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것들/스치는생각

뭇 별이 향하는 곳

순돌이 아빠^.^ 2010. 5. 9. 17:30

 

무슨 뽑기를 하듯 논어를 아무렇게나 펼쳤더니 이 구절이 나왔습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시(詩) 3백 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생각에 삿됨이 없다”는 것이려니.

 

옮긴이의 말을 보면 삿됨이 없다(사무사思無邪)라는 말은 ‘순수하고 바름’을 뜻한다고 합니다. ([한글세대가 본 논어], 70쪽)

 

 

참, 좋은 말이에요. 저 같이 잡생각 많고 욕심 많은 놈은 쉽게 갖게 어려운 것이지요. 이 글을 읽으니 옛 생각이 나더라구요.

 

10여 년 전 쯤 책방에서 [중국역대시가선집]이란 책을 사니깐 그 안에 신영복 선생의 붓글씨로 이 사무사 구절을 선물로 주더라구요. 그걸 방에 붙여 놨더니 친구가 이게 무슨 말이냐고 하네요. 아는 게 짧은 제가 주워들은 대로 말했지만 친구가 모르겠더라고 하더라구요.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의 시 3백 편이란 것은 [시경]을 말한다고 합니다. 공자가 중국의 옛 노래를 모으고 분류한 책이라고 하네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통해 사람들의 생활이나 시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지요.

 

요즘은 노래를 만드는 사람과 부르는 사람이 너무 구분되어 있어서 노래를 통해 세상을 알기가 쉽지 않지만 예전에는 음반제작사나 연예기획사가 따로 없었을 거니깐 사람들의 흥얼거림을 통해서도 사람들의 마음과 세상을 엿 보기가 좀 더 쉽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칡은 자라서 회초리나무를 뒤덮고 넝쿨풀은 들판에 뻗었구나
나의 어여쁜 님 여기에 없는데 누구와 더불려고 혼자 사는가

 

칡은 자라서 가시나무를 뒤덮고 넝쿨풀은 가장자리에 뻗었구나
나의 어여쁜 님 여기에 없으니 누구와 더불려고 혼자 남았는가

 

뿔베개는 번쩍이고 비단이불은 아롱거리는구나
나의 어여쁜 님 여기에 없으니 누구와 더불려고 혼자 아침을 맞이하는가

 

여름의 날이여, 겨울의 밤이여
백 년의 뒤에라도 그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리

 

겨울의 밤이여 여름의 낮이여
백 년의 뒤에라도 그가 있는 방으로 돌아가리

 

[시경]에 나오는 ‘갈생葛生(칡이 자라서)’편의 내용입니다. 그냥 보면 2AM이 ‘죽어도 못 보내’하며 부르는 사랑 노래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옮긴이의 말에 나옵니다.

 

 

갈생 편은...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부인이 홀로 쓸쓸하게 살아가는 심경을 노래하였으니...위정자들이 인민의 고귀한 생명을 지켜주지 않고 도리어 살상의 전선으로 내몰아 야욕충족에만 열중하는 것을 엄중히 경고하기 위함이다. - [새 시대를 위한 시경], 326~327쪽

 

요새로 치자면 미국 정부가 미국인들을 이라크로 아프가니스탄으로 내몰고 죽게 만들자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사람이 행복하게 어울려 사는 이웃 사람들을 보며 그를 잊지 못해 부르는 노래라고 해도 될 것 같네요.
 
사연을 듣고 나니 노랫말의 느낌이 확 달라지죠? 전쟁 전쟁 전쟁. 나락이 익어도 벨 사람이 없고, 아이가 태어나도 아비가 누군지를 모르게 계속되는 전쟁 속에서 아픈 마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싶습니다.

 

자연스레 움직이는 마음

 

앞의 논어를 옮긴이의 글을 다시 읽어 볼게요.

 

사무사(思無邪)란, 생각이 ‘순수하고 바름(純正)’을 뜻한다. 사랑, 분노, 슬픔, 애탐의 느낌이 순전하고 오롯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것이 차후 유교의 문학(예술)정신으로 작동하게 된다.
자기 자신의 느낌이 순정하므로 그것을 노래로 표현하였을 때 듣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하는 것이다. 감동(感動)이란 말 뜻 그대로, ‘느껴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 ([한글세대가 본 논어] 70~71쪽)

 

2AM의 깝권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말을 하고 몸을 베베꼬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참 재미있어요. 그런데 ‘죽어도 못 보내’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면 ‘아, 저 사람 연기하는구나’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어요. 표정, 몸짓, 노랫말, 곡까지 표현하는 사람의 순수한 마음을 드러냈다기 보다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무언가 꾸미고 과장했다는 느낌이 드는 거지요.

 

 

자연스레 듣는 이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노래하는 사람이 상대의 심장을 일부러 쥐고 흔드는 거지요. 아이돌 그룹이라서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 말씀하시다. 덕(德)으로써 정치를 함은 비유컨대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음에도 뭇 별이 그를 향하는 것과 같다. - [한글세대가 본 논어], 69쪽

 

깝권이 억지 표정을 짓지 않고 자연스레 제 마음을 노래해도 많은 이들이 그의 노래를 듣고 마음이 움직일 수 있는 그런 노래를 하면 좋겠습니다. 노래를 듣는 사람도 부르는 사람의 담백한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좋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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