니다.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이미 민주주의가 아닌 거죠. 민주주의는 자신을 치장하기 위한 껍데기일 뿐입니다.
선거에서 한나라당이냐 민주당이냐 하는 것은 3부자가 고용한 두 정치인들 가운데 A를 뽑을 거냐 B를 뽑을 거냐를 선택할 뿐입니다. A든 B든 3부자를 위해 일한다는 데는 변함이 없습니다. 경쟁하는 두 당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면 마치 우리가 정치적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이기는 하죠. 하지만 더 크게 보면 우리는 선택하지 않습니다. 이미 이러나저러나 3부자를 위해 정치인들이 움직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깐요.
한 사회가 건강해지고 최소한의 공정함이라도 지키려면 다른 이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시민권을 제한/박탈해야 합니다. 선거를 예로 들면 그들에게는 선거권/피선거권을 주지 말아야죠. 그들이 정치에 참여한다면 그들은 분명히 지금 가지고 있는 부도 모자라 더 많은 부를 향해 정치를 이끌고 갈 겁니다. 정치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가는 거지요.
그들과 함께 정치의 장에서 경쟁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라 그들을 배제한 상태에서 정치를 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되겠지요. 가게에 들어가 돈을 훔쳐도 깜빵에 가고, 선거법 어겼다고 의원직도 박탈하는데 그 보다 더 큰 사회 부정의를 행한 사람의 시민권을 제한/박탈하는 것이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일은 아니겠지요.
건강한 사회
이 사회가 가야할 목표는 가진 자가 더 많이 가지는 것도, 부정의 한 방법으로 쌓은 부를 ‘사유재산 보호’라는 이름으로 감싸주는 것도 아닙니다. [아마존의 눈물]에 나왔던 조에 사람들이 그렇게 하듯이 먹을 게 있으면 나눠 먹어야지요. 그게 싫은 사람은 이 사회를 떠나면 됩니다. 간단하지요.
3부자에게도 선택의 기회가 있습니다. 첫 번째 기회는 한국 사회에서 살기 위해 자신이 가진 부 가운데 남들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부분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모두 내어 놓는 것입니다. 두 번째 기회는 한국 사회에서 떠나는 겁니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얻은 부는 그대로 놔두고 가야겠지요.
"사는 데는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요"
사회가 건강하게 돌아가려면 누군가 지나치게 많은 부나 힘을 갖지 않게 해야 합니다. 어쩌다 누군가 지나치게 많은 부나 힘을 갖게 되었다면, 즉시 그 사람이 자신이 가진 부나 힘을 내어 놓든지 아니면 그 사회를 떠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건강한 사회의 건강한 시민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대박을 꿈꾸는 천박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불량식품 많이 먹어 암에 걸리듯 대박을 꿈꾸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는 점점 병들어 갈 겁니다.
[아마존의 눈물]을 보고 있자니 ‘사는 데는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나오더라구요. 건강한 노동과 건강한 어울림과 건강한 행복이 가득한 우리네 삶과 한국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