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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립 히로Dilip Hiro - [지구의 피(Blood of the Earth)]를 읽고

순돌이 아빠^.^ 2010. 3. 6. 13:37

1.

겨울 잠 자던 개구리도 깨어난다는 경칩입니다. 여러분은 이 봄에 어떤 꿈 가지고 계시나요? 저는 개구리가 깨어난다고 하니 글 하나 떠올랐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이 계속 변할 뿐인 존재들에 관한 글이라고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겠지요.

 

 

만물의 존재
(화담 서경덕)


존재하는 만물은 오고 또 와도 다 오지 못하니

다 왔는가 하고 보면 또 다시 오네

오고 또 오는 것은 시작 없는 데로부터 오는 것

묻노니 그대는 처음에 어디로부터 왔는가


존재하는 만물은 돌아가고 또 돌아가고 다 돌아가지 못하니

다 돌아갔는가 하고 보면 아직 다 돌아가지 않았네

돌아가고 또 돌아가고 끝까지 해도 돌아감은 끝나지 않는 것

묻노니 그대는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 [화담집花潭集], 세계사, 1992, 46쪽

 

2.

세상을 알려면 물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 물음이란 것은 그다지 특별한 것도 아니고 눈앞에 있는 작고 간단한 것에서 시작할 겁니다. 작고 간단한 것, 그 안에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가 한껏 들어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겉만 화려한 말보다는 내 앞의 사람 속에 세상 돌아가는 원리가 들어 있다고 해도 되겠지요. 저의 물음은 이렇습니다.

 

 

무너진 집터 곁에 앉아 상처 난 얼굴 위로 눈물을 흘리는 이라크 아이는 왜 눈물을 흘리게 되었을까?


미군이 폭격을 해서 가족들은 죽고 집은 무너졌기 때문이겠지요. 미군은 왜 폭격을 했을까요?


미국이 이라크를 삼키려고 했기 때문이겠지요. 미국은 이라크를 왜 삼키려고 했을까요?


석유를 차지하려고 했기 때문이겠지요. 미국은 왜 석유를 차지하려고 했을까요? 석유가 음료수여서 마실 것도 아니고 미국 사람들이 단체로 이가 아픈 것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갑자기 웬 이빨 얘기냐구요? 혹시 [거북이도 난다]라는 영화를 보셨어요? 거기도 보면 이가 아프니깐 석유를 입에 무는 장면이 나와요. 정말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가 아플 때 석유를 입에 물기도 했다네요.


이 영화를 아직 안 보셨다면 꼭 보세요. 전 여러 번 봤어요.


미국이 석유를 차지하려고 했던 건 돈벌이 때문이었겠지요. 석유보다 더 중요한 건 돈이었죠. 까짓 거 모래가 돈이 된다면 미국은 이라크를 삼키고 나서 이라크 사막에 있는 모래를 퍼가려고 했겠지요. 아무튼 물음을 더 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개구리 맞이하러 나가야 하니 여기까지만 하지요.  


돈벌이 때문이라... 미국으로 모이는 돈과 이라크에서 흘리는 눈물 사이에 미국 정부도 있고, 전쟁과 폭격도 있고, 석유도 있는 셈이네요. 참 세상 무섭습니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고 자본이란 것은 피도 눈물도 없이 이윤만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사람이 해서 될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는데 말입니다. 사람 나고 돈이 낫을 텐데 지금은 돈 나고 사람 난 세상입니다.


한국에서 어린 아이 1명을 납치해서 돈을 요구해도 파렴치범이니 짐승이니 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러면 돈벌이를 위해 수많은 아이들을 눈물 흘리게 한 미국의 권력자들과 자본가들은 무슨 소리를 들어야 할까요? 

 

3. 

석유는 우리에게 무엇일까요? 당장에 석유가 없어진다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자동차, 비행기, 탱크가 멈추고 발전소가 멈추겠지요. 화학비료도 없을 거고 난방도 어려울 겁니다. 볼펜도 없을 거고 제 눈앞에 있는 컴퓨터도 제대로 못 만들 겁니다. 땅에 구멍을 뚫어 석유를 캐내고, 이것을 상품으로 만들고, 소비자들에게 팔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으니 석유가 없어지면 그 사람들의 일자리도 없어지겠네요.  


이렇게 많은 쓰임새를 가졌으니 석유를 손에 쥐고 있는 국가나 기업이나 사람은 큰 힘을 갖게 되고 많은 돈을 벌겠지요. 이걸 거꾸로 말하면 석유를 가지기 위해 국가나 기업, 사람들 사이에 다툼도 커질 거구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고 이란이 석유를 국유화하자 쿠데타를 일으킨 것도 석유 때문이고, 베네수엘라에 차베스 정권이 들어서자 쿠데타를 일으킨 것도 석유 때문이지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독재 권력을 유지하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괴롭혀도 미국이 열심히 무기를 가져다주는 것도 석유 때문이지요.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일본이 패배하게 된 원인 가운데 하나도 석유 때문이고, 미국과 중국이 아프리카 수단에서 경쟁을 벌인 것도 석유 때문이지요. 


소련이 무너진 뒤에 찌그러져 있을 것만 같았던 러시아가 다시 큰 소리 치기 시작한 것도 석유/가스 때문이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자 유럽이 추위에 떨어야 했던 것도 가스 때문이지요. 옛 소련 지역인 중앙아시아 지역과 카스피 해 지역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이 정치와 언론에 자주 등장하게 된 것도 석유와 가스 때문이지요.  

 

셸(shell)의 회사 문양을 헬(hell, 지옥)이라고 표현한 그림


앞에서는 주로 나라 이름들을 가지고 말했는데 이런 일들 뒤에는 늘 석유/가스 관련 기업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엑손 모빌, BP, 셸과 같은 이름들이지요. 부시와 오바마가 혼자 다 먹으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이런 기업들을 위해서 열심히 뛰는 거지요. 대통령이야 때 되면 바뀌지만 이런 기업들의 대주주들은 죽을 때 꺼정 그 자리에 앉아 있지요.  


말 그대로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이 석유 소비량으로는 7등(물론 1등은 미국)이니 석유공사나 SK 등 관련 기업들과 한국 정부도 앞으로 점점 더 많이 석유/가스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에 끼어들 겁니다. 지금 이라크에서 그러고 있듯이 말입니다.  


석유나 가스는 무한한 자원이 아니라 언젠가는 바닥을 나겠지요. 정확한 것이야 누구도 알 수 없겠지만, 지금처럼 석유나 가스를 써 대면 몇 십 년 안에 한계를 드러낸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인가 봅니다. 바닥을 드러낼 수 있으니 한 쪽에서는 열심히 더 빨리, 더 많이 석유와 가스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이든 뭐든 가리지 않을 거구요. 또 한 쪽에서는 석유와 가스를 대체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등 뭔가를 찾으려고 하겠지요.  


사람이 쓸려고 돈을 만들었더니 이제는 돈이 사람을 잡아먹고, 사람이 쓸려고 석유를 캐냈더니 이제는 석유가 사람 여럿 잡습니다 그려.  


4. 

딜립 히로Dilip Hiro의 [지구의 피 - 바닥나는 석유 자원을 향한 전투(Blood of the Earth - The Battle for the World's Vanishing Oil Resources)]는 제목처럼 석유에 관한 것입니다. 석유의 역사와 인간이 석유를 쓰게 된 역사, 석유를 둘러싼 정치적 대결과 전쟁 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학교 다닐 때 화학 시험 치면 늘 거의 빵점에 가까웠는데(그렇다고 다른 과목이 나았던 것은 아니고... ㅠㅠ) 석유와 관련된 화학 이야기에서는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참, 요즘 언론에 보면 미국과 토요타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걸 보면서 저는 혹시 저건 ‘공룡의 사슴 때려잡기는 아닐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자료를 제대로 찾아 본 것이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미국이 저렇게 나오는 주된 이유는 토요타 자동차의 기계 결함 때문이 아니라 닝겔 꼽듯이 공적 자금을 집어넣어 겨우 수명을 연장하고 있는 미국 자동차 회사들 때문은 아닌가 싶었던 거지요.  


문제는 사슴의 복장불량이나 싸가지 없음이 아니라 공룡이 배가 고프다는 것은 아닐까 싶은 거지요. 아무튼 이 책을 보면 기름 많이 먹는 덩치 큰 미국 자동차와 기름 적게 먹고 가벼운 토요타 자동차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나옵니다.  


미국 정부와 기업, 사회가 석유에 중독되어 허둥대고 있는 동안 또 다른 석유 중독자인 일본과 독일 등은 석유를 적게 쓰거나 석유 아닌 에너지를 찾느라 열심이라고 합니다. 바람이나 태양 등을 이용한다는 거지요.     


사실 따지고 보면 석유야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제 몸 태워 밤을 밝히고 기계를 움직였을 뿐인데 말입니다. 그놈의 사람과 돈이 웬수지요. 석유로부터 전쟁과 지구 온난화의 씨앗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벗겨 주기 위해서라도 석유에 중독되고 석유로 돈벌이하는 사람과 사회를 바꿔야겠다 싶습니다. 그게 우리도 살고 지구도 살고 푸른 바다와 산도 사는 길이겠지요.

 

 

madredeus - haja o que hou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