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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고

순돌이 아빠^.^ 2010. 2. 22. 10:13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누군가에게 8만4천 가지 보배를 전하는 것보다는 법을 한 번 전하는 것이 더 큰 일이라고 했던가요? 그만큼 우리에게는 무엇을 아는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자본주의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요? 나 자신에 대해서 모른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기 삶의 방향을 찾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감동입니다요


[자본]이 저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온 첫 번째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제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사실 ‘좀 더’라는 표현보다는 ‘아주 많이’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낮에 바람 쐬러 밖에 나갔다가 가게에서 녹차를 샀습니다. 제가 준 돈은 제가 일해서 번 것이고, 녹차도 누가 만들었겠지요. 제가 일한 것과 다른 사람이 일한 것이 서로 자리를 바꾸는 겁니다. 그러면 녹차를 만든 사람은 제가 건넨 돈으로 쌀을 사겠지요. 쌀은 또 누군가가 만들었을 거구요. 이렇게 사회는 끊임없이 다른 이와의 관계 맺음을 통해서 유지되고 돌아가는 거겠지요.


돈은 그 관계 맺음이 가능하도록 해 주는 수단일 거구요. 녹차 만드는 사람이 녹차를 쌀 만드는 사람에게 들고 가서 쌀과 바꿔오지는 않을테니깐요. 그리고 돈이 ‘망할 놈의 것’이 된 이유는 사실 돈 때문이 아니라 돈이 괴상망측하게 쓰이기 때문이겠지요.


아무튼 녹차를 놓고 생각해 보자면, 녹차를 만든 것은 녹차 만드는 사람인데 녹차 만드는 회사 사장이 큰돈을 벌었을 거에요. 이상한 일이네요. 사장은 차나무를 키우지도 차 잎을 따지도 녹차를 포장하지도 않았는데 큰돈을 벌었으니 말입니다.

 

사진은 '참세상'에서. http://media.jinbo.net


사장은 말합니다. ‘당연하지. 내가 돈을 투자 했으니 돈을 버는 거 아냐?’라고 말입니다. 돈이 돈을 만드는 거라면 어디 방에다 돈을 쌓아 놓고 물을 줘 보시지요. 돈에서 돈 나무가 자라서 돈 열매를 맺는지. 아니면 뻥튀기 기계에다가 돈을 넣고 튀겨 보세요. 더 많은 돈으로 튀겨 지는지.


만약 차 회사 사장이 1,000만원을 투자해서 1,200만원을 거둬들였다면 그 200만원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어쩌면 [자본]은 이 200만원의 정체를 밝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사장이 신이 아닌데 어떻게 갑자기 1,000만원이 1,200만원으로 늘어났냐는 거죠. 결국 답은 차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차나무 키우고, 차 잎 따고, 포장 하고 해서 그 200만원을 만든 거죠. 그런데 이상하게 사장은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닌데 200만원을 자기 주머니에 넣습니다.


차 회사 노동자가 이 사실을 알고, ‘야 이 더런 놈의 세상, 내가 일해서 번 돈인데 니가 왜 가져가?’라고 따지면 사장은 ‘더러우면 니가 그만 두면 될 거 아냐. 너 말고도 일할 사람은 많아’라고 하겠지요. 일자리는 제한되어 있고 직업 없는 실업자는 많으니 일하던 노동자가 그만 둬도 사장으로써는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이걸 달리 말하면 실업자가 많아야 사장은 더 큰 소리 칠 수 있겠지요. 요즘 한국에서 애기 많이 낳자고 하는데 혹시 그 이유가 인구가 많아야 실업이 많고, 실업이 많아야 사장들이 큰 소리 칠 수 있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노동자도 다니던 회사를 하루아침에 그만 둘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달이 먹을 것도 사야 되고, 애들 학교도 보내야 되는데 무슨 재주 좋다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겠어요. 더러워도 그냥 계속 일해야지요. 더러워도 회사를 때려 칠 수 없다는 것이 사장이 200만원을 가져가도 아무 말 못하게 하는 거겠지요.


여기서 노동자들이 독한 맘먹고 노조를 만들고 파업을 하면서 ‘내가 없는 거 달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일한 거 돌려 달라’고 했다고 하지요. 그러면 사장은 경찰을 부릅니다. 경찰은 노조 간부를 잡아가고 파업을 두들겨 부수죠. 사장에게 국가라는 것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 사장이 돈을 많이 벌어서 이번에는 좀 더 싼 값에 차를 키우기 위해 다른 나라에 차를 심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나라의 땅을 이미 누군가가 가지고 있어요. 땅 주인은 땅을 팔지도 내어놓으려고도 하지 않아요. 이 때 사장이 대통령의 호주머니에 돈 다발을 찔러 주면서 ‘야 어떻게 좀 해 봐’라고 합니다. 그러니깐 대통령은 국방부에 얘기해서 그 나라로 쳐들어가 땅을 빼앗습니다. 전쟁을 하는 거지요.


전쟁을 하고 땅을 차지해서 그동안은 차 한 통을 100원에 만들어 200원에 팔던 것을 이제는 80원에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차 한 통을 팔면 100원이 남았는데 이제는 120원이 남는 거지요. 사장은 룰루랄라 입이 찢어집니다. 차 바꾸고, 새 아파트 사고 난리가 났죠.


근데 이걸 보고 있던 다른 회사 사장이 배가 아픈 거에요. 그래서 이 사장도 다른 나라에 땅을 사서 차를 만들고 자기도 80원에 차를 만들 수 있게 된 거에요. 그리고 앞의 사장보다 더 많이 팔 욕심으로 이제 차 한 통을 200원이 아니라 190원에 파는 거에요. 앞 사장보다 한 통 팔면 남는 게 10원 적지만 앞 사장이 200원에 100통의 차를 파는 동안 뒤 사장은 190원에 1,000통을 팔 수 있는 거에요. 차 한 통만 보면 과거보다 남는 게 적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더 큰 돈을 벌 수 있는 거지요.


일이 이렇게 돌아가니 앞 사장도 가만있을 수 없지요. 그래서 자기도 이제 190원에 차를 팔기 시작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앞 사장이 뒤 사장보다 돈을 많이 벌었는데 이제는 앞 사장이나 뒤 사장이나 같아지는 겁니다. 서로 더 많이 벌려고 하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겁니다.


오늘 산 녹차 한 통을 놓고 얘기를 만들어 보자면 이 보다 더 많은 얘기가 있을 거에요. 제가 녹차를 산 가게 사장은 또 가게 사장대로 할 말이 있겠지요. 가게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또 노동자대로 할 말이 있을 거구요.


참, [자본]에서는 이 사장을 그냥 사장이라고 하지 않고 자본가라고 했네요. 요즘은 기업인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그리고 기업인들이 한국 사회를 먹여 살리는 것처럼 말해요. 우습지요. 지하철 화장실 청소를 하는 것도 아니고, 버스를 운전하는 것도 아니고, 자동차에 볼트를 조이는 것도 아니고, 가을에 나락을 베는 것도 아니면서 그들이 어떻게 우리를 먹여 살린다는 것인지...


[자본]이 저에게 준 것은 그들이 하는 거짓말이 왜 거짓말인지를 알려 준 거에요. 고귀하신 분들이 [자본]이나 ‘마르크스’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책을 불태워 버리려고 한 것도 자기가 한 거짓말이 탄로 날까봐 그랬지 싶어요.


사람이 속으면 기분 나쁘잖아요. 안 속으려면 잘 알아야겠어요.


집중과 노력


며칠 전에 제가 아는 사람이 고민이 있어서 2시간 넘게 전화 통화를 했어요. 제가 그 사람에게 했던 얘기 가운데 하나는 ‘이것저것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만 해라’입니다. 제가 [자본]에서 감동을 받는 이유의 두 번째는 바로 이 하나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는 겁니다.


사람이 참 그러기가 쉽지 않아요. 조금만 뭐 하다 보면 피곤하기도 하고 딴 생각 나기도 하고 그래요. 그래서 처음에는 A를 해야지 하다가 A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B를 하고 있어요. 옆에서 누가 ‘야, A는 우쨌는데?’하면 ‘그거... 대강 끝냈어...’라고 얼버무리죠. 한 길을 가든, 하나의 문제를 풀어가든 끝까지 가기가 쉽지 않아요.


[자본]을 읽으면 당연히 책의 내용이 먼저고, 다음은 마르크스라는 인간에게도 감동하게 되더라구요. 이 세상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기는 쉬워도 하나의 문제를 붙잡고 고민을 계속해서 밀고 나가기가 쉽지 않은데 마르크스가 그걸 하고 있더라구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도 노력이 많이 필요한 데 이 책을 쓸려면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싶어요. 뭐라도 제대로 하려면 이런 태도를 배워야 되겠더라구요.


책이 어렵지 않냐구요? 제 짧은 머리로는 당연히 어렵죠. 책방에서 책을 살 때 책 속에 숫자만 나오면 던져버리는 제가, 수많은 숫자가 오가며 가변자본이 어떻고 불변자본이 어떻고 잉여가치가 어떠니 평균이윤율이 어떠니 하니 어찌 머리가 아프지 않았겠습니까. 다만 속으며 골치 아프게 사느니 골치 아프게 알고 나서 안 속고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요.

 

 

칼 마르크스


아쉬운 것은 마르크스가 책을 끝까지 마치지 못하고 꼴까닥 했다는 거에요. 3권의 마지막 ‘제계급’의 장은 얘기를 꺼내다 말아요. 마르크스가 완성한 원고도 아닌 것을 마무리한 것은 엥겔스구요. 친구 잘 사귀어야겠어요. 먼저 간 친구의 뜻을 남은 친구가 오랫동안 힘들여 마무리 했으니 말입니다.


[자본]이나 ‘마르크스’가 대단하다고 해서 [자본]이 성경도 아니고 마르크스가 하느님도 아니겠지요. 마르크스 자기도 얘기하는 것이 자기 얘기가 언제, 어디서나 맞는 것은 아니라는 거에요. 특정한 조건과 상황에서 그렇게 된다는 거지요. 그래서 신의 말씀을 찾고 싶으신 분은 기도를 하시면 될 거고, 인간의 과학을 찾고 싶으신 분은 [자본]을 읽으시면 될 거에요.


[자본]을 읽는 것만 해도 골치가 아프지만, 자본주의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할 거에요. 엥겔스가 책 맨 뒤에 몇 자 덧붙이는 것이 주식에 관한 것이에요. 마르크스가 살아 있을 때는 주식회사라는 것이 아직 냅다 크지 않았다고 하네요. 만약 마르크스가 유럽에서 살면서 1, 2차 세계대전을 봤다면 또 어떤 말을 덧붙였을까 싶어요. 자본주의 사회를 이해하려면 ‘국가’나 ‘욕망’, ‘이데올로기’에 관해서도 계속 공부를 해야겠지요.


자본주의를 이해한다는 것이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하게 하지는 않을 거에요. 다만 세상 많은 일들, 아닐 것 같았던 것들이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벌어진다고 생각하면 자본주의를 이해함으로써 우리 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친절한 할아버지


[자본]이나 마르크스는 좌파들이나 읽는 책이 아니냐구요? 꼭 그런 건 아닐 거에요. 꼭 좌파가 아니어도 세상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 경제학이 무언지 알아보고 싶은 사람,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 책 읽기 즐기는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거에요. 책의 분량이 많고 말들이 딱딱할 수 있으니 읽기 전에 미리 꾸준히 읽을 수 있도록 생활의 계획을 잡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시간이 좀 걸려도 다 읽고 나면 후회하진 않을 거에요.


[자본]을 읽는 동안 졸리고 그러면 마르크스가 제 곁에 나타나서 ‘재미없는 책 읽는다고 욕 보제?’하며 어깨를 두드리는 것 같았어요. 한 꼭지, 한 꼭지 넘어 갈 때마다 요점 정리를 자주 하는 것을 보면서 마르크스가 친절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아무튼 저에게 좋은 얘기를 들려준 마르크스 할아버지 고마워요. 저도 할아버지 계시는 그 세상으로 가게 되면 막걸리 한 잔 크게 대접하지요. ^.^

 

 

나훈아 - 영영

 

* 예전부터 나 선생님이라며 내가 좋아하던 가수 나훈아.

이번에 김용철이라는 사람이 쓴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에

삼성과 연예인들에 관한 이야기도 실렸단다.

 

이 책에는 이건희와 삼성에서 잔치를 벌이고 큰 돈을 주고 연예인들을 부르면

우리의 나훈아 선생님께서는 '니가 공연장에 와서 표 사고 봐라'라고 하면서 안 가셨다는 이야기가 실렸단다.

 

역시 나 선생님 최고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